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식의 와인 랩소디 <49>

장마가 사라졌다. 며칠 전 서울의 한낮 기온이 36도를 기록했다. 올여름 무더위가 7월 초입부터 시작된 것. 언론매체들은 ‘100년 만에 찾아온 7월 초 폭염’이라며 연일 아우성이다.


이런 날 야외나들이 자체가 고통이다. 차라리 에어컨을 적당히 틀고 ‘방콕’ 하면 어떨까. 시원한 화이트 와인 몇 병 들고 내 집 식탁으로 떠나는 ‘실속 피서’를 적극 권장한다.

문제는 시중에서 판매되는 와인 종류가 너무 많다는 것. 이름 외우는 것조차 힘들다. 돌아서면 잊어버리기 십상이다. 과연 어떤 와인을 마셔야 가마솥더위를 잘 넘길 수 있을까.

여름철 집에서 마시기 좋은 와인으로는 샤도네이(포도 품종 중 하나)만 한 것이 없다. ‘화이트의 여왕’답게 신선함과 상큼한 느낌이 최고다. 지구촌 어디서든 잘 자라고 토양 특성을 적극 반영해 다양한 스타일을 맛볼 수 있다.
보데가스 볼베르, 트리가 샤도네이
보데가스 볼베르, 트리가 샤도네이
먼저 스페인 와인 ‘보데가스 볼베르, 트리가 샤도네이(Bodegas Volver, Triga Chardonnay 2022)’부터 살펴보자. 짙고 밝은 노랑 컬러의 첫인상이 예사롭지 않다. 넋을 잃고 한참 동안 바라봤다.

투우와 열정을 잘 표현한 와인이다. 아무리 와인 초보자라도 첫 모금부터 잘 익은 살구와 자몽 향을 단박에 잡을 수 있다. 시간이 조금 지나자 부드러워지고 강렬한 미네랄 풍미가 다가온다.
포도원이 소재한 알리칸테 지역의 기후와 테루아 덕분이다. 지중해 영향을 받았다. 온화한 대륙성 기후로 밤낮 큰 일교차를 보인다. 적절한 강수량은 풍부한 보디감으로 나타났다.

화이트 와인이 다 그렇지만 요즘 같은 여름철에는 특히 서빙 온도가 중요하다. 보통 시음 적정 온도는 섭씨 8~10도 정도다. 가벼운 와인의 경우 좀 더 차게 마셔도 좋다.

그런데 트리가 샤도네이의 적정 시음 온도는 11~13도. 너무 차게 마시면 향과 풍미가 묻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너무 따뜻하면 '산미가 약해지고, 알코올 감이 부각될 수 있다'는 것이 수입사의 설명이다.

손 수확한 포도를 프렌치 오크통에서 8개월 숙성 후 병입했다. 기름진 생선과 잘 어울린다. 보디감이 워낙 풍부해 야채를 곁들인 오리고기와 마셔도 좋다.

트리가는 ‘삼두마차’라는 의미다. 각기 다른 테루아 3곳에서 자란 포도를 사용했다. 알코올 도수 13.5%로 화이트 치고는 높은 편이다. 강렬한 느낌이 생산자 보데가스 볼베르의 특성을 잘 살린 와인이다.
휴고&안젤라, 오보라 블랑코
휴고&안젤라, 오보라 블랑코
다음 와인은 프랑스 보졸레산 ‘오보라 블랑코(2023)’. 옅은 노랑 컬러가 예쁘다. 샤도네이 100%를 사용했으며 화강암과 규토질암, 퇴적지형에서 자랐다. 그 때문인지 초반부터 사과와 배, 아카시아 꽃 향이 강하게 나타났다.

알코올 도수는 12.5%. 시간이 조금 지나면 적당한 산도와 약간의 꿀 향이 절묘한 조화를 이룬다. 균형감이 좋다. 안주 없이 와인만 마셔도 부담 없을 정도.

20대 후반 와인메이커 부부의 두 번째 빈티지 화이트 와인으로 현대적인 감각을 잘 살렸다. 도메인 휴고&안젤라(Hugo&Angela)는 2019년 ‘보졸레 포도밭 1년 렌털’ 프로그램 시작, 2020년 레드 와인 첫 빈티지를 선보였다.

젊은 커플이 포도 재배와 양조까지 직접 담당한다. 특히 바이오다이내믹 공법을 적용, 정부 인증까지 획득했다. 부르고뉴 양조학교에서 동문수학한 이들은 유명 와이너리에서 재배와 양조 기술을 배운 후 다시 만나 도메인을 꾸렸다.

국내에서 와인 가격은 비싸다. 전량 수입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다행히 오늘 소개한 와인 두 종류는 7만원 안팎으로 가성비가 좋은 편이다. 꽃향기 가득한 샤도네이가 있고 가족이 함께 둘러앉아 있는데 무엇이 부러우랴.

김동식 와인칼럼니스트
juju43333@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