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척 대상이던 행동주의 투자가 의견 경청하는 일본기업
의견 수용·역이용해 기업 자체 성장 밑거름 삼아
경영진의 전략적 허점을 비판하고 주주총회에서 현 경영진의 교체를 요구하기도 하는 행동주의 투자가들에 대해서는 단기적 주식 매매차익을 노리는 ‘약탈자’라는 비판이 일본에서도 많았다. 일본기업이 처음 본격적으로 행동주의 투자가와 대면한 사건은 1989년에 발생했다. 미국의 유명 투자가였던 분 피켄스가 자동차 조명 대기업인 고이토제작소 주식을 대량 매입하여 자본 효율성의 개선과 주주환원을 요구했다. 이 시도는 일본 산업계의 강력했던 상호출자 구조, 주거래은행 제도 등 정관재 연합의 벽에 직면하여 실패했다.
그 후 2000년대 초에는 경제산업성 관료 출신자가 이끌었던 ‘무라카미 펀드’가 상장기업의 대주주로서 배당 확대, 자산 매각 등을 요구하면서 주주권리 강화에 대한 여론이 점점 커지게 되었다. 그러다가 아베노믹스의 일환으로 2014년에 연금 등 기관투자가들에게 협력적 행동주의 투자가로서의 자세를 촉구하는 스튜어드십코드를 도입하고, 2015년에 상호출자 등을 문제시하는 기업지배구조 코드도 도입되면서 일본 기업도 행동주의 투자가에 대한 태도를 바꾸게 됐다.
행동주의 투자가의 건의를 활용해 성공하고 있는 일본 기업의 패턴을 보면 우선, 과거와 같은 방어적인 자세에서 벗어나 이들의 건의를 경청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들의 의견에 단순히 반박하거나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의견을 분석하고 필요한 부분은 수용하고 있다. 반도체 사업의 분리 요구를 받은 소니는 숙고 끝에 사업을 유지하기로 했다. 소니는 콘텐츠 사업에 주력하는 한편, 반도체 사업의 전략적 중요성을 진지하게 설명하면서 신뢰를 회복한 바 있다. 행동주의 투자가의 압박을 구조혁신에 대한 동력으로서 역이용하는 경우도 있다. 세븐앤드아이홀딩스는 편의점 비즈니스 집중화를 요구받은 것을 계기로 백화점 사업 매각에 반대했던 종업원을 설득하면서 그룹을 편의점 중심 구조로 전환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행동주의 투자가의 건의를 당장은 거절하면서도 시간을 두고 도입할 수 있는 체제를 갖추는 전략도 나와 있다. 일본 기업들이 기후 관련 재무정보 공시 태스크포스(TCFD) 기준에 입각한 정보 공시의 필요성을 지적 받자 준비 기간을 거쳐 도입하는 경우가 확대했다. 최근에는 일본의 많은 우량 대기업들이 회사 보고서 등에서 기후 관련 재무정보를 공개하고 있다. 평소에 각종 투자가를 비롯한 다양한 이해관계자와의 대화 채널을 통해 기업이 사회 트렌드, 상식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주력하는 기업도 호평을 받고 있다. 히타치제작소의 경우 평소에 경영 투명성을 높이고 글로벌한 차원에서 투자가와의 대화를 강화하면서 투자가의 압력에 앞서서 사업 포트폴리오의 개혁에 주력하고 강점 분야인 사회이노베이션 사업에 집중해 기업가치를 확대해 왔다.
물론 행동주의 투자가들도 기술의 변화를 정확하게 예측하고 사업의 성공 전략을 효과적으로 구축하는 능력에는 한계가 있다. 이들의 주장을 무제한 수용할 수도 없을 것이다. 행동주의 투자가의 목표는 단기 이익이며, 이들의 건의를 수용하면 기업의 장기적 성장이 어렵다는 비판도 있다. 그러나 단기적 이익을 희생하면 장기 성장이 불가능한 것도 사실이다. 경영진으로서는 장기목표 달성에 이르는 경로와 함께 기업의 생존과 주주 이익을 뒷받침하는 단기적인 수익 전략의 균형을 잡아야 할 것이다. 행동주의 투자가들을 포함한 소액주주들의 의견과 이익을 존중하면서 외부의 시각에서 회사의 전략 방향이나 경영상의 문제점을 점검하고 이들의 경고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자세가 기업가치를 단기 및 장기적으로 확대하는 데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이지평 한국외대 특임강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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