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가 있다고 4차 산업혁명이… [김홍유의 산업의 窓]](https://img.hankyung.com/photo/202506/AD.40716737.1.jpg)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지만 혁신의 속도는 점점 더 빨라지고 있다. 절대강자의 지위를 지속하기가 그만큼 어렵다. 300년간 유럽의 전쟁에서 탄생한 화약 혁명은 약 200년 걸렸으나 제1차 산업혁명은 150년, 제2차 산업혁명은 40년, 제3차 산업혁명은 고작 30년밖에 걸리지 않았다. 변화가 빠르다는 것은 미래를 예측하기가 그만큼 더 어렵다는 뜻이고 아이러니하게도 시행착오를 겪을 시간이 없다.
진정한 독립 국가의 의미가 무엇인가? 정치적으로 독립되고 유엔이 독립 국가로 인정한다고 하여 독립국의 지위를 얻는 것이 아니라 독자적으로 첨단무기를 제조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이것을 기준으로 본다면 전 세계는 불과 5~6개의 독립 국가밖에 없다. 미군은 미래 전쟁의 핵심 기술로 인공지능과 자율(AI & Autonomy) 무기, 사이버(cyber) 전쟁, 로봇(Robotics) 전쟁 등 데이터 사이언스를 말했다. 지금은 발견의 시대가 아니라 실행의 시대다. 과거에는 천재 한두 명이 골방에서 뚝딱하면 만들어지는 기계의 시대라면 지금은 무수히 많은 엔지니어가 수많은 실험을 통해서 혁신을 만든다. 실패를 용인하는 시행착오의 축적 시간이 없이는 절대 만들 수 없는 기술이다. 시간과 양이 절대 필요하다.
삼성이 만든 반도체가 있다고 4차 산업혁명이 시작되는 것은 아니다. 반도체는 4차 산업혁명의 핵심 부품임은 틀림없지만 반도체가 없어서 4차 산업혁명이 안 되는 것도 아니다. 4차 산업혁명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국가를 전환할 수 있는 능력이 관건이며 여전히 미국과 일본, 유럽이 우리보다 훨씬 앞선다. 이들은 1, 2, 3차 산업혁명을 겪으면서 스스로 국가를 개조한 경험과 능력이 있다. 1차 산업혁명인 증기기관이 산업혁명을 촉발한 것이 아니라 ‘증기기관으로 만들어진 산업’이 산업혁명을 일으켰다. 증기선, 증기철도, 증기 군함 등등 이들 모두는 글로벌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핵심 수단이었으며 글로벌 산업을 하기 위한 부품이었다. 구한말 조선은 증기 군함을 도입하였지만 아무런 쓸모가 없었다. 이들을 운용할 사람도 산업도 없었기 때문이다. 반도체도 이와 같다. 반도체로 만들어진 인공지능과 자율주행 산업, 그런 산업으로 글로벌 네트워크 체제를 만드는 일, 그런 일을 하지 못하면 우리는 그저 부품만 공급하는 나라에 지나지 않는다.
새로운 산업은 새로운 시장이 있어야 하고, 새로운 시장의 개척에는 우선 자국의 거대한 내수시장과 보이지 않는 힘이 필요하다. 우리는 거대한 내수시장도 없고, 국가의 보이지 않는 힘도 없다. 유일한 방법은 이스라엘처럼 국방부가 거대한 기업의 창조공간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점이다. 오늘의 삼성이나 현대는 시장이 없는 곳에 천문학적 불공정 투자를 하였다. 엊그제까지 불공정의 기업으로 비난을 퍼부었던 사람들이 오늘은 왜 그런 불공정을 더 키우지 못했느냐고 더 비난한다. 첨단기술을 만드는 축적의 시간에는 일벌백계가 아닌 시행착오를 용인하는 문화, 사농공상이 아닌 전문가(엔지니어)가 존중되는 세상, 교육 평등주의가 아닌 창의적 인재 양성이 없으면 절대 성공할 수 없다. 보이지 않는 머리에 국가가 있다. 국가가 이런 일을 한다. 개발 저항이 아닌 개발 지향 문화를 만들고, 젊은이들이 노량진이 아니라 판교 테크노밸리로 가게 만드는 것도 기업이 아니라 국가의 몫이다. 스스로 모든 것을 만든다는 것은 아무것도 제대로 만들 수 없다는 다른 말이다. 자력 기술개발이 아니라 글로벌 네트워크 속에서 우리의 경쟁과 협력을 찾아야 하며, 때론 기업의 역할을 위해 보이지 않는 주먹을 휘둘러야 한다.
김홍유 경희대 교수 [한국방위산업협회 정책위원, 전 한국취업진로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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