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애플은 Siri LLM을 기반으로 디바이스에 AI를 주입시키려는 계획이었을 것이다. 오픈AI의 데이터와 시스템 접근권에 큰 제한을 둔 것도 프라이빗 AI 데이터센터 건설과 ‘코드X’의 공개는 생태계를 내부 기술로 완성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증거다. 무엇보다 인터페이스의 핵심으로 작용할 AI를 외부의 손에 맡긴다면 애플이 기기 간 일관적인 사용자 경험을 제공하기 힘들다고 판단한다.
그러나 애플 내재 개발의 가능성은 점점 줄고 있다. 올해 3월 AI ‘시리’ 공개를 세 달 앞두고 애플 AI 총책임자인 존 지아난드레아가 시리 LLM 개발에서 손을 떼면서 애플 AI의 민낯이 드러났다. 내년 초 아이폰 업그레이드를 통해 제어판과 앱을 컨트롤하는 AI를 공개하려는 게 언론을 통해 퍼진 최근의 일정이지만 주식시장 내 신뢰도는 확실히 떨어졌다.
애플 성공의 핵심 경쟁력은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디자인, 그리고 생태계 내재화다. 직관적인 사용자 경험과 브랜드 이미지는 수십 년간 이어져 온 애플의 사용자 중심의 제품 설계에서 비롯된다. 마우스, 아이콘, 아이폰과 밀어서 잠금해제와 같이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아우르는 특유의 인터페이스는 애플의 가장 큰 경쟁력이다. 또한 이를 바탕으로 아이튠스, 앱스토어와 같은 생태계를 구성할 수 있는 힘이 있다.
그럼 애플은 기술회사가 아닌가. 당사는 애플의 기반 기술이 뛰어나다는 주장에 동의한다. 그러나 그 기술은 애플 고유의 기술이 아니다. 애플은 타고난 쇼핑 전문가다. 그 기술들은 대부분 외부에서 사다 만든 기술이다. 칭찬받는 애플 기술 중 애플로부터 시작된 기술은 거의 없다. 현재 AI의 선봉에 선 시리조차도 애플이 인수한 회사다. 스티브 잡스의 마지막 M&A로 유명하다.
완성된 애플 생태계의 퍼즐의 빈 조각을 외부에서 찾는 건 애플의 오래된 문화다. 중요한 건 애플로 오는 순간 애플의 원래 기술인 것처럼 틈새 없이 녹아든다는 것이다. 회사의 철학이 확고하지 않으면 절대 따라할 수 없는 애플만의 차별화된 강점이다.
애플이 이번엔 AI를 틈새 없이 녹이는 데 실패했다. 그러나 애플이 기회를 모두 잃은 것이 아니다. 여전히 AI 디바이스 아이디어는 애플이 주도할 것이다. 당사는 2027년 애플 20주년 아이폰이 일종의 분기점이 되리라 믿는다. 그사이 퍼즐을 채워야 할 텐데 과거 애플의 사례로부터 배우는 성공의 요건은 다음 몇 가지라고 생각한다.
애플은 M&A 이후 내재화를 선호한다. 생태계를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애플은 파트너십이 아닌 M&A를 해야만 AI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파트너십은 마치 애플 지도를 만들기 전 구글 지도를 빌려 썼던 것처럼 단기적일 가능성이 높다.
핵심은 AI 기술이 아니라 애플이 고르는 인터페이스다. 인터페이스는 소비자와의 접점이다. 음성인식, 지문인식, 멀티터치, 듀얼카메라에 이어 AI 서비스의 핵심이 될 인터페이스는 무엇일까. 원래 애플은 산업을 선도하는 업체가 아니라 남들이 못 찾은 보석을 찾아내는 팔로어에 가깝다.
2027년 애플이 턴어라운드를 시작할 것으로 기대한다. 아직은 투자 시점의 여유가 많이 남아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그 중간의 행보들이 2027년 시작의 가시성을 높여 줄 뿐 아니라 AI의 확산 방향을 알려주기 때문에 의미가 있다.
이종욱 삼성증권 애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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