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설명: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이 지난 3월 기자간담회에서 대한항공의 새로운 기업이미지(CI)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한경DB
사진설명: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이 지난 3월 기자간담회에서 대한항공의 새로운 기업이미지(CI)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한경DB
대한항공이 적대적 인수합병(M&A)의 타깃이 됐습니다. 호반건설이 대한항공의 모기업인 한진칼 지분을 18.46%까지 늘려서 최대주주인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 측 지분 20.13%에 근접했기 때문인데요. 호반은 단순한 투자 목적이라고 공식적으로 밝히곤 있지만 아무도 믿진 않죠. 주가가 말해주고 있습니다. 올해 5월 12일에 지분 취득 내역이 공시되자마자 13일과 14일 이틀 연속 상한가를 쳤거든요. 경영권 분쟁으로 지분 확보 경쟁이 벌어질 것이란 기대 때문입니다.

2024년에는 고려아연을 둘러싼 경영권 분쟁이 국내 증시의 최대 이슈였는데 올해는 대한항공이 바통을 이어받을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대한항공은 이전에도 경영권 분쟁이 있었어요. 강성부 펀드로 불린 KCGI가 조원태 회장의 누나인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 그리고 반도건설과 연합군을 이뤄 조원태 회장을 밀어 내려고 했습니다.

대한항공은 아시아나항공과 합쳐 덩치를 키우고 글로벌 항공사와 경쟁 중입니다. 저가 항공을 제외하곤 국내 유일의 국적 항공사이기도 하고요. 이런 대한항공에 왜 경영권 분쟁이 자꾸 발생할까요. 또 호반건설이 대항항공을 인수하는 게 가능은 할까요.
취약한 지배구조 파고들어
대한항공이 속해 있는 한진그룹은 국내 재계 순위 14위의 대기업 입니다. 호반건설이 이런 한진에 덤벼볼 수 있는 건 지배구조가 취약하기 때문이에요.

한진그룹의 정점에는 지주사인 한진칼이 있고 한진칼의 최대주주는 조원태 회장과 특수관계인이죠. 사실 조원태 회장 개인 지분은 5.78%에 불과해요. 조 회장의 동생인 조현민 사장 지분도 5.78%이고요. 두 사람 지분 다 합쳐도 11.5% 수준입니다. 여기에 조 회장의 어머니인 이명희 씨 지분 2%와 계열사 지분 등을 전부 더해야 20.13%입니다.

조 회장이 작은 지분으로도 한진그룹을 이끌수 있는 건 우호지분이 있기 때문이죠. 우선 산업은행이 10.58%를 들고 있어요.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합병을 이끌어낸 게 산업은행이었어요. 산업은행은 사실상 정부죠. 두 항공사의 빚이 너무 많아 거의 망하기 직전까지 갔는데 이때 정부가 산업은행을 통해 항공사 구조조정을 했어요.

미국의 델타항공도 14.9%를 들고 있어요. 델타항공은 과거 강성부 펀드가 대한항공을 공격했을 때도 조원태 회장 편을 들어줬어요. 산업은행과 델타항공 지분까지 합산하면 45.6%에 달해요. 과반을 넘기진 못하지만 이 정도면 탄탄하다고 봐야 해요.

하지만 산업은행과 델타항공이 조원태 회장의 ‘백기사’가 아니라면 어떻게 될까요. 여지가 아예 없는 건 아닙니다. 산업은행은 정부라고 했는데요. 정부가 곧 바뀝니다. 대선이 있잖아요. 새 행정부가 들어선다면 산업은행도 입장을 바꿀 가능성이 생깁니다. 새 정부는 여론에 민감할 수밖에 없어요. 대통령 탄핵 이후의 선거잖아요. 호반이 대한항공 경영에 적임자란 여론만 조성한다면요. 그리고 명분을 확보할 수만 있다면요. 산업은행을 움직일 수 있어요.

델타항공도 언제까지 조원태 회장 편일까요. 델타항공이 한진칼 주식을 취득하기 시작한 시점은 2019년쯤이었어요. 당시 주가는 2만~3만원가량 했어요. 지금은 10만원이 훌쩍 넘어가요. 올해 들어서만 90%가량 올랐어요. 이쯤 되면 언제 팔아도 이상하지 않아요. 안 팔더라도 주가를 올려주는 쪽을 선호하는 것은 당연하겠죠. 혹은 자신들의 요구를 들어주거나요. 호반과 이해관계만 맞으면 같은 편을 못할 것도 없어요.

조원태 회장도 이런 부분을 인식하고 있어요. 그래서 최대한 안전판을 많이 만들어 놓으려고 해요. LS그룹하고 동맹을 맺기로 했습니다. 재계 순위 16위인 LS는 호반하고는 악연이 있어요. 호반이 2021년 인수한 대한전선과 LS전선이 싸우고 있거든요. LS전선이 기술을 탈취당했다면서 대한전선과 다툼을 벌이는 중입니다. 이 다툼에서 대한전선이 지면 타격은 엄청나요. 배상액이 1조원을 넘을 것이란 전망도 나옵니다.

호반도 당하고만 있진 않았어요. LS그룹 지주사 지분을 3%가량 취득했어요. 지분 3%는 의미가 있어요. 3% 이상 있으면 회계 장부를 열람하거나 주주총회 소집을 요구할 수 있거든요. 경영에 일부 개입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이런 LS를 조원태 회장이 우군으로 확보했다는 건 힘을 합쳐 호반과 싸우자는 의미를 담고 있어요.
설마 대한항공을?…호반건설의 속내 [안재광의 대기만성's]
◆대한항공 매출 급성장
항공산업이 유망한 것도 호반이 눈독을 들이는 이유예요. 대한항공은 지난해 약 16조원의 매출을 거뒀어요. 전년 대비 10% 넘게 늘었죠. 코로나 사태 직후인 2020년에 매출이 7조원대까지 떨어졌는데 두 배 이상 늘었어요. 영업이익은 2조원에 육박했어요.
더구나 올해부턴 아시아나항공 합병 효과가 본격적으로 발생해요. 작년 12월 미국이 두 회사의 합병을 최종 승인했어요. 그래서 올 1분기부터 연결 실적에 반영되고 있어요. 국내에선 사실상 적수가 없는 압도적인 항공사가 출범한 것이죠. 단거리 노선의 경우 저비용 항공사와 치열하게 경쟁하겠지만 장거리 노선은 경쟁이 거의 없어요. 유럽과 미주 노선 일부를 저비용 항공사에 떼주고도 대부분 독과점하고 있거든요. 가격을 올려 받을 가능성이 있어요. 공정거래위원회가 운임 인상을 통제하고는 있는데 아예 못 올리는 건 아니거든요.

환율도 유리하게 바뀌고 있어요. 가파르게 오르던 원·달러 환율이 꺾였어요. 한때 1500원도 넘어설 기세였는데 1400원 안팎입니다. 환율 전망은 분분한데 현재로선 내려간다는 전망이 우세해요. 트럼프 행정부가 미국의 무역적자를 개선하기 위해 달러 약세를 유도하고 있거든요. 달러 가치가 낮아지고 원화 가치가 올라가면 항공사 입장에선 호재라고 봐야 해요.

우선 사람들이 해외여행을 많이 나가요. 특히 미국이나 유럽 같은 장거리 노선의 수요가 더 많아지죠. 거리가 멀고 금액이 커질수록 사람들이 환율에 민감해지거든요. 장거리 노선은 대한항공이 강점을 갖고 있어요. 수요가 많아지면 가격을 높일 여지가 생기죠.원·달러 환율이 50원 하락하면 가격 상승으로만 연간 830억원의 이익 개선 효과가 있다고 해요. 여기에 더해 외화 차입금에서 발생하는 이자비용 감소분 등을 더하면 총 1400억원의 이익 증가 요인이 있어요.

물론 항공산업 전망이 마냥 좋진 않아요. 관세전쟁과 경기침체로 항공 수요가 감소할 요인도 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기적으로 항공산업이 계속 성장할 것이라는 데 큰 이견은 없는 것 같아요.
◆탄탄한 재무구조…실탄 충분한 듯
호반건설이 실제 인수할 능력과 의지가 있는지도 중요해요.

사실 요즘 건설경기가 어렵잖아요. 아파트 미분양도 많고요. 특히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이 문제가 되고 있어요. PF 대출은 시행사가 아파트 지을 때 금융권으로부터 끌어다 쓰는 돈인데요. 대부분은 아파트를 짓는 건설사가 보증을 서줘요. 시행사는 대부분 영세하거든요. 아파트 분양이 잘되면 문제가 없지만 잘 안되면 시행사가 부도나고 PF 대출을 건설사가 갚아야 해요. 태영건설 같은 우량 건설사도 PF 보증 탓에 워크아웃에 들어가기도 했어요. 부동산 경기가 안 좋아지면 매번 건설사들이 줄줄이 넘어가는 것도 PF 보증 탓이 커요. 요즘 건설사가 위기인 이유도 같아요.

그런데 호반건설은 PF 대출이 거의 없어서 요즘 같은 시기에 강해요. 시행과 시공을 같이 하고 자기 돈으로 사업을 해서 그래요. 호반은 직접 땅을 매입하고 거기에 아파트를 지어요. 이렇게 땅 사고 건물 지으면 사업비는 엄청나게 올라가요. 사업이 잘 안되면 빚더미에 앉을 수도 있고요. 대신 잘만 하면 돈을 엄청 벌 수 있어요. 호반은 후자였어요. 주로 대규모 공공택지를 대량으로 매입한 뒤 아파트를 지었는데 분양수익이 엄청났어요. 작년에만 분양수익이 1조1400억원이나 했어요. 공사만 해주고 받은 공사수익은 9100억원이었는데 이것보다 더 많았어요. 작년 영업이익은 2700억원에 달했어요.

호반은 2015년에 아시아나항공 인수전에도 참여한 적이 있어요. 당시 본입찰에서 6000억원가량을 적어 냈는데 채권단이 너무 금액이 작다면서 매각하지 않았어요. 그로부터 10년 만에 다시 대한항공을 타깃으로 한 겁니다. 이쯤 되면 인수 의지가 강하다고 봐야 해요. 더구나 호반은 광주에서 시작한 호남 기반의 기업입니다. 금호그룹이 해체되고 아시아나항공이 대한항공에 팔리면서 많은 호남 사람들이 아쉬워했는데요. 호반이 국내 굴지의 대기업으로 성장할지 눈여겨보시죠.

안재광 한국경제신문 기자 ahnj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