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유의 산업의 窓]
한국 안보, 역사적 교훈과 한·미 동맹의 역할[김홍유의 산업의 窓]
파괴적 기술, 혁신적 기술이 국가 부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찾아가는 길에 만난 전쟁, 그 길에서 지금의 자유 민주주의, 시장경제를 만날 수 있다.

전 세계에 식민지를 개척하고 삼각무역 체제를 완성시킨 항해와 교역, 육군보다는 해군이 강했던 영국이나 네덜란드는 ‘상업적 가치’를 계약의 신성함, 사유재산의 강화로 발전시킨다. 늘 마주하는 이웃을 가진 대륙 국가보다 만남을 기약할 수 없는 해양 국가는 신뢰가 가장 소중하며 이를 뒷받침하는 것이 계약이다.

그것이 ‘조약’이라는 국가 간 문서로 발전하고 그 종이 문서대로 이행하지 않을 경우 전쟁도 불사한다. 반면에 대륙 국가에서는 이웃이 늘 가까이 있어 언제라도 갈 수 있다는 사실로 ‘계약’보다 ‘주먹’으로 약속을 이행시켰다.

전쟁은 수많은 요소가 작용하지만 궁극적으로는 강한 규율을 가진 군대와 이를 뒷받침하는 경제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 둘 중 하나가 무너지면 평화를 이룰 수 없다. 역사적으로 강대국은 그 나라 인구의 1%를 상비군, 즉 정규군으로 양성했다. 로마제국, 에스파냐, 네덜란드, 영국, 프랑스, 프로이센 등 그 나라 인구 1%를 정규군으로 보유하는 일은 언제나 힘겨운 일이다. 비록 전시에는 1%를 웃돌아 2~3%로 높아졌으나 늘 1% 황금률로 수렴되었다. 만약에 이런 불문율은 어기고 인구 1% 이상 군대를 유지할 경우 결국 제국은 경제적, 군사적 악순환에 갇혀 붕괴하였다. 로마, 에스파냐, 프로이센도 예외는 아니었다.

유럽은 300년 전쟁을 통해 인구 1%를 정규군으로 양성하기 위해 재정 개혁으로 상업과 군사 복합체인 중상주의를 만들었으며, 원활한 징집을 위해 대의제 정치를 발전시킨다. 유럽과 이슬람 제국, 아시아는 서로 다른 길을 걸었다.

유럽은 왕이 영토 일부를 귀족에게 할애하면서 군대와 기병을 동원하는 봉건 시스템을 만들었다. 이슬람 국가는 같은 종교를 믿는 부족은 하위 계층인 병사로 삼을 수 없다는 율법에 따라 노예군으로 정예 군대로 육성했다. 가장 우수한 노예는 정치 각료로 기용되며 그다음은 엘리트 장교로 선발된다. 여자들은 시녀와 후궁, 왕비로 간택된다. 하지만 이들 노예 군사는 재산을 자식에게 상속할 수 없었다. 결국 이 문제는 부패로 연결되고 노예 군사는 와해됨과 동시에 이슬람 제국도 그렇게 붕괴한다.

동아시아는 오랫동안 중앙집권제가 완성되어 백성들에게 병역의 의무를 부과했다. 영특한 지도자를 만났을 때는 강한 규율을 가진 군대를 양성할 수 있었지만 무능한 지도자를 만났을 때는 징집의 불공정성이 만연하고 경제의 붕괴로 군대를 유지할 수 없었다. 임진왜란 직전 율곡의 10만 양병설은 너무나 유명한 이야기다. 그 당시 조선의 인구가 대략 1000만 명 내외였으니 최적의 숫자를 밝힌 셈이다. 그러나 과연 조선이 10만 정규군을 유지할 만큼 경제력이 있었는지는 의문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대략 국방예산의 80%를 정규군 50만 명을 양성하는 데 사용한다. 북한은 적정 정규군 숫자 25만에 비하면 100만 군대는 터무니없이 많다. 가령 북한이 세습 체제를 포기하고 시장경제 체제로 변화된다고 가정해도 군축하지 않으면 붕괴한다. 결국 가혹한 군비경쟁을 할 수 없어 비대칭 전력인 ‘핵무기’를 손안에 넣으려고 한다.

잘사는 나라는 그 나라 인구의 1%보다 적게 군을 운용하고도 안보에 위협이 없는 나라다. 해답은 NATO로 대변되는 집단지역방위다. 그래서 안보에 동맹이 필요하다. 한·미 동맹을 바탕으로 우리나라는 한 단계 더 발전된 나라로 진입할 수 있다. 한 나라의 제도는 그저 종이 위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전쟁을 통해서 다져져야 힘이 있고 내성이 생긴다. 유럽의 대의민주주의와 시장경제는 이처럼 덧난 상처에 수없이 많은 굳은살이 배긴 나라다.

반면에 우리나라는 서구의 제도를 종이 위에만 도입하고 실행했기 때문에 아직도 실험할 것이 너무 많다. 봉건제 징집 군대, 외국 용병, 노예 군대를 거쳐 지금은 대다수 나라가 민주화된 징집제도를 운용한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강한 규율은 그 나라가 지켜야 할 그 무엇의 ‘가치’가 있어야 하고, 군인의 ‘명예’가 지켜질 때 강한 군대로 거듭난다.

김홍유 경희대 교수(한국방위산업협회 정책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