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식의 와인 랩소디 <45>
와인 병 코르크를 오픈하지 않고 원하는 양만큼 따라 마실 수 있는 ‘코라빈 시스템(사진)’이 등장하면서 국내에서도 글라스 와인바가 빠르게 늘고 있다.
와인 병 코르크를 오픈하지 않고 원하는 양만큼 따라 마실 수 있는 ‘코라빈 시스템(사진)’이 등장하면서 국내에서도 글라스 와인바가 빠르게 늘고 있다.
프랑스 유력 일간지 르파리지앵은 최근 파리 관광지 일부 식당에서 손님이 주문한 고가 와인 대신 저렴한 와인을 제공해 부당 이윤을 남겼다고 폭로했다. 이 소식은 국내에서도 파장을 일으켰다. 여러 신문·방송에서 ‘와인 바꿔치기’라는 제목을 달고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관광객들이 이처럼 쉽게 속아 넘어간 것은 와인을 잔으로 주문(바이 더 글라스)했기 때문. ‘분갈이’라는 은어로 통하는 와인 바꿔치기 관행은 놀랍게도 지난 30여 년간 지속적으로 자행됐다고 현지 신문은 밝혔다. 이어 속지 않으려면 와인 라벨을 확인하거나 병 단위로 주문하라고 권장했다.

그렇다면 손님들은 왜 잔 와인을 선호할까. 먼저 장점부터 보자. 와인 한 병의 용량은 750mL로 대략 7잔이 나온다. 한 병을 통째로 마시기에 부담스러울 때뿐 아니라 요리와 잘 어울리는 각종 와인을 조금씩 맛보고 싶을 때도 당연히 잔 와인이 유리하다.

그 외에도 ▲다양한 포도 품종이나 새로운 종류의 와인 시음 ▲화이트나 레드, 스파클링 등 자신에게 맞는 와인 찾기 ▲상대적으로 부담 없는 가격 ▲언제든지 접근 가능한 가벼운 분위기 등 ‘잔 와인 마시기’에는 많은 장점이 있다.

반면 가장 큰 단점은 와인의 품질 유지 특성상 코르크를 개봉한 후 조금만 시간이 지나도 맛과 향이 빠르게 변한다는 점. 실제 제대로 된 잔 와인을 마시고 싶다면 최소 3~4시간 내, 길어야 당일 오픈한 와인을 서빙하는 곳을 찾아야 한다.

또 병 기준으로 가격을 비교해보면 대부분 잔당 가격이 훨씬 높게 책정된다. 업체 입장에서는 당일 팔지 못하고 남은 와인은 버리거나 보관에 많은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특히 잔 와인 판매 종류가 제한적이고 빈티지 등 라벨 정보를 확인할 수 없다는 단점도 있다.

다행히 코르크를 오픈하지 않고도 원하는 양만큼 따라 마실 수 있는 ‘코라빈 시스템’이 등장, 잔 와인 판매가 새로운 국면에 들어섰다. 작동 원리는 간단하다. 코르크에 가늘고 긴 바늘을 찔러 넣어 와인을 추출하는 방식이다.

그와 동시에 와인이 빠져나온 공간에는 질소 가스를 채워 넣어 산화를 방지, 와인의 맛과 향을 유지한다. 미세하게 뚫린 바늘구멍은 코르크 특성상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메워진다. 국내에서도 지난 2022년부터 일부 고급 레스토랑을 시작으로 최근 대형 백화점 와인바에서 코라빈 시스템을 속속 도입하고 있다.

지난 4월 현대백화점 압구정 본점에서는 ‘프리미엄 글라스 와인 바’를 오픈했다. 특히 이곳에서는 병당 가격이 100만원이 넘는 보르도 5대 샤토 와인 풀세트를 구비하고 잔 와인을 제공한다.

신세계백화점 강남점 역시 5월 11일 ‘BY THE GLASS’라는 와인바를 열었다. 전문 소믈리에가 상주하며 프리미엄 와인을 잔 단위로 제공한다고. 잔당 가격은 1만5000~4만원대까지 다양하다.

지난 2023년 12월 롯데백화점 에비뉴엘 잠실에서는 유통업계 최초로 ‘클럽 코라빈’을 오픈하고 보르도 5대 샤토는 물론 이탈리아 슈퍼토스칸 등 모두 500여 종의 다양한 와인을 잔 단위로 제공한다.

최준석 소믈리에(롯데백화점 소속)는 “와인 다이닝, 클럽 코라빈에서 잔 와인을 주문하면 최저 75mL를 따라준다. 따라서 개별 음식과 잘 어울리는 와인을 선별해서 마실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코라빈 사용은 스파클링보다 보존감이 더 좋은 스틸 와인이 적절할 것”이라고 말했다.

‘새로운 발견’은 와인이 주는 기쁨 중 하나다. ‘내 인생 최고 와인’을 아직 마셔보지 못했다면 부담 없이 전문 매장을 찾아가 ‘바이 더 글라스’를 외쳐 보시라.

김동식 와인칼럼니스트
juju43333@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