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시장이 커지자 김 변호사에게도 실력을 발휘할 기회가 왔다. 2006년 엔씨소프트, 2008년 옥션 등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 사건이 연이어 터졌다.
김앤장에 있던 김 변호사는 이 사건들을 맡아 해당 법리의 책임 범위를 설정하는 등 관련 법령의 적용 기준을 다듬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김앤장 프라이버시 및 정보보안 그룹의 리더였던 그는 4년 전 홀로서기에 나섰다.
새로운 길을 걷게 된 경험을 토대로 그는 후배들에게 이렇게 조언한다. “탈선(脫線)하라. 새 길을 낸 사람은 길을 벗어난 사람이다. 다만 기본을 갖추지 않은 상태에서 탈선하면 자칫 탈락(脫落)할 수 있다”
-본인만의 업무 철학이 있나.
“첫째, 내가 말하는 것보다 상대방의 말을 더 들어야 한다. 변호사 업무의 80% 이상은 청취다. 둘째, 전화를 받지 못하면 회신은 1시간 이내, 이메일을 받은 경우 즉시 수신 확인해야 한다. 변호사가 아무리 바빠도 고객의 마음만큼 바쁜 것은 없다. 셋째, 최대한 평이한 언어로 쉽게 이해할 수 있게 설명해야 한다. 기본적인 것들뿐이지만 그래도 지나고 보니 정말 중요한 것들이 아닌가 싶다.”
-기억에 남는 사건은.
“2006년 초 엔씨소프트 대규모 주민등록번호 도용 사건과 2008년 초 옥션 해킹 및 개인정보 유출 사건이 연이어 터졌다. 이 두 사건에서 회사들을 방어하는 업무를 맡은 것이 커리어의 전환점이 됐다.
엔씨소프트 사건에서는 대표이사를 포함한 여러 경영진이 형사 입건되면서 3만 명이 넘는 원고들이 소송을 제기했고 옥션 사건에서는 1000만 명이 넘는 개인정보 유출이 일어나 그중 10만 명이라는 사상 최대의 원고단이 모집됐다.
당시 이들 사건은 개인정보나 정보보안 분야의 문제 때문에 회사의 흥망이 좌우될 수도 있다는 사회적 인식을 불러와 이 분야의 법률 업무가 정착되는 계기가 됐다.”
-최종 승부를 가른 본인만의 ‘결정적 한 수’가 있다면.
“절대 포기하지 않는 견인불발(堅忍不拔)의 마음가짐이다. 해킹이나 개인정보 유출 사건을 다룰 때 늘 하는 말은 ‘이 세상에 죽으란 법(法)은 없다’이다. 그런 마음으로 임하면 태도도 글도 생각도 달라진다.”
-그런 태도로 변론의 실마리를 찾은 사건이 있다면.
“흔히 ‘싸이월드 개인정보 유출 사건’으로 불리는 SK커뮤니케이션즈 해킹 사건의 민사소송을 담당했을 때 꼼짝할 수 없을 정도로 막막한 쟁점에 가로막혔다. 회사 측에서 해킹이 일어날 당시 저작권법을 위반해 사적 목적으로만 사용할 수 있는 공개용 프로그램을 회사 업무용으로 사용한 위법행위를 저질렀다는 점이 문제가 됐다.
사실 자체가 워낙 명백하다 보니 저를 포함하여 당시 함께 일하던 변호사들조차 상대방의 공격에 대해 더 이상 방어할 논리가 없을 것 같다는 분위기였다.
나조차 가망이 없다는 생각을 했지만 뭐든 변명거리를 찾아야 한다는 심정으로 며칠을 고민했다. 고민 끝에 ‘비록 저작권법 위반은 맞지만 현재 원고들이 구하고 있는 손해배상은 정보 유출로 인한 것이어서 저작권법 위반행위와 원고들이 청구하고 있는 손해 사이에는 인과관계가 없다’는 논리를 만들어냈다. 그 취지가 해당 심급은 물론 대법원에서도 인정돼 최종 승소했다.”
-후배 변호사에게 조언 한마디 해달라.
“탈선하라. 어느 일본 회사의 광고 카피 중 ‘새 길을 낸 사람은 길을 벗어난 사람이다’라는 문구를 좋아한다. 다만 기본이 없는 상태에서 탈선하면 자칫 탈락할 수 있다.”
-앞으로 법률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춘 변호사는 어떤 모습일까.
“지력(知力)보다는 공감력을 갖춘 변호사가 아닐까. 변호사는 단순하게 법률을 다루는 기능인이 아니고 인간 권리의 근저를 수호하는 역할을 한다.
이러한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소위 ‘확률에 근거한 정답’을 도출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인간을 제대로 이해해야 그 역할을 다할 수 있다. 인간의 밝은 면이나 추한 면, 기쁨과 슬픔, 분노와 관용 등 인간이 가지거나 맞닥뜨리게 되는 모든 사정을 통찰할 수 있어야 한다.”
한경비즈니스는 국내 7대 로펌 소속 변호사들을 대상으로 특별 설문을 진행했다. ▲법정에서 상대로 만나기 싫거나 ▲자문 사건에서 상대 대리인으로 만나기 꺼려지는 변호사 혹은 ▲‘내 사건을 맡기고 싶은’ 경쟁 로펌 변호사를 직접 꼽아 달라고 물었다. 7대 로펌에 재직 중인 최정예 전문가 군단이 인정한 ‘변호사들의 변호사’다. 설문은 총 240명의 유효 응답(김앤장 법률사무소, 법무법인 태평양, 법무법인 광장, 법무법인 율촌, 법무법인 세종, 법무법인 화우, 법무법인 지평 소속 변호사)을 받았다. 이름과 소속이 불명확하거나 응답자와 같은 로펌에 재직 중인 변호사를 꼽은 답변은 제외했다.
김영은 기자 kye0218@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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