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양이 캐릭터가 가득 그려진 배에 올라 바닷바람을 맞고 있으니, 선장이 말했다. “쑥섬에 다 왔습니다.” 3분. 짧은 항해 끝에 작은 섬, 애도(艾島)에 도착했다.

그 옆으론 고양이를 위한 쉼터들이 군데군데 놓여 있고, 그 뒤로 섬 주민들의 소박한 삶터가 이어진다. 고양이와 사람이 나란히 살아가는 풍경. 쑥섬은 그렇게 조용한 첫인사를 건넨다.

이 숲이 외부에 개방된 건 2016년. 1970년대 70가구, 400명이 살던 섬은 이제 주민 12명이 남았다. 절반 이상이 80대 이상 고령자다. 마을의 유일한 배편마저 끊길 위기에 처하자, 쑥섬의 국어교사 김상현 씨와 약사 고채훈 씨 부부가 나섰다. '쑥섬지기'를 자처한 두 사람은 10년 넘게 주민들을 설득했고, 마침내 섬은 세상에 조심스레 문을 열었다.

쑥섬의 가장 높은 지점, 해발 80m에는 하늘정원이 있다. 두 사람이 손수 가꾼 이 정원엔 300여 종의 꽃이 계절 따라 흐드러지게 핀다. 다도해의 수평선을 배경으로 수국, 장미, 매화가 꽃길을 만들고, 한 걸음 한 걸음마다 고요한 숨결이 밟힌다.
전남 제1호 민간정원으로 등록된 이곳은, 사람의 손길이 닿되 자연의 질서를 거스르지 않도록 만든 ‘지붕 없는 미술관’이다.

이 섬이 더욱 특별한 이유는, 이 길 어느 곳에서나 고양이들이 편히 낮잠 자고 있다는 사실이다.
오래전 당제를 올릴 때 닭과 개가 울면 부정을 탄다고 여겼던 전통 탓에, 이 섬에는 고양이만이 남았다(최근 개가 2마리 생겼다고 한다).
하지만 고양이들은 처음부터 잘 돌봄을 받았던 것은 아니다. 2016년 섬이 개방될 무렵, 30~40마리로 추정되는 고양이들은 대부분 말라 있었고, 음식물 쓰레기를 뒤져 먹으며 생존을 이어갔다. 중성화 수술도 이뤄지지 않아 개체 수는 계속 늘었다.
이곳을 찾은 동물구조 활동가가 사료를 지원하며 작은 변화가 시작됐다. 고양이에게 사료를 챙겨주던 한 주민은, 점점 고양이들이 살이 오르고 건강해지는 걸 체감하게 됐다. 며칠 뒤, 마을 청소를 담당하던 주민은 “고양이들이 사료를 먹고부터 묽은 변을 싸지 않아 청소가 수월해졌다”며 사료를 더 보내달라고 연락해왔다.

쑥섬은 우리가 쉽게 소비하고 떠나는 관광지가 아니다. 그보다는 다정함이라는 말의 진짜 의미를 다시 떠올리게 해주는 곳이다. 지역을 위해 숲을 연 교사의 손길이든, 고양이를 위한 밥그릇 하나든.
⸻ 쑥섬(애도) 방문 정보 ⸻
위치|전라남도 고흥군 봉래면 나로도항길 120-7
운항 시간|07:30 ~ 15:30 (5~8월은 연장 운영)
탐방 소요|도보 기준 약 1시간 30분~2시간
주의 사항|반려견 동반 금지
(쑥섬은 고양이의 섬! 생태 보호를 위해 취식·야영도 제한됩니다)
정채희 기자 poof34@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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