열린 문화의 공간 진관사
화요일 오후 2시. 유모차를 끄는 부부, 등산복 차림의 중년들, 외국인 관광객까지 다양한 이들이 한옥마을을 거닐고 있었다. 한옥마을에 난 길을 따라 900m쯤 걷다 보면 진관사에 닿는다.
역사의 시간을 지나온 진관사는 요즘 다양한 체험형 프로그램으로 주목받고 있다. 숲길 걷기, 명상, 차담 등 휴식형 프로그램을 포함한 템플스테이는 예약 전쟁이 벌어질 정도다. 외국인 참가자도 늘고 있다. 사찰 안내실 직원은 “외국인을 위한 통역 봉사자도 따로 있을 정도”라고 말했다. 경내에는 영어 안내문과 체험 소개 팸플릿도 마련돼 있었다.
산사음식도 빼놓을 수 없다. 진관사는 조선 태조 때 ‘국행수륙재’ 장소로 지정된 이래 전통 음식의 중심지로 기능해왔다. 일제강점기 때 맥이 끊길 뻔했지만 1970년대부터 스님들의 노력으로 사찰 음식 문화가 복원됐다. 지금은 ‘자연을 먹다’라는 이름의 체험 프로그램도 운영 중이다. 참가자들은 스님과 함께 재료를 손질하고 음식을 만들어 나눠 먹는다. 가래떡과 절편, 백설기 등 떡도 직접 만든다. 기자도 방문 당시 흰절편을 얻어 먹었는데 소박한 그 맛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다.
진관사의 사찰 음식은 국제적으로도 인정받고 있다. 백악관 부주방장이었던 샘 카스는 이곳에서 콩국수 만드는 법을 배웠고 2015년에는 질 바이든 여사가 직접 방문했다. 2023년에는 프랑스 ‘르 코르동 블루’ 셰프들이 진관사를 찾아 사찰음식을 배웠다고 한다.
조용한 사유의 공간 길상사
이곳은 원래 1930년대 요정 ‘대원각’이 있던 자리다. 정치인과 문화인들이 드나들던 이 공간은 김영한 여사가 법정스님에게 전 재산과 함께 시주하면서 1997년 ‘무소유’의 철학을 품은 사찰 길상사로 다시 태어났다.
요즘 성북동 일대에서는 ‘길상사 구경 + 빵지순례’ 조합이 유행이다. 50년 전통의 나폴레옹제과, 성북동빵공장, 밑곳간, 오보록 같은 개성 있는 베이커리들이 길상사 주변 도보 거리에 촘촘히 자리해 있다. 네이버 블로그에만 ‘길상사 근처 빵집’ 키워드로 3000개가 넘는 후기가 등록돼 있다. 사찰 옆에 있는 ‘수연산방’도 많이 찾는다. 소설가 상허 이태준의 옛집이자 작업실이던 이곳은 그의 외종 손녀가 1998년부터 전통찻집으로 운영해오고 있다. 오래된 기와지붕 아래 다관과 찻잔 사이로 옛 문인의 숨결이 흐르는 공간이다.
절이 아닌 곳에서도 불교 감성은 색다른 방식으로 재해석되고 있다. 서울 문래동의 카페 ‘극락왕생’은 불상과 향로, 연꽃 조형물 등 불교 소품으로 꾸며져 있다. 유명 연예인이 방문하며 SNS를 통해 유명세를 탔고 블로그 후기만 3600건을 넘는다. 보문역 근처 카페 ‘유즈리스 어덜트’에는 거대한 불상과 고미술 느낌의 인테리어가 어우러져 독특한 분위기를 만든다. ‘없던 불심도 생기는 카페’라는 후기처럼 일상 속에서 불교 감성을 느낄 수 있는 공간들이다. 절은 더 이상 경전 속에만 머물지 않는다. 침묵의 경험, 무소유의 여백은 도시와 일상 속으로 스며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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