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석동 지평 인문사회연구소 대표와 전병서 중국경제금융연구소장이 연단에 올라 관세전쟁으로 촉발된 급변하는 세계경제와 한국 경제의 방향성을 짚었다.
하영춘 한경비즈니스 대표는 인사말에서 “최근 미국의 관세전쟁, 중국의 기술굴기, 국내 내수 부진 등 대내외 경제 환경이 녹록지 않은 상황에서 한국은행은 성장률 전망치를 0.8%로 낮춰 잡았다”며 “새 정부 출범 이후 상황이 개선되길 기대하지만 우리 경제의 향후 방향성에 대한 불안감은 여전하다”고 진단했다.
하 대표는 “이번 포럼을 통해 한국 경제가 어디에 서 있으며 앞으로 어떤 방향을 지향해야 할지를 함께 고민해보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며 “무엇보다 우리 경제를 가장 가까이에서 분석하고 있는 애널리스트 여러분이 향후 어떤 시각과 접근법으로 경제를 바라볼지에 대한 통찰을 얻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비관보다 구조적 전환 준비해야”

이날 전 소장은 외국인 투자자들의 지속적인 한국 증시 이탈 현상을 단순히 수급 이슈로 해석해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정부가 밸류업(Value-up)을 외쳤지만 정작 외국인 자금은 돌아오지 않았다”며 “일본과 중국은 효과를 봤지만 한국은 약발이 듣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그 원인으로 전 소장은 ‘성장성의 부재’를 들었다. 그는 “우리는 세계 평균 성장률을 따라가지 못한 지 벌써 22년이 지났다”고 말하며 “물은 높은 데서 낮은 데로 흐르지만 자본은 그 반대다. 낮은 성장률의 한국에서 더 높은 성장을 보여주는 시장으로 자금이 이동하는 건 당연지사”라고 단언했다.
특히 삼성전자를 둘러싼 외국인 매도세에 대해 “삼성전자가 죄를 지었냐, 그렇게 못했냐? 아니다. 외국인은 복잡한 코스닥 종목 1000개를 파는 것보다 삼성전자 한 종목 파는 게 정리하기 편하기 때문”이라며 “결국 외국인의 자금 이탈은 종목 문제가 아니라 한국의 구조적 성장성에 대한 회의”라고 분석했다.
전 소장은 “지금 한국은 다시 25년 전으로 돌아간 상황”이라며 구체적인 수치로 한국의 퇴행을 설명했다. “한국의 GDP는 지금 미국 대비 5.8% 수준인데, 이는 2000년대 초반 수준으로 퇴행한 것”이라며 “이럴 때 쓰는 말이 바로 ‘퇴행’”이라고 강조했다.

이를 회복하기 위한 해법으로 산업 구조의 대전환 필요성을 강조했다. 전 소장은 “이제는 철강·조선·기계·자동차처럼 한물간 산업으로는 미래를 담보할 수 없다”며 “진정한 체질 개선은 ‘산업의 진화’에서 시작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가 주목한 방향은 AI 그리고 중국의 변화다. 전 소장은 미국의 고율 관세 정책이 오히려 중국의 기술 자립을 가속화하는 결과를 낳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의 택스(Tax)가 오히려 테크(Tech), 특히 AI 발전을 무지막지하게 밀어붙이는 촉매제가 됐다”며 “중국은 25% 관세를 맞고도 작년 대미 흑자 3000억 달러, 전체 무역흑자 9900억 달러를 기록했다”고 설명했다. 이 수치는 중국이 관세 충격을 ‘국산화’와 ‘규모의 경제’로 정면 돌파했다는 증거라고도 했다. “34%의 추가 관세를 맞은 지금 향후 3년간 중국이 흑자 기조를 유지하려면 30%의 생산성 향상이 필요하고 그것을 가능하게 할 유일한 수단은 AI뿐”이라고 그는 강조했다.
전 소장은 “중국은 단순한 AI 연구를 넘어 AI를 제조업과 실물경제에 접목한 ‘인더스트리 AI’로 이미 방향을 전환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지금 중국의 로봇은 마라톤도 뛰고 무용수와 춤도 추고 격투기와 체조도 한다”며 “이제 AI는 기술이 아니라 산업 그 자체로 진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미국은 화이트칼라 AI를 하고 있고 중국은 AI를 산업에 붙여 ‘AI 플러스(+)’ 전략을 통해 제조업을 통째로 바꾸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이 같은 변화 속에서 한국의 생존 전략은 명확하다고 진단했다. “AI의 흐름이 어디로 가든 간에 그 기반은 반도체·데이터센터·서버 같은 하드웨어 인프라에 있다”며 “이 분야는 한국이 여전히 지배력을 가진 영역”이라고 밝혔다. 그는 “메모리 산업의 경쟁력이 떨어진 것이 아니라 삼성에서 SK하이닉스로 ‘선수 교체’가 일어난 것뿐”이라며 “HBM에서 점유율 90%를 점하고 있는 한국은 다시 AI 산업의 핵심 플레이어가 될 수 있다. 이런 경쟁력을 너무 비관적으로 볼 필요가 없다”고 덧붙였다.
끝으로 전 소장은 “청바지 장사와 곡괭이 장사가 골드러시 때 돈을 벌었듯이 우리는 AI 광풍 속에서 지금이야말로 낙하산이 아닌 비행기를 만들 타이밍이며 새 정부가 그 기회를 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장 난 나라…정부, 규제 혁파 필요”

김 전 위원장은 “가계·기업 부채는 세계 정상급이고 저출산·고령화는 세계 최악”이라며 “25년간 구조조정을 하지 않았고 곳곳에 부실이 잠들어 있다”고 밝혔다. 이어 “이제 잠재성장률은 회복 불가능한 수준으로 떨어졌으며 우리는 ‘끓는 냄비 속 개구리’처럼 위기를 느끼지 못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대외적 경제 상황에 대해선 “(미국은) 1980년 금리 20%에서 지난 40년간 0%로 내려왔다. 그사이 (세계는) 엄청난 돈을 풀었고 글로벌 부채가 폭증했다”고 밝혔다. “금리를 내린다고 부채가 사라지는 건 아니며 부채는 그대로 남아 다음 위기의 뇌관이 된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은 GDP 대비 부채가 280%, 일본은 400%를 넘는다. 한국도 정부 부채는 낮지만 가계·기업 부채는 세계 최고 수준”이라며 “부채가 한계에 다다랐고 자산 가격은 수직 상승해 더 이상 지속가능하지 않다”고 경고했다. 이어 “저금리·저물가·고성장 시대가 끝나고 고금리·고물가·저성장 시대로 진입했다”며 “전 세계가 쌓아올린 거대한 부채와 자산 가격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약”이라고 비유했다.

문제는 한국이 직면한 상황이다. 그는 세 번의 경제 위기를 비교하며 “이번 위기는 과거와 차원이 다르다”고 강조했다. 1997년 외환위기는 ‘한국만의 문제’였고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에는 ‘세계는 어려워도 한국은 견딜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한국과 세계 모두가 어렵다. “이번엔 우리도 세계도 고장 났다”고 직설했다.
김 전 위원장은 “지금이야말로 마지막 전쟁”이라며 비유를 들었다. 총칼을 든 전쟁이 아닌 경제 전쟁이다. 그는 “전쟁터에 나가는 군인에게 수갑을 채우고 굶기고 내보낼 수는 없다. 기업과 국민에게 규제라는 족쇄를 풀고 무기와 식량을 주듯 지원해야 이 전쟁을 이길 수 있다”며 새 정부의 규제 혁파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이런 극단적 위기 상황에서 ‘한국인 특유의 DNA’가 해법이 될 수 있다며 우리의 국운을 결정하는 마지막 경제 전쟁에 대비해 경제·사회 구조 개혁에 대한 국민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김 전 위원장은 “성장하자는 의지를 함께 모아야 하며 경제·사회 구조를 전면적으로 개혁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국민은 허리띠를 졸라매야 하고 시장에 대한 신뢰도 회복해야 한다. 정부의 과도한 개입은 오히려 경제를 망친다”고 지적했다.
그는 위기 극복의 열쇠는 한국인의 DNA에 있다고 말했다. “한민족은 고난과 역경 속에서 더 강해지는 존재”라며 “끈질긴 생존 본능, 승부사 기질, 집단 의지, 개척자 정신이 우리 안에 있다. 우리는 이겨낼 수 있고 반드시 이겨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120년 전 을사늑약을 생각해 보라. 지금이 그만큼 위태롭다”며 “당시 우리 선조들이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했던 것처럼 이제 우리도 실천해야 할 때가 왔다”고 말했다. “대한민국 산업을 지키고, 기업을 지키고, 국민을 지키는 일에 여러분 모두가 나서주시기를 간절히 부탁드린다”며 강연을 마무리했다.
한편 한국경제매거진이 주최한 ‘2025 제주 애널리스트 포럼’은 제주국제컨벤션센터에서 5월 30일부터 31일까지 양일간 열렸다. 이홍표 한경비즈니스 취재편집부장이 사회를 맡았으며 김지영 교보증권 리서치센터장, 노근창 현대차증권 리서치센터장, 윤여철 유안타증권 리서치센터장, 이승우 유진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 이종형 키움증권 리서치센터장, 조수홍 NH투자증권 리서치본부장, 황승택 하나증권 리서치센터장(가나다순) 등 주요 증권사 리서치센터장과 애널리스트 31인이 참석했다.
정채희 기자 poof34@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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