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제철·한화오션, 중노위 상대 1심 패소
“하청 교섭 거부=부당노동 행위” 인정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하청에 대한 원청의 책임을 강화하는 취지의 ‘노란봉투법’ 도입에 속도가 붙고 있는 가운데 궤를 같이하는 판결이어서 주목된다.
“하청 노조 단체교섭권 인정해야 헌법 합치”
서울행정법원 행정3부(최수진 부장판사)는 현대제철이 중노위를 상대로 낸 부당노동 행위 구제 재심 판정 취소 소송에서 지난 7월 25일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
앞서 2021년 7월 전국금속노동조합 충남지부 현대제철 비정규직지회는 현대제철에 △산업안전 보건 △차별시정 △직접 고용 원칙 및 불법파견 정규직 전환 △자회사 채용 중단 등 4가지 의제에 대해 단체교섭을 요구했다.
해당 지회에는 현대제철 소속 직원 약 4300명이 조합원으로 가입된 상태였다. 현대제철이 이에 불응하고 금속노조가 단체교섭을 요구한 사실을 공고하지 않자 노조는 충남지방노동위원회에 구제신청을 했다.
충남지노위는 “현대제철과 금속노조 하청 지회 소속 근로자들 간 명시적·묵시적 근로관계가 형성되지 않아 현대제철을 노동조합법상 사용자로 보기 어렵다”며 이를 기각했다. 금속노조는 2021년 12월 중노위에 재심을 신청했다.
중노위는 지노위와 달리 현대제철의 사용자 지위를 인정해 단체교섭에 불응한 것이 부당노동 행위였다고 판정했다. 현대제철이 재차 불복해 행정소송을 걸었지만 1심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이다.
소송의 쟁점은 현대제철이 단체교섭 의무를 부담하는 노동조합법 81조 1항 3호의 ‘사용자’에 해당하느냐였다. 현대제철 측은 자사와 하청 업체 근로자 간에 개별 근로 계약 관계가 없었기 때문에 사용자 지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주장을 폈다.
그러나 법원은 “노동조합법이 집단적 노사관계에서 근로자의 노동3권 보장 및 이를 통한 노동관계의 조정과 노동쟁의 예방·해결을 입법 목적으로 하는 점, 사용자 개념을 정의함에 있어 근로 계약 관계를 전제로 하고 있지 않은 점, 근로자와 직접적인 근로 계약 관계를 맺지 않고 있는 사용자 단체에 대해서도 단체교섭에 응할 의무가 부여된 점” 등을 들어 사용자 지위가 반드시 개별적 근로 계약 관계의 존재를 전제로 하는 것은 아니라고 봤다.
세계화와 기술 발달 등으로 고용 구조가 비정형화된 만큼 하나의 노무가 둘 이상의 사용자와 실질적으로 연관되는 ‘다면적 노무 제공 관계’가 확산했고 노사관계에서도 이를 고려한 ‘실질적 지배력’을 인정해야 한다는 게 법원의 시각이다.
대법원은 2010년 판결에서(2007두8881) 근로조건 등을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자도 사용자에 포함된다는 법리를 제시한 바 있다.
재판부는 “다면적 노무 제공 관계를 통해 실질적으로 근로조건에 대한 지배·결정권을 행사하는 사용자를 형식적 계약 관계 부존재를 이유로 단체교섭 상대방에서 제외한다면 헌법이 보장하는 근로자의 단체교섭권이 실효적으로 행사되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헌법 33조 1항에 보장된 노동3권 중 단체교섭권은 “근로자가 자신의 근로조건에 실질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상대방과 교섭할 수 있는 현실적 기회를 부여받을 때 비로소 그 실효성이 확보되는 것”이라면서 하청 노조의 직접 단체교섭 요구권을 인정하는 것이 헌법에 합치된다고 강조했다.
한국이 2021년 4월 비준한 국제노동기구(ILO) 기본 협약 중 하나인 ‘결사의 자유 및 단결권 보호에 관한 협약’, ‘단결권 및 단체교섭권에 관한 협약’에서 단체협약 상대방으로서의 사용자를 근로 계약을 체결한 사업주로 한정하고 있지 않다는 점도 근거로 제시됐다.
같은 재판부는 한화오션 사건에서도 유사한 결론을 내렸다. 소송 경과는 현대제철 건과 동일했다.
한화오션 옥포조선소에서 일하는 22개 사내 하청 업체 소속 근로자 약 400명이 가입한 전국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는 2022년 4월 한화오션에 ①성과급 지급 ②학자금 지급 ③노동조합 활동 보장 ④노동 안전 ⑤취업 방해 금지 등 5가지 의제에 대해 단체교섭을 요구했는데 한화오션이 이에 불응하자 경남지노위에 구제 신청을 했다.
같은 해 6월 지노위가 이를 기각하자 중노위에 재심을 신청했고 중노위가 노조의 손을 들어주자 한화오션이 법정 싸움에 나선 것이다.
한화오션은 현대제철과 같이 자사가 “사내 하청 업체들과 도급계약을 체결하고 있을 뿐 아무런 근로 계약 관계가 없다”며 단체교섭의 의무가 없다고 주장했다. 재판부 역시 현대제철 사건과 같은 논리를 들어 이런 주장을 배척했다.
재판부는 하청 근로자들의 근무 방식과 이에 대한 본사의 직간접적 관여 정도, 하청 업무가 본사 사업에서 차지하는 비중, 하청 업체의 경제적 독립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현대제철과 한화오션 모두 하청 업체에 대해 ‘실질적 지배력’을 갖고 행사하는 지위에 있다고 판단했다.
다만 한화오션 사건에선 ③노동조합 활동 보장 ⑤취업 방해 금지 등 2개 의제에 한해 이를 인정하지 않아 일부 기각 판결을 내렸다. 금속노조 측은 “항소심에서 증거를 보강해 (기각된 2개 의제에 대해서도) 원청 사용자성을 인정받을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중노위는 현대제철 사건과 달리 한화오션 건에선 회사가 하청 근로자들의 요구 사실을 공고하지 않은 것이 부당노동 행위가 아니라고 봤다.
재판부는 “하청 업체를 매개로 한 단체교섭에만 임할 의무가 있다고 보는 것은 ‘실질적 지배력설’이 아니라 원고가 주장하는 ‘근로계약 관계설’을 취한 것과 사실상 다르지 않으므로 부당하다”고 지적하면서 “단체교섭 거부 행위가 부당노동 행위로 인정된다면 단체교섭 요구 미공고 역시 정당한 이유가 없다고 보는 게 논리적 귀결”이라고 결론지었다.
[돋보기]
“단체교섭 의무, 기업활동 자유 침해 아냐”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근로기준법상 사용자와 노동조합법상 사용자 개념을 달리 봐야 한다는 법리를 제시했다.
국가가 정한 최소한의 근로조건을 사용자에게 강제하기 위한 근로기준법과 대비되는 노동조합법의 입법 목적을 고려할 때 노동조합법상 사용자에는 “근로조건에 대한 지배력과 결정권을 보유하고 있어 집단적 노사관계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치는 자까지 포함된다”고 봐야 한다는 논리다.
재판부는 “원청이 하청 근로자의 근로조건에 대해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데도 근로 계약 관계 부재를 이유로 단체교섭 당사자 지위에서 배제된다면 하청 근로자들의 근로조건 개선에 관한 집단적 요구는 노동조합법이 예정한 체계 내에서 해소될 수 없게 되고 노사 간 긴장이 비제도적 방식으로 분출될 우려도 있다”며 집단적 노사관계에서 원청의 책임을 분명히 했다.
원고 측 주장도 조목조목 반박했다. 실질적 지배력이라는 기준이 다소 모호하며 사용자 지위 인정 단계에서 이를 적용하면 죄형법정주의의 명확성 원칙에 반한다는 항변에 대해 재판부는 “노동법 영역에선 사용자성, 근로자성 등 다수의 핵심 개념이 형식 아닌 실질에 기초해 판단되고 선례가 집적돼 가며 사안별 판단 기준과 해석의 틀이 형성된다”면서 개념 정립 초기 일시적인 혼란은 제도적 보완으로 극복해 나갈 수 있다고 보고 배척했다.
실질적 지배력 기준이 기업활동의 자유 등을 침해한다는 본사 측 주장에 대해선 “단체교섭 의무는 교섭 과정에서의 성실한 협의 의무를 의미할 뿐 노조의 요구를 그대로 수용해 단체협약을 체결할 의무를 부과하는 건 아니다”라며 기각했다.
재판부는 “하청 근로자 입장에선 단체교섭 기회 자체가 차단되면 노동3권이 사실상 박탈되지만 원청이 침해받는 자유권의 정도는 최소한에 그친다”고 짚기도 했다. 현대제철과 한화오션은 하청 노조의 단체교섭권을 인정하면 원청 노조와의 교섭 창구 단일화 문제가 발생하는 동시에 교섭 단위를 초과 설정해 현행 노동조합법 위반이라는 논리도 폈다.
그러나 법원은 “교섭 창구 단일화가 단체교섭권 자체를 제한하지 않으며 하청이 복수의 사용자와 실질적인 노무 제공 관계가 형성돼 있는 경우에는 교섭 단위를 탄력적이고 현실적으로 설정할 것이 인정된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장서우 한국경제 기자 suwu@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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