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권 독서 모임 진행하는 국내 1호 기록학자 김익한 교수
"편식하지 않는 독서가 통찰과 통섭 가능하게 한다"

서울 마포 김익한 교수 집무실에 있는 김익한 교수.
서울 마포 김익한 교수 집무실에 있는 김익한 교수.
국내 1호 기록학자 김익한 교수가 책 100권 읽기 모임을 시작했다. 10개월 동안 100권을 읽는 것이니 한 달에 10권씩 읽어야 한다. 가능한가 싶은데 김 교수는 그걸 몸소 실천해 보여준다. 그리고 100권의 책을 읽고 나면 자신 내면의 소리에 더 잘 귀 기울일 수 있고 사회 현상에 대한 이해도 더 깊어질 것이라 했다. 통찰과 통섭에 가까워진다는 뜻이다.

같이 읽는 시대다. 동네 주부 모임부터 서울 시내 직장인들도 저마다 독서 모임 대열에 합류하고 있다. 읽는 책 종류도 다양해 고전만 읽는 모임도 있고 투자나 커리어 성장 관련된 테마를 고르기도 한다. 김익한 교수는 편식하지 않는 독서를 위해, 그리고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자기 성장을 돕기 위해 100권 독서 모임을 만들었다.

김익한 교수는 ‘김 교수의 세 가지’로 대중에게 이름을 알렸다. 김 교수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이름이다. 지식과 정보의 내재화를 위해 딱 세 가지만 기억하라는 메시지를 주로 전파한다. 구독자는 39만 명이 넘는다. 영상 중 1시간에 50쪽 읽는 방법을 소개한 영상은 200만 조회수를 기록했다. 그가 쓴 첫 책 ‘거인의 노트’는 발간 직후 단숨에 1만 부 넘게 팔리더니 10만 부 판매고를 달성하고 스테디셀러로 자리 잡았다.

기록학을 국내에 본격적으로 알린 이가 바로 김 교수다. 서울대를 졸업하고 일본 도쿄대 대학원에서 역사학을 전공한 뒤 한국국가기록연구원장, 명지대 기록정보과학전문대학원 원장을 역임했다. 1999년 공공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기록물관리법) 제정에 참여했고 기록정보과학전문대학원을 만들었다. 그 공로를 인정받아 2019년 근정포장을 수상하기도 했다.

독서법 바꾸면 책 읽기 어렵지 않다
기록학자 김 교수가 무려 100권의 책 읽기에 도전하는 모임을 만든 것은 혼란스러운 시대를 살아가는 데 독서는 무엇보다 훌륭한 길잡이가 되기 때문이다. 수많은 정보와 타인의 욕망으로 인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잃고 왜곡된 시선에 사로잡혀 있다면 그것이 바로 철학자 쇼펜하우어가 말하는 ‘세상의 지옥’이라고 했다.

모임을 시작하고 보니 좋은 책을 읽고 싶다는 열망을 가진 사람이 의외로 많아 놀랐다. 내적 성장에 대한 목마름으로 김 교수는 이해했다. 30대부터 50대까지 직업도 연령도 다양하다. 60% 이상이 여성이라는 점에서 최근 달라진 사회상도 발견했다. 직장인은 물론 퇴사 후 자기 사업을 하려는 여성들은 주체성을 가지고 자기 커리어를 발전시키고자 했다.

“성장을 경험한 사람이 더 큰 성장도 꿈꾸게 됩니다. 이걸 경제적으로 연결해볼까요. 팬데믹 때 가상화폐나 주식시장 흐름에 그냥 올라타기만 했는데 큰돈을 벌었다가 이후 시장이 요동치며 돈을 잃은 거예요. 그러다 좀 괜찮아질 만하니 이번에는 미국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환율과 관세 등을 무기로 변동성을 조장해 대혼란을 겪어요. 그러면 아, 공부해야 하겠다 하는 생각이 드는 거죠.”

자본시장에서의 자산 형성 과정과 마찬가지로 삶에서도 세상사 통찰의 눈을 기르려면 독서는 필수다. 특히 포괄적 독서를 강조한다. 인문학을 모르고선 경제에 통할할 수 없고 인문학만으로는 과학적 판단이 필요할 때 지식의 부족함을 겪으니 과학책도 멀리해선 안 된다.

자기를 발견해 나가는 길에서 예술이 눈에 들어오고 현실 사회의 원리를 파악하기 위해 정치와 사회에도 눈을 떠야 한다. 그렇게 분야를 넘나들며 좋은 책을 읽다 보면 통찰력이 생기고 그래야 통섭도 가능하다고 했다. 통찰은 인생의 폭과 깊이에서 나오는 것이라는 대목에서 김 교수는 목소리를 높였다.

그런 목적으로 만든 100권 읽기 도서 목록에는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부터 장 지글러의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우치다 다츠루의 ‘푸코·바르트·레비스트로스·라캉 쉽게 읽기’ 등의 책도 담았다.

“어려운 책이라고 공부하듯 읽으려 하면 더 안 읽힙니다. 소파에 비스듬히 기대서 눈동자를 좌우로 움직이면서 읽는 독서법을 권하는데 오히려 그래야 책 읽다 졸리지도 않아요. 뭔가 몰랐던 것, 생소한 생각을 발견하면 줄 치고 메모하다 보면 30분에 50쪽 읽기도 가능해요. 집이 불편하면 공원 벤치에 나가 편히 읽어도 좋죠.”
김익한 교수는 편안한 자세로 눈을 움직이며 전체 내용을 인지하는 자신만의 독서법을 활용하면 10개월 동안 100권 읽기가 가능하다고 했다.
김익한 교수는 편안한 자세로 눈을 움직이며 전체 내용을 인지하는 자신만의 독서법을 활용하면 10개월 동안 100권 읽기가 가능하다고 했다.
읽고 난 뒤 ‘명시화’하는 과정 거쳐야 진짜 내 것
100 독을 하는 궁극적 목적은 자기 내면 깊이 들어간 다음 그걸 다시 끄집어내는 데 있다. 소위 자신의 ‘명시화’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100 독 챌린지와 함께 책 쓰기 강의도 같이 겸하는 이유다. 독서 모임 증가와 더불어 퍼스널 브랜딩 시대가 되자 여기저기 우후죽순 책 쓰기 강좌나 클래스가 늘어나고 있지만 제대로 된 강좌는 없어 보였다. 대부분 책 쓰기 기술을 강조했다.

김 교수는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연습부터 시작한다. 끝은 자신의 방향성으로 이어지고 그 과정에서 자신의 업과 연관된 지식의 깊이를 더해가는 질문과 답이 이어진다. 강연이지만 줌을 통해 일대일로 진행한다. 김 교수는 책 쓰기는 자기 생각을 글로 막연히 옮기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강연을 듣는 수강생들은 자기 어린 시절 가장 재미있던 순간부터 일하면서 무엇이 필요했고 그 과정에서 본인이 어떻게 문제를 해결했는지 순간순간을 되짚으며 본인이 원하는 방향성을 찾아 나가고 있다.

“퍼스널 브랜딩은 꼭 필요합니다. 그런데 흔히 말하는 브랜드라는 것이 혹하는 아이디어에 카피 붙이고 이미지 넣는다고 완성되지 않아요. 브랜드는 자기 아이덴티티이고 자신이 지향하는 미래 방향성에서 나옵니다. 거기에 자기가 잘하는 것이 조합됐을 때 브랜드로서 의미가 있죠. 그래야 브랜드와 어울리는 상품도 만들어집니다.”

브랜드는 그럴싸한데 명맥을 유지 못 하는 것들 대개는 오너가 지식이 부족하거나 삶의 지향점이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 김 교수의 판단이다. 그러니 부침 많은 회사도 나온다.

“제 브랜드 역시 그렇게 생긴 거죠. 유튜브를 하다 보니 저는 기록학자니까 기록에 대해 이야기하고 그걸 오래 하니까 신뢰감도 생기고 그러면 그게 제 브랜드의 원천이 되는 맥락이 생기고. 거기에 구독자를 통해 네트워크가 만들어졌어요. 그러면 사업에 실패할 수가 없습니다.”

김 교수는 그동안 ‘아이캔 대학’이라는 대중교육 플랫폼도 운영했다. 수강생 중 30%가 졸업한다. 대중교육 시장에서는 대단한 숫자다. 아이캔 대학 이전 만들어진 다수의 시민 강좌 수강자 중 3%가 끝까지 수업을 완료한다.

“아이캔 대학 첫 시작은 돈 많은 사람, 권력 센 사람에게 휘둘리지 말자는 취지였습니다. 제겐 그게 이타성이었어요. 누구나 삶의 목표와 인생의 꿈이 있는데 거기에 이타성이 결여되면 더 크게 나아가지 못해요. 열심히 투자해서 100억을 벌어봤자 옆에 누가 500억을 벌었으면 결핍을 느껴요. 500억을 벌었더니 누구는 1000억 벌고 누구는 1조를 벌면 또 허망하잖아요.”
100독 모임은 현재 5기를 모집 중이다.
100독 모임은 현재 5기를 모집 중이다.
성과지향형 목표의 부질 없음을 깨달으면 가치 상향적으로 살아야 한다는 게 보인다고 했다. 김 교수의 바람은 하나 더 있다. 한국에서 시민 지식인이 더 많이 나오길 바란다는 것이다. 모건 하우절이나 말콤 글래드웰 같은 베스트셀러 작가 모두 시민 지식인이다. 아이캔 대학이나 지금 김 교수가 운영하는 이룸네트워크를 통해 더 많은 시민 지식인이 나오는 세상을 꿈꾸게 된 배경이다.

이선정 기자 sligh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