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케이브, 마크 곤잘레스 상대 IP 소송 최종 패소
“‘엔젤 도안’, 곤잘레스 고유 저작물” 인정
한때 곤잘레스의 이름을 딴 단일 브랜드만으로 수백억원의 매출을 냈던 비케이브는 이번 법원 판결로 더 이상 그가 그린 도안이 활용된 제품을 판매할 수 없게 됐다.
이번 판결로 라이선싱 계약 관계가 종료된 상태에서 계약 대상이 된 저작물을 원작자의 허락 없이 무단으로 사용해선 안 된다는 법리가 재확인됐다는 평가다.
계약 종료됐는데…저작물 무단 사용해 피소
대법원 1부(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곤잘레스가 비케이브를 상대로 낸 저작권 침해 금지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로 나온 원심 판결을 지난 7월 3일 확정했다.
재판부는 “원심 판단에 관련 법리를 오해하거나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않은 채 논리와 경험 법칙을 위반해 자유심증주의의 한계를 벗어나는 등으로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없다”면서 양측의 상고를 모두 기각했다.
비케이브는 커버낫 등 유명 패션 브랜드를 운영하는 의류업체다. 이 회사는 2017년 9월 일본 기업인 사쿠라인터내셔널과 계약을 맺고 2018년부터 곤잘레스의 저작물을 활용할 수 있는 서브 라이선스(재이용 허락)를 획득했다.
사쿠라인터내셔널은 곤잘레스와 선행 계약을 통해 2011년부터 2021년까지 곤잘레스의 도안 등 저작물에 대한 아시아 지역 내 유통·생산·판매 등의 독점권을 보유하고 있었다.
비케이브는 곤잘레스의 도안을 사용한 옷, 신발, 장갑, 가방, 모자, 액세서리 등 제품을 생산해 판매했다. 곤잘레스와 사쿠라인터내셔널 간 라이선싱 계약은 예정대로 2021년 말 종료됐으나 비케이브는 사쿠라인터내셔널과 2021년 6월 추가로 체결한 계약에 기반해 곤잘레스의 저작물을 계속해서 사용했다.
대신 2022년부터 브랜드명을 ‘마크 곤잘레스’에서 ‘와릿이즌(what it iSNt)’으로 바꿨다. 이는 곤잘레스가 일본에서 발매한 앨범의 제호였다. 곤잘레스는 비케이브가 제품 등에 활용한 도안이 자신의 고유 저작물이며 이를 무단으로 복제·전시·배포한 것은 저작재산권 침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도안이 활용된 제품의 제조·판매를 금지하고 공장, 창고 등에 보관 중인 완제품 및 반제품들도 모두 폐기해달라는 취지로 소송을 제기했다. 자신이 창작한 도안이 한국에 널리 알려진 상태에서 비케이브가 이와 동일·유사한 도안이 부착된 제품을 판매하고 광고선전물, 인터넷 홈페이지 등에 띄운 것은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부정경쟁방지법) 위반이라는 주장도 폈다.
곤잘레스는 비케이브가 “도안을 사용할 권리를 더 이상 보유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원고의 명성에 편승해 부당한 이익을 취득했다”고 지적했다.
“‘엔젤 도안’, 곤잘레스의 독자적 표현 담아”
1심 법원은 곤잘레스의 ‘엔젤 인형’ 도안을 그의 저작물로 인정하고 비케이브가 곤잘레스의 저작권을 침해했다고 판단했다. 침해자의 저작물이 저작권자의 저작물에 의거했고 두 저작물 간 실질적인 유사성이 인정되면 저작권이 침해된 것으로 봐야 한다는 대법원 판례에 기초해서다.
재판부는 곤잘레스가 1998년 미국에서 발행된 한 잡지의 삽화로 그려 넣은 엔젤 도안에 대해 “새가 날개를 펼치고 날고 있는 형상을 채색 없이 점과 선으로만 구성한 단순한 도안으로 날고 있는 새에 대한 원고의 독자적인 표현을 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삽화와는 별개로 저작권법에 따른 보호를 받을 수 있는 저작물에 해당한다고 봤다.
이에 따라 비케이브가 사용한 도안 중 엔젤 모형이 포함된 것들은 곤잘레스의 저작권을 침해했다는 결론이다. 재판부는 비케이브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곤잘레스에 대한 저작권 침해 행위를 멈추고 침해 행위에 의해 만들어진 물건을 폐기할 의무가 있다고 판시했다. 곤잘레스의 이름을 도메인에 사용해선 안 된다는 결정도 함께 내려졌다.
다만 법원은 곤잘레스가 자기 작품에 남긴 서명 중 하나가 활용된 도안은 그의 저작물이 아니라고 봤다.
화가가 자신의 저작물에 표시한 서명은 그 저작물이 자기 작품임을 표시하는 수단에 불과하고, 그 자체가 예술적 감정이나 사상의 표현을 위한 것이라고는 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례에 근거한 판단이다.
와릿이즌이라는 브랜드명에 대해서도 “곤잘레스의 앨범 등과 구분돼 독자성을 인정할 수 있는 저작물에 해당한다고 보기는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미적 요소가 일부 가미돼 있기는 하나 앨범의 제호를 효과적으로 전달해 소비자들의 인상에 각인되게 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는 이유에서다.
“곤잘레스 서명, 널리 알려져…부정경쟁 인정”
비케이브가 곤잘레스의 도안, 서명 등을 활용해 부정경쟁방지법을 위반했다는 원고 측 주장도 일부 인용됐다.
부정경쟁방지법은 정당한 사유 없이 ‘국내에 널리 인식된’ 타인의 성명, 상호, 상표, 상품의 용기·포장 등을 판매·반포 또는 수입·수출해 타인의 상품과 혼동하게 하는 행위를 부정경쟁행위의 하나로 규정한다.
‘국내에 널리 인식된’ 것에 해당하려면 일정 지역 범위 안에서 널리 알려지게 된 이른바 ‘주지의 정도’에 이르렀음이 인정돼야 한다.
재판부는 비케이브가 “‘마크 곤잘레스’ 단일 브랜드로 2018년 50억원, 2020년 300억원, 2021년 400억원의 연매출을 올릴 정도로 급성장해 국내 소비자들에게 널리 알려졌고 2023년 4~6월 곤잘레스의 서명 도안을 외부 간판이나 내부 인테리어 요소로 사용해 개설한 팝업스토어는 두 달간 누적 방문객이 약 6만 명에 달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며 곤잘레스의 서명에 한해 ‘널리 인식된’ 것으로 봐야 한다고 판단했다.
이번 소송에 독립당사자참가인으로 나선 사쿠라인터내셔널은 라이선싱 계약과 별개로 자사가 2000년 곤잘레스 측 미국 회사와 맺은 음반 제작 용역계약이 문제가 된 도안들에 대한 독점적 복제·판매권을 보장하고 있다는 논리를 댔다.
그러나 법원은 해당 계약이 “오디오 작업 및 아티스트 홍보 목적으로 티셔츠 등에 복제·판매할 수 있는 배타적 권리에 불과할 뿐 저작재산권의 양도와 동일하게 취급할 수 없다”며 이런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항소심 판단도 1심과 같았다. 비케이브와 사쿠라인터내셔널은 2심에서 이 사건에 적용될 준거법이 한국 저작권법이 아닌 미국 저작권법 또는 캘리포니아 주법이라는 주장을 추가했다. 사쿠라인터내셔널과 곤잘레스의 미국 측 회사가 맺은 용역 계약이 캘리포니아 주법을 따른다는 조항에 근거해서다.
대법원은 이 쟁점에 대해 “저작권의 성립과 내용, 저작권의 이전이 가능한지 여부, 저작권의 이전과 귀속에 어떤 절차나 형식의 이행이 필요한지 여부 등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국제사법 제40조에 따라 보호국법이 준거법으로 결정돼 적용된다”며 피고 측 주장을 기각한 원심 판결이 잘못되지 않았다고 판시했다.
비케이브 측은 곤잘레스가 저작권 관리를 목적으로 세운 별도의 1인 기업에 엔젤 도안 등의 저작권을 양도해 더 이상 저작권자가 아니라는 주장도 상고 이유로 댔다. 그러나 법원은 “저작권관리위탁 계약상 해당 회사의 관리 범위는 곤잘레스의 저작물을 제삼자에게 이용 허락할 수 있는 권한으로 한정된다”며 기각했다.
[돋보기]
패션업계 라이선스 분쟁 주의보
패션업계에서 저작권은 사업의 성패를 가르는 핵심 요인으로 작용한다. 그만큼 저작권 침해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해 법적 리스크를 예방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평가다.
국내 기업이 외국 브랜드의 라이선스를 빌려 쓰는 것뿐 아니라 해외 기업의 국내 브랜드 저작권 침해 사례도 점점 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패션산업협회 산하 패션IP센터에 따르면 지난해 6월 센터 설립 이후 약 1년 동안 1만2000건에 달하는 지식재산권(IP) 침해 사례가 탐지됐다.
장서우 한국경제 기자 suwu@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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