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연구원·이정문 전 시장, 214억 배상 확정
용역 수행 연구원 불법행위 성립요건 엄격 적용 강조
대법원이 지자체 대형 인프라 사업 실패를 둘러싼 손해배상 소송에서 용역 수행 연구원들의 개인 책임에 대해서만 보다 엄격한 심리가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대법원 3부(주심 박영재 대법관)는 지난 7월 16일 용인경전철 건설사업과 관련한 주민소송(2024두39158)에서 “원심이 연구원 개인들의 불법행위 책임을 인정한 것은 법리 오해”라며 해당 부분만 파기환송했다고 밝혔다.
12년 법정 다툼, 두 번의 대법원 판결
이번 사건은 2005년 주민소송 제도 도입 후 지자체가 시행한 민간투자 사업 관련 사항을 쟁송 대상으로 삼은 최초 사례로 2017년 대법원이 1차 파기 환송한 지 8년 만에 최종 결론이 난 것이다.
2017년 대법원(주심 권순일 대법관)은 주민소송의 대상 범위를 대폭 확대하며 원심을 파기 환송했다. 당시 1·2심은 용인시민들이 제기한 1조232억원 손해배상 청구를 대부분 받아들이지 않았다.
특히 △한국교통연구원과 연구원들의 수요예측 오류 △전 시장들의 사업 관련 의사결정 △공무원들의 임용 문제 등을 ‘재무회계 행위’가 아니라며 주민소송 대상에서 제외했다.
하지만 2017년 대법원은 “수요예측 용역계약에 따른 행위들도 계약의 체결·이행에 관한 사항으로서 재무회계 행위에 해당한다”며 주민소송 대상 범위를 넓게 해석했다.
또한 “개별 행위들을 분리하지 말고 전체적으로 포괄해 하나의 위법한 재무회계 행위를 이루는 구체적 사정들로 봐야 한다”고 판시했다.
용인경전철은 2010년 6월 완공됐지만 개통은 2013년 4월에야 이뤄졌다. 용인시와 시행사인 캐나다 봉바르디에 간 최소수입 보장 비율(MRG) 다툼으로 국제중재에서 패소한 용인시는 이자 포함 8500억원을 물어줘야 했다.
더욱이 경전철 하루 이용객이 개통 첫해 8713명으로 한국교통연구원 예측치(16만1000명)에 한참 못 미쳤다. 이에 따라 용인시는 △국제중재 패소금 8500억원 △운영비 보전 295억원 △기타 사업비 등을 포함해 총 1조원 이상의 손실을 봤다.
현재도 용인경전철의 하루 평균 이용객은 4만2247명으로 당초 예측의 26% 수준에 그치고 있다. 이번 사건의 핵심 쟁점은 용역기관 소속 연구원들이 소속기관과 별도로 발주처에 대해 개인적인 손해배상 책임을 지는지 여부였다.
원심(서울고등법원)의 판단은 비교적 포괄적이었다. 한국교통연구원이 용인시로부터 의뢰받은 수요예측 용역에서 과도한 수요예측 결과를 제시했고 이 과정에서 연구원 개인들이 충분한 주의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는 점을 들어 이들의 불법행위 책임을 인정했다.
구체적으로 원심은 △수요예측이 1996년 기본계획 재확인 수준에 불과해 합리성 부족 △선호 의식 조사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노력 부족 △검토 단계 택지계획까지 긍정 요소로 고려 △사업성 검토보다는 사업 추진 정당화 목적으로 작성된 것으로 보인다는 점 등을 근거로 제시했다.
대법원은 이러한 원심 판단이 성급했다고 봤다. 대법원은 “원심이 들고 있는 사정들은 한국교통연구원의 채무불이행 책임을 판단하는 자료가 될 수 있지만 연구원 개인들이 독자적으로 불법행위 책임을 지는 근거로는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이는 2017년 대법원 판결과 대조적이다.
2017년에는 주민소송 대상 범위를 넓게 해석해 용역기관과 연구원 개인들까지 소송 대상에 포함했지만 2025년에는 개인 책임의 성립요건을 훨씬 엄격하게 적용했다.
2017년 대법원은 “개별 행위들을 분리하지 말고 전체적으로 포괄해 하나의 위법한 재무회계 행위로 봐야 한다”며 포괄적 접근을 했다. 반면 2025년에는 기관과 개인의 책임을 명확히 분리하며 “개별적·구체적 판단”을 강조했다.
이행보조자의 개인 책임, 높은 법적 기준 요구
대법원은 이행보조자가 계약 상대방에게 직접 손해배상 책임을 지려면 단순한 채무불이행을 넘어 “사회상규에 어긋나는 위법한 행위”가 있어야 한다는 엄격한 기준을 제시했다.
“이행보조자의 행위가 거래상대방에 대한 채무불이행 결과를 초래한다는 사정만으로는 부족하고 이행보조자와 채무자 사이의 내부 관계를 벗어나 거래상대방과의 관계에서 사회상규에 어긋나는 위법한 행위라고 인정될 수 있는 정도에 이르러야 한다”는 것이 대법원의 판단이다.
이는 단순한 업무 소홀을 넘어 고의적이거나 현저히 부주의한 행위가 있어야 개인 책임을 물을 수 있다는 의미다.
대법원은 원심이 △연구원들의 법적·사회적 지위 △용역업무에서의 구체적 역할 △용인시와의 관계에서 부담하는 주의의무 내용 △구체적으로 어떤 행위가 주의의무를 위반했는지 △그 행위가 사회상규에 어긋나는지 등을 제대로 심리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반면 한국교통연구원의 채무불이행 책임과 이정문 전 용인시장의 불법행위 책임은 그대로 확정됐다. 파기환송심 재판부는 2024년 4월 이 전 시장과 한국교통연구원 등이 용인시에 214억6000여 만원을 지급해야 한다는 취지로 판결했다.
대법원은 “한국교통연구원이 제출한 실행플랜에 과도한 수요예측에 따른 오류가 있었고 당시 용인시장이 주의의무를 현저히 게을리했다”는 원심 판단을 받아들였다.
지방자치법에 따르면 손해배상을 청구한 주민소송에서 원고 측 승소 판결이 확정되면 해당 지자체장은 60일 이내에 피고 측에 배상금 지급을 청구해야 한다. 용인시는 “법원의 판결을 존중하며 법이 정한 절차를 성실히 진행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돋보기]
지자체 ‘혈세 낭비’ 경종
이번 용인경전철 판결이 2026년 6월 지방선거를 약 1년 앞둔 시점에 나왔다는 점에서 각종 선심성 사업에 제동이 걸릴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부산김해경전철, 의정부경전철 등 전국 경전철들이 비슷한 수요예측 실패를 겪고 있다. 이번 판결이 다른 지역 경전철 관련 분쟁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소송단은 선고 직후 입장문에서 “혈세 낭비의 감시와 견제가 주민 손으로도 가능함을 보여줬다”며 “책임 범위를 용역 기관으로까지 확장해 공공사업에서 더욱 책임감 있는 연구 풍토를 조성하는 데 기여할 판결”이라고 평가했다.
용인경전철 운영은 여전히 어려운 상황이다. 지난해 기준 하루 평균 이용객은 4만2247명으로 설계 당시 예측치의 30%에도 못 미쳤다. 운영사인 용인경량전철은 지난해 72억2874만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다만 12년이 걸려 나온 결론이라는 점에서 주민소송을 통한 권리 구제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한 제도 개선 노력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종결된 주민소송 43건 중 주민이 승소한 사례는 1건에 불과했다. 이 사건은 현재 서울고등법원으로 환송돼 연구원 개인들의 구체적 책임 여부가 다시 심리될 예정이다.
허란 한국경제 기자 wh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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