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남산에서 바라면 서울 시내 아파트 단지./연합뉴스
서울 남산에서 바라면 서울 시내 아파트 단지./연합뉴스
지난 9월 7일 새 정부에서 부동산 대책을 내놓았다. 공급 측면에서 9·7 대책의 중심에는 LH가 있다. 새 정부 들어서 LH의 환골탈태를 주문하는 정치권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손쉬운 ‘땅 장사’만 하지 말고 ‘주택 공급’이라는 공기업의 역할을 다해달라는 주문이었다. 그것이 이번 9·7 조치로 현실화된 것이다.

LH는 토지(Land)를 주로 개발하는 토지공사와 주택(House)을 주로 공급하는 주택공사가 합병하여 만들어진 공기업이다. 과거 토지공사에서 담당하던 토지개발이라는 것은 3기 신도시 개발과 같은 대규모 개발이 시작되면 정부 소유 땅에만 집을 짓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민간 소유 땅을 매입 또는 수용하게 된다. 이렇게 땅을 확보한 후 거기에 도로나 상하수도 시설 등 사회기반 시설을 깔아서 집을 지을 수 있는 대지로 조성하는 것이다. 임야→대지로 만들어 팔았던 LH한마디로 임야를 대지로 개발하는 것이 주된 역할이다. 이렇게 개발된 대지는 민간 건설사에 팔게 되며 이 과정에서 상당한 개발 이익을 남기게 된다.

이렇게 LH에서 개발된 땅은 민간 건설사에 높은 가격에 팔려 나가기 때문에 민간 건설사에서 분양하는 아파트값은 비쌀 수밖에 없다. 민간 건설사 입장에서는 자체적으로 땅을 개발하기 어렵다. 알박기를 하는 사람들에 대해 토지 수용권이 없기 때문이다. 아파트를 지으려고 자체 땅을 확보하는 과정에서 이를 눈치챈 토지 소유주들이 땅값을 크게 올려버리면 진퇴양난에 빠질 수밖에 없다.

이런 이유로 민간 건설사 입장에서는 LH가 개발한 땅을 얼마나 많이 낙찰받았는지의 여부가 향후 매출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치게 된다. LH 입장에서는 정부를 등에 업고 대지만 개발하면 쉽게 매출을 올릴 수 있기 때문에 힘들여 직접 집을 지어서 공급할 필요가 없어진다. 이런 이유로 LH 내에서도 과거 주택공사에서 하던 역할은 점점 축소되고 토지공사에서 하던 역할의 비중이 점차 커지게 된 것이다. 정치권에서 LH가 ‘쉬운 땅 장사’만 한다는 지적을 받은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 9·7 조치가 이를 되돌리려는 시도인 것이다. LH에서 개발된 땅을 민간 건설사에 팔지 말고 직접 아파트를 지어 공급하라는 것이 9·7 조치의 핵심이다.
정부 보증, PF 막힌 자금줄 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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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정책의 변화를 가져온 원인은 지난 몇 년간의 공급 부진이다. 2022년 이후 아파트 시장을 중심으로 착공 물량이 크게 줄었다. 가장 큰 원인은 아파트를 지을 자금이 부족하기 때문인데 금융권에서 부실 가능성을 이유로 건설사에 PF 대출을 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땅도 있고 집을 지을 의지가 있어도 자금이 부족해서 공급이 중단된 것이다.

그런데 공기업인 LH가 직접 나선다면 금융사 입장에서는 PF 대출을 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100% 정부 보증이 따르기 때문이다. 결국 최근 몇 년간 공급이 크게 준 이유가 바로 자금 부족 현상 때문인데 정부에서 건설사에 직접 자금을 대줄 수는 없기에 LH를 통해 주택을 공급하기로 나선 것이다. 과거 주택공사가 했던 역할을 되살린다는 취지이다.

그러면 앞으로 주택 시장은 어찌될까? 새로 분양되는 아파트의 대부분 또는 상당수는 LH 브랜드로 공급될 것이다. ‘LH 교산 12단지’ 이런 식의 단지가 되는 것이다.

물론 이들 LH 단지들을 모두 LH에서 직접 짓지는 않는다. 지난 몇 년간 LH 주택부문의 건설 능력이 과거보다 크게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LH 브랜드 공급의 상당수는 하도급 공사를 통해 이루어질 것이다.

그런데 이때 시공능력평가 상위 10위 안에 드는 소위 ‘1군’ 대기업 건설사가 LH의 하도급 입찰에 참여할까?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다.

LH의 목적이 고급 아파트를 짓는 것이 아니라 주택 공급을 많이 늘리는 것이기 때문에 한 채당 예산이 충분하게 배정되지 않는다. 한마디로 ‘싸게, 많이’가 목표이기 때문에 비싸더라도 랜드마크 아파트를 지으려는 1군 건설사와는 추구하는 바가 다르다. 이 때문에 과거에도 (같은 지역 내에서도) 주공아파트는 시세가 쌌고 민간 브랜드 아파트는 비쌌던 것이다.

결국 대기업 건설사 입장에서는 수익이 나지 않는 LH 하도급 공사보다는 자체 브랜드 사업을 하는 것이 훨씬 나은 선택인 것이다. 문제는 LH에서 아파트를 지을 땅을 민간 건설사에 공급하지 않거나 지금보다는 훨씬 줄일 것이기 때문에 대기업 건설사 입장에서는 재건축·재개발 등 도시 재생 부문에 더 집중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재건축·재개발이 주류를 이루는 서울에는 높은 품질의 민간 브랜드 아파트가 주로 공급되고 3기 신도시 등 경기도 외곽에는 중소 건설사가 하도급으로 건설하는 LH 브랜드 아파트가 대세가 될 것으로 보인다. 같은 수도권에서도 양극화가 더욱 진행될 것임을 의미한다.

1군 건설사 간의 수주 경쟁이 지금보다 더 뜨거워질 것이므로 재건축이나 재개발 사업을 하려는 소유주 입장에서는 유리한 환경이 된다고 할 수 있고 청약을 통해 신축 아파트를 마련하려던 수요자의 입장에는 민간브랜드 아파트에 당첨될 가능성이 더 줄어들 것이다.

그러면 이번 9·7 조치로 공급이 늘어나면 시장은 안정될까? 시장 경제에서 가격을 결정하는 두 가지 요소인 수요와 공급에서 공급이 늘면 당연히 가격은 안정될 수밖에 없다. 멀리 볼 것도 없이 대구의 집값이 지난 몇 년간 크게 떨어진 이유는 바로 공급과잉 때문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정부에서 대책을 내놓자마자 집값이 안정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LH에서 조직을 재정비하고 내년에 바로 착공한다고 해도 시장에 아파트가 공급되는 시점은 2029년 이후이다. 착공부터 완공까지 아파트는 최소 36개월의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인력과 자원을 더 많이 투입해서 공기를 앞당길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전혀 없다. 아파트 공기는 콘크리트가 굳는 시간에 비례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대중과 언론의 인내심이다. 당장 몇 주 후에 “9·7 조치에도 불구하고 서울 집값은 계속 상승하고 있다”라는 내용의 기사를 볼 수 있을 것이다. 9·7 조치가 효과를 발휘하는 것은 지금이 아니라 3년 후이다. 9·7 조치의 효과는 빨라야 2029년 이후에 나타난다. 다시 말해 2028년까지의 공급 부족 현상을 타개할 방법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9·7 조치가 과거 정책과 비교하여 진일보한 조치라고 하는 이유는 바로 정부에서도 ‘공급’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이에 대한 조치를 강구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과거 정책은 수요를 억누르는 정책의 일변도였기에 효과를 발휘할 수 없었던 것이다. 집을 사려는 수요 자체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잠시 억눌렀던 것이기 때문에 빠르면 3~6개월 정도 지나면 스프링처럼 집값이 튀어 올랐던 것이다.

수요억제책은 시간을 벌기 위한 임시방편이다. 벌어놓은 시간 동안 공급을 확대하여 시장 안정을 꾀해야 하는데 과거의 정책은 이 부분이 미흡했지만 이번 9·7 조치는 이 부분에 대한 반성을 기저에 깔고 있는 것이다.

물론 9·7 조치에도 아쉬운 점이 있다. 민간 건설사들이 공급하게 될 재건축 분야를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재건축 활성화의 최대 걸림돌인 재초환 문제를 어느 정도 마무리했어야 한다. 하지만 이로 인해 집값 상승을 우려한 ‘소심함’ 때문에 반쪽 대책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9·7 조치로 공급 부족 현상을 타개할 실마리를 일부 잡았다는 점에서는 이번 조치를 높게 평가할 만하다. 현시점에서 무엇이라도 하지 않으면 공급부족 현상은 2028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2030년 이후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아기곰 (‘재태크 불변의 법칙’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