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장사 감사·사외이사 감시기능 후퇴
상법 개정 필요성 부각

ESG(환경·사회·지배구조) 평가기관 서스틴베스트는 20일 국내 1295개 상장사를 대상으로 실시한 '2025년 상반기 ESG 평가' 결과를 발표했다. 특히 지배구조 부문에서 감사와 이사회가 수행해야 할 ‘감시자’ 역할이 실질적으로 약화됐다는 평가가 나왔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내부감사부서(감사업무 지원조직)를 독립적으로 설치하지 않은 기업은 전체의 55.4%에 달해, 전년(53.4%)보다 2.0%p 증가했다. 명목상 감시기구는 존재하지만 실질적 독립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감사 또는 감사위원이 6년 이상 장기 재직 중인 기업 비중도 26.2%로, 전년 대비 2.0%p 상승했다. 서스틴베스트는 “감사의 장기 재직은 경영진과의 유착 우려를 키우고 감시 역할을 형해화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사외이사 거수기 역할 심화
이사회 안건에 대한 사외이사의 견제 기능은 사실상 유명무실했다. 사외이사 전원이 모든 안건에 찬성한 기업은 무려 95.3%에 달했다. 전년(94.1%)보다 상승한 수치로, 특히 자산 2조원 이상 대기업에서 그 경향이 더 뚜렷했다. 상장사의 사외이사가 여전히 ‘거수기’에 머무르고 있다는 뜻이다.
이 같은 조사 결과는 최근 정부와 국회가 추진 중인 상법 개정안의 필요성을 부각시킨다는 평가가 나온다. 해당 개정안은 △대기업 집중투표제 의무화 △이사의 충실의무에 ‘주주’ 명시 △감사위원 선임 시 특수관계인 지분 포함 3%룰 적용 등을 주요 내용으로 담고 있다. 개정안은 감시 기능 강화와 주주 권한 확대를 제도적으로 뒷받침하려는 취지다.
류영재 서스틴베스트 대표는 “감사와 사외이사는 기업의 건전성과 투명성을 유지하는 핵심 기구” 라며 “이들의 독립성과 실효성이 확보되지 않으면 주주와 투자자의 신뢰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어 “상법 개정안은 국내 기업 거버넌스의 구조적 한계를 보완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로, 자율 개선만으로는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결이 어렵다”고 강조했다.
한편, 이번 ESG 평가에서는 거버넌스 부문의 전반적 후퇴 속에서도 책임 있는 경영으로 모범을 보인 기업들도 확인됐다. 서스틴베스트는 ESG 전 영역에서 우수한 성과를 보인 100개 기업을 ‘2025년 상반기 ESG 베스트 컴퍼니 100’으로 선정해 함께 발표했다.
연결 재무제표 기준 자산 2조원 이상 부문에서는 현대홈쇼핑(1위), 현대백화점(2위), KT(3위), 유한양행(4위), 네이버(5위), 풀무원(6위), 제주은행(7위), 엔씨소프트(8위), GS리테일(9위), OCI홀딩스(10위)가 각각 상위 10개사로 선정됐다.
5천억원 이상 2조원 미만 부문에서는 HK이노엔(1위), 현대그린푸드(2위), 콜마홀딩스(3위), 동아ST(4위), 한섬(5위), 한세실업(6위), 한독(7위), 에스티팜(8위), HL디앤아이한라(9위), 한국전력기술(10위)이 각각 상위 10개사에 이름을 올렸다.
이승균 한경ESG 기자 cs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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