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적분할로 CDMO·시밀러 사업 분리하고 각자도생
로직스 88조원, 에피스 9조원…기업가치 재평가 기대

삼성바이오로직스 직원이 4공장 배양기를 점검하고 있는 모습 / 한국경제신문
삼성바이오로직스 직원이 4공장 배양기를 점검하고 있는 모습 / 한국경제신문
삼성그룹이 바이오 사업 구조 재편에 나섰다. 삼성바이오로직스(이하 로직스) 산하 바이오시밀러(바이오 복제약) 개발 자회사인 삼성바이오에피스(에피스)를 분리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회사 측은 CDMO(바이오의약품위탁개발생산) 사업과 바이오시밀러 사업을 독립적으로 운영해 기술 유출 우려를 해소하고 수익성을 높이기 위한 전략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개발과 생산 간 시너지가 사라지고 신약 프리미엄을 누리지 못하게 돼 기업가치와 성장성이 정체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분할 소식에 주가 롤러코스터

로직스는 지난 5월 22일 에피스를 별도 지주사 아래 두는 인적분할 계획을 발표했다. 분할 후 로직스는 존속법인으로 CDMO 사업을 지속하고 신설법인 삼성에피스홀딩스를 설립해 기존 100% 자회사인 에피스 지분 전량을 넘기게 된다. 존속법인 로직스와 신설법인 홀딩스의 비율은 약 65 대 35로 진행된다. 기존 로직스 주주는 보유 주식 1주당 약 0.65주는 감자(주식병합)를 로직스 주식으로, 나머지 약 0.35주는 분할 후 재상장되는 홀딩스 주식으로 받게 된다.

이 소식이 시장에 퍼지면서 관련 기업의 주가는 요동쳤다. 5월 21일 로직스 주가는 장중 9% 급등했고 22일 8% 오른 119만원까지 치솟았다. 그러나 인적분할 공시가 발표되자 차익실현 매물이 쏟아졌다. 이날 주가는 1.82% 하락 전환했다. 23일에도 5.93% 급락했다. 2거래일 동안 고점 대비 약 15% 빠진 것이다. 로직스 주가는 6월 들어 100만원 안팎을 오르내리고 있다.

반면 로직스의 최대주주인 삼성물산 주가는 고공비행하고 있다. 삼성물산은 로직스 지분 43%를 보유하고 있다. 이 회사는 로직스의 인적분할 소식이 전해진 날 장중 8.63% 오른 15만1000원을 기록했다. 여기에 보험법 개정과 맞물린 삼성그룹 지배구조 개편 기대감이 커지면서 삼성물산 주가는 6월 9일 장중 17만4500원까지 치솟았다. 증권가는 삼성그룹이 명확한 시나리오를 제시하지 않는 한 삼성 계열사의 주가 불확실성이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
◆16년 만의 결별 이유는

삼성그룹이 바이오 사업에 본격 뛰어든 것은 2009년이다. 당시 그룹은 연구개발(R&D) 중심의 바이오 신약 개발보다는 반도체 사업으로 쌓은 클린룸 기반 제조 역량을 활용할 수 있는 CDMO 사업부터 시작하는 전략을 택했다. 바이오 사업 특성상 개발 실패 리스크가 큰 만큼 안정적인 사업 모델을 우선 선택한 것이다. 그 뒤 삼성은 R&D 영역으로도 발을 넓혔다. 글로벌 제약사 바이오젠과 손잡고 합작법인 에피스를 설립하며 바이오시밀러 개발에 나섰다. 이 과정에서 일반적인 구조와는 다른 모습이 만들어졌다. 보통 R&D 기업이 CDMO 자회사를 두는 경우가 많은데 삼성은 CDMO 사업을 하는 로직스가 오히려 R&D 기업인 에피스를 자회사로 두는 구조가 된 것이다. 이후 2022년 바이오젠이 보유하던 에피스 지분까지 인수해 에피스는 로직스의 100% 자회사가 됐다.

문제는 CDMO 사업 특성상 발생했다. CDMO 기업은 고객사로부터 의약품 생산과 관련한 핵심 기술을 이전받아 생산을 맡는다. 그런데 로직스가 바이오시밀러를 직접 개발·판매하는 에피스를 자회사로 두다 보니 고객사 입장에서는 기술 유출 우려가 생길 수밖에 없었다.

로직스는 이를 해소하기 위해 IT 시스템을 분리하고 프로젝트 담당 인력을 고정하는 등 ‘방화벽’을 구축했지만 한계가 있었다. 에피스의 바이오시밀러 사업이 가파르게 성장하면서 신규 고객사들은 이해상충 우려를 더욱 크게 느끼는 분위기였다. 방화벽 유지에 따른 내부 운영 비효율성도 커졌다. 결국 에피스를 분리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게 된 배경이다.
◆이해상충 해소·가치 재평가 기대

로직스도 이번 분할의 배경으로 에피스가 바이오시밀러 사업을 영위하면서 CDMO 고객사와 직접 경쟁하는 구조적 이해상충 우려가 지속돼 온 점, 사업 속성이 다른 수주형 CDMO와 개발형 바이오시밀러 사업 가치가 시장에서 온전히 반영되지 못한 점을 꼽았다. 최근 미국에서 관세·약가 인하 등 정책적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이러한 구조적 우려가 사업 리스크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것이다.

에피스도 이번 분할이 긍정적이라는 입장이다. 그동안 모회사인 로직스의 고객사들을 의식해 바이오시밀러 사업 계획이나 성장전략을 외부에 적극적으로 알리기 어려운 측면이 있었기 때문이다. 실적과 수익성이 개선돼도 시장에서 정당한 평가를 받기 힘들었던 구조였다는 게 회사 측의 설명이다.

재무적 이유도 분할을 결정하는 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로직스는 별도 기준으로 30% 후반에서 40%대 영업이익률을 내고 있다. 반면 에피스의 영업이익률은 20%대다. 에피스가 연결 자회사로 묶이면서 로직스의 연결 기준 영업이익률은 30% 초반으로 낮아졌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수익성 약화로 비칠 수 있는 부분이다.

밸류에이션(실적 대비 주가 수준) 측면에서도 분할 필요성이 제기됐다. 일각에선 바이오시밀러 사업이 떨어져나가면 로직스는 안정적이고 고수익인 CDMO 사업만으로 평가받을 수 있어 기업가치가 오히려 높아질 것이라는 주장을 펴고 있다. 김민정 DS증권 연구원은 “로직스는 글로벌 수주 가속화를 기대할 수 있고 안정적이며 수익성이 높은 CDMO 사업만으로 기업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게 된다”며 “홀딩스는 바이오 투자지주회사로서 미래 성장성이 높은 신약개발 사업에 선제적으로 적극 투자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승민 미래에셋증권 연구원도 “그동안 에피스가 연결 실적에 포함돼 로직스의 성장률과 수익률이 과소평가됐는데 인적분할로 이런 문제가 해소될 것”이라고 말했다.

인적분할 후 홀딩스는 현금 및 현금성자산 약 1000억원과 기존 투자자산 약 3조2650억원을 보유하게 된다. 홀딩스는 에피스 배당 등 향후 다양한 방법으로 자금을 조달하고 신약 개발에 투자한다는 계획이다.
◆홀로서기로 ‘윈윈’ 가능할까

그러나 인적분할에 따른 부정적인 측면도 적지 않다. 고위험·고수익이지만 비용이 많이 드는 신약 개발 사업과 저위험·중수익인 생산 사업이 시너지를 기대할 수 없게 된다는 점에서다. 로직스는 바이오 사업의 ‘꽃’인 신약 개발 프리미엄을 누릴 수 없게 되고 에피스는 안정적인 수익 기반을 잃어버리게 된다. 바이오 업계 관계자는 “인적분할을 해도 삼성그룹 계열사인데 이해상충 문제가 완전히 해소될지는 의문”이라며 “그동안 수익성과 리스크가 다른 두 사업이 장단점을 보완했는데 분할 이후에도 성장성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로직스는 인적분할 후 공장 증설과 수주, 실적으로 사업이 단순화돼 전방 산업과 관련한 위험에 쉽게 노출될 가능성이 커진다. 바이오 시장이 둔화되거나 정책 리스크가 터지면 성장성이 정체되고 기업가치에 직접적인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것이다. 분할 후 수주 성과를 내지 못할 경우 투자 심리가 급격히 위축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분할 후 로직스의 가치가 상승하고 홀딩스의 기업가치는 상대적으로 낮아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정유경 신영증권 연구원은 “연결 손익에 인수가격배분 상각을 고려하면 홀딩스의 연결 영업이익은 한 자릿수 초중반에 그칠 것”이라며 “홀딩스가 현금 및 현금성자산 1000억원을 보유하게 되지만 신규사업 투자를 위한 재원으로는 부족해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분할 비율이 다소 높아 재상장일인 10월 29일 전까지 홀딩스의 사업전략이 보다 구체적으로 제시돼야 한다”며 “자금조달 계획이 수반되지 않는다면 사업확장 의지에 대해 의구심이 증폭될 수 있다”고 말했다.

증권가는 인적분할 계획이 발표된 이후에도 로직스의 목표주가를 130만~140만원대로 유지했다. 로직스의 적정 기업가치는 88조원, 에피스는 9조원대로 평가됐다. 다만 로직스는 미국과 유럽 공장 확장을 발표할 경우 수익성이 악화할 가능성을 염두에 둬야 한다는 조언도 나온다. 김민정 DS투자증권 연구원은 “로직스는 표준화된 설계와 업계 최고 수준의 건설 속도로 국내에 공장을 지어 건설 비용을 최소화해왔다”며 “해외에 공장을 지을 경우 국내보다 159% 높은 인건비를 감당해야 하고 공사 기간도 국내보다 약 40% 늘어나 수익성이 나빠질 수 있다”고 말했다.

로직스는 인적분할 후 주주 권익 보호를 위해 5년 내 에피스를 상장할 가능성은 없다고 선을 그었다. 에피스를 주력 자회사로 확장하는 데 집중하겠다는 것이다. 정희령 교보증권 연구원은 “인적분할 후 시장의 관심은 에피스의 방향성에 집중될 것”이라며 “에피스가 기존 항암·항염 분야 블록버스터 시밀러 위주의 파이프라인에서 바이오 기술 플랫폼 개발까지 사업 영역을 확장하는지 여부가 향후 기업가치를 결정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전예진 한국경제신문 기자 ac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