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지 매매 3개월 후 감정가액, 시가 아냐
“공사 진행으로 토지가치 변동”
서울행정법원 제4부(재판장 김영민 부장판사)는 7월 18일 A 씨 등 3명이 서초세무서장과 강남세무서장을 상대로 낸 증여세 부과 처분 취소 소송(2024구합57941)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감정평가 기준일과 매매계약 체결일 사이 시간적 간격이 있고 그사이 공사 진행으로 토지 현황이 변동돼 감정가액을 거래 당시 시가로 볼 수 없다”며 증여세 부과 처분 전부를 취소했다.
건축허가·공사 진행 중 토지 매입
D 씨는 2020년 4월 16일 경기 광주시 소재 임야 1만8070㎡를 자녀와 며느리인 원고들이 지배주주로 있는 법인 E에 40억7300만원에 매도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E사는 같은 해 5월 12일 소유권이전등기를 마쳤다.
그런데 E사는 매매계약 체결 이전부터 이 토지에 창고시설을 신축하기 위한 절차를 진행하고 있었다. 2019년 7월 건축허가를 받았고 같은 해 10월 토목공사를 포함한 창고 신축공사 계약을 체결했다.
12월에는 착공 신고필증을 발급받고 공사에 착수했다. 같은 해 7월 31일 H감정평가법인은 J은행의 담보대출 목적 감정평가에서 해당 토지의 단위 면적당 단가를 40만원, 전체 시가를 72억2800만원으로 평가했다. 평가기준일은 7월 27일이었다.
서초세무서장과 강남세무서장은 이 감정가액을 토지 양도 당시 시가로 보고 E사가 저가로 토지를 양수했다고 판단했다. 상속세 및 증여세법상 특정 법인과의 거래를 통한 이익의 증여 의제 규정을 적용해 2024년 6월 원고들에게 증여세를 부과했다. A 씨에게 6억6900만원, B 씨에게 1억3300만원, C 씨에게 4억3600만원이었다.
세무 당국은 매매가액(40억원)과 감정가액(72억원)의 차액이 시가의 30% 이상이자 3억원 이상이므로 ‘현저히 낮은 대가’에 해당한다고 봤다. 이 경우 법인이 얻은 이익을 주주들이 증여받은 것으로 의제해 증여세를 매길 수 있다.
법원 “공정률 2.4%→46.3% 급증…가치 달라져”
재판부는 여러 사정을 종합해 감정가액이 매매계약 당시의 객관적 교환가치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고 판단했다.
감정평가 기준일(2020년 7월 27일)은 매매계약일(2020년 4월 16일)로부터 약 3개월 후였다. 2020년 3월 공사기성 검사 당시 공정률은 2.4%에 불과했으나 같은 해 8월에는 46.3%로 급증했다.
재판부는 “감정평가 기준일인 7월 27일 당시 공사 진행 정도는 매매계약일인 4월 16일 당시와 상당한 차이가 있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H감정평가법인도 법원의 사실조회에 “4월 20일부터 7월 27일까지 실지조사 기간 건물 신축 및 토목공사 진행 정도의 변동이 있었고 공사 진행 정도에 따라 감정평가액도 달라질 수 있다”고 회신했다.
또한 E사의 가치상승 기여분도 감정가액에 반영되지 못했다. E사는 매매계약 이전부터 건축 허가비, 설계비, 감리비 등 30억원 이상을 지출했는데 감정가액은 이를 전혀 반영하지 못했다.
재판부는 지목과 평가 방법의 괴리에도 주목했다. 매매 당시 지목은 임야였으나 감정평가는 공장 용지 표준지를 비교표준지로 선정해 공시지가기준법으로 평가했다. H감정평가법인은 “건축허가를 받고 공사를 착수해 형질이 변경 중이므로 공장 용지 표준지를 선정했다”고 설명했지만 재판부는 이것이 오히려 매매계약 시점의 시가로 인정되기 어려운 근거라고 봤다.
원고들은 “감정가액을 매매 당시 시가로 보면 법인에 귀속돼야 할 이익을 오히려 매도인 D 씨에게 분여하는 결과가 돼 경제적 합리성을 결한다”고 주장했다. E사가 임야를 40억원에 매입한 후 자기 돈으로 공사를 진행해 가치를 72억원으로 높였는데 세무서가 72억원을 ‘매매 당시 시가’로 보면 D 씨가 E사에 32억원을 증여한 것처럼 평가된다.
하지만 실제로는 E사의 투자로 가치가 높아진 것이므로 이를 D 씨의 증여로 보는 것은 경제적 실질과 맞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재판부는 “감정가액은 매매계약 체결 이후 약 3개월 동안 공사 진행으로 형질 등이 변경된 2020년 7월 27일 당시의 토지에 관한 것으로 그 내용 자체로 매매계약일인 4월 16일의 시가로 인정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시가 증명 책임은 과세 관청에
이번 판결은 증여세 과세에서 ‘시가’ 인정의 엄격한 기준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상속세 및 증여세법은 재산 가액을 평가 기준일 현재 시가로 평가하도록 하고 있다. 시가는 불특정 다수인 사이에 자유롭게 거래될 때 통상적으로 성립되는 가액으로 감정가격도 시가로 인정된다.
법인세법 시행령도 시가가 불분명한 경우 감정평가법인의 감정가액을 우선 적용하도록 규정한다. 세무당국은 이 규정에 따라 감정가액을 시가로 본 것이다.
그러나 대법원 판례는 “시가는 원칙적으로 정상적 거래에 의해 형성된 객관적 교환가치를 말하며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방법으로 평가한 가액도 시가로 볼 수 있지만 이에 관한 증명책임은 과세 관청에 있다”고 판시해왔다(대법원 2003두15287 판결 등).
재판부는 이 법리를 적용해 감정평가가 존재하더라도 그것이 거래 당시의 객관적 교환가치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면 시가로 인정할 수 없다고 본 것이다. 과세 관청은 감정가액이 거래 시점의 시가를 제대로 반영하는지 구체적으로 입증해야 하며 납세자도 거래 시점과 감정평가 시점 사이의 현황 변동을 적극 소명할 필요가 있다.
[돋보기]
과세 관청 감정평가 의뢰 권한 자체는 적법
법원은 과세 관청의 감정평가 의뢰 권한 자체는 인정하지만 그 감정가액이 시가로 인정되려면 거래(또는 상속·증여) 당시의 ‘객관적 교환가치’를 제대로 반영해야 한다는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고 있다. 상속재산에 관한 기존 감정가액이 없는 경우에 과세 관청이 감정평가를 의뢰할 수 있다.
서울행정법원은 2024년 5월 상속인이 성동세무서장을 상대로 제기한 상속세 부과 처분 취소 소송(2023구합73250)에서 원고 패소 판결했다. 상속인이 약 140억원으로 평가한 서울 서초구 부동산에 대해 과세 관청이 감정평가를 의뢰해 약 330억원으로 평가하고 상속세를 추가 부과한 사안이다.
재판부는 “공신력 있는 감정기관의 감정가액도 시가로 볼 수 있다”며 “과세 관청의 감정평가 의뢰 및 그에 따른 상속세 부과는 절차적 정당성을 갖추고 있다”고 판단했다. 과세 관청이 시가 확인을 위해 감정평가를 의뢰하는 것 자체는 적법하다는 입장이다.
서울행정법원은 또 다른 사건(2024구합53079)에서는 과세 관청과 납세자가 각각 감정평가를 의뢰한 경우 납세자 의뢰 감정가액을 시가로 인정했다.
과세 관청이 두 감정가액의 평균액을 적용해 증여세를 부과했으나 재판부는 “과세 관청 의뢰 감정가액이 더 적정하게 객관적 교환가치를 반영했다고 인정하기 부족하다”며 납세자 의뢰 감정가액을 시가로 봐야 한다고 판단했다.
허란 한국경제 기자 wh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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