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는 토종 인터넷 기업 가운데 최초로 연매출 10조원을 넘은 국내 최대 플랫폼 기업이다. 두나무는 국내 1위이자 세계 5위인 거대 가상자산 거래소 업비트를 소유하고 있다. 시장에서는 이번 거래가 디지털 금융 지형을 바꿀 분수령이 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특히 원화 스테이블코인을 중심으로 수익 구조와 서비스 판이 완전히 재편될 수 있다는 전망이 쏟아지고 있다.
◆주주들 눈치 싸움
두나무가 네이버 품으로 들어간단 소식에 두나무 주가는 장외시장에서 34만5000원(9월 24일)에서 30만8000원(9월 25일)으로 하락했다. 나스닥 상장 기대감을 키워온 두나무가 기업가치가 더 적은 네이버파이낸셜의 100% 자회사가 된다는 소식이 일부 투자 심리를 위축시켰다. 그러나 이후 분위기는 반전했다. 두나무가 나스닥에서 단독 상장할 때보다 ‘네이버’ 타이틀을 단 합병법인의 기업가치가 두 배가 넘는 수준인 40조~50조원으로 점쳐졌고 우호적인 주식교환 비율 전망이 나오면서 두나무 주가(9월 29일)는 장중 40만5000원까지 치솟았다. 2022년 4월 22일(40만7000원) 이후 3년 5개월 만에 최고가다.
관련 기업의 주가도 들썩였다. 9월 29일 유가증권시장에서 우리기술투자 주가는 20.4%, 한화투자증권은 17.2% 증가했다. 우리기술투자와 한화투자증권은 각각 두나무 지분 7.25%, 5.94%를 보유하고 있다. 이날 두나무 지분 매각설이 불거진 한화투자증권은 공시를 통해 “정해진 바가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같은 기간 네이버 주가도 급등했다. 9월 24일 22만8000원에 거래를 마감했던 네이버 주가는 3거래일간 20.3% 뛰었다. 시가총액도 43조3000억원을 넘었다. 이후 10월 1일 네이버 주가는 전일 대비 5.21% 내린 25만4500원에 장을 마쳤다. 차익매물 실현과 함께 주식교환 비율 불확실성과 주주 간 복잡한 이해관계가 거론되면서 기존 주주 설득 부담이 투자심리를 압박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번 거래를 둘러싼 주주들의 고민은 깊어졌다. 네이버 포털 종목 토론 게시판 등에서는 ‘호재가 맞는지’, ‘더 사야 하는지’, ‘언제 사야 하는지’, ‘방을 빼야 하는지’ 등 다양한 의견이 나오고 있다.
◆최대주주는 누가
이번 합병은 네이버의 자회사인 네이버파이낸셜과 두나무가 주식을 맞교환하는 형태로 진행한다. 시장에서는 합병 비율과 기업가치 산정에 주목하고 있다. 두 기업 모두 비상장사라 가치 산정에 따라 합병 비율이 달라진다.
두나무의 자산은 약 15조3000억원, 네이버파이낸셜은 약 3조9000억원으로 두나무가 훨씬 크다. 증권가에선 두나무와 네이버파이낸셜의 기업가치를 약 15조원, 약 5조원 수준으로 추정한다. 이 비율을 적용하면 두나무 주주가 네이버파이낸셜 주식을 한 주당 3주씩 받게 된다. 기업가치 산정과 주식교환 비율을 두고 주주 간 희비가 엇갈릴 수 있는 만큼 논란이 예상된다.
주식교환을 승인하려면 주주총회 출석 주주의 3분의 2 이상 찬성이 필요하다. 송치형 두나무 회장(25.5%)과 김형년 부회장(13.1%)을 합친 경영진 지분은 38.6%다. 약 27%의 추가 지분을 확보해야 한다. 양사는 주주 대상 설명회를 열어 이번 거래의 필요성과 사업 계획 등을 발표할 예정이다.
시장에선 각종 시나리오가 쏟아지고 있다. 우선 이번 합병으로 네이버파이낸셜의 최대주주는 송 회장, 2대 주주는 네이버가 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형식상 두나무가 네이버파이낸셜의 자회사가 되지만 사실상 송 회장이 최대주주로 올라 네이버파이낸셜 경영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향후 네이버파이낸셜과 네이버의 합병 시나리오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 이렇게 되면 송 회장은 이해진 네이버 창업자 겸 이사회 의장(3.7%)보다 더 높은 약 5% 이상의 네이버 지분율을 갖게 될 수도 있다고 업계는 보고 있다. 일각에선 송 회장이 두나무의 네이버 계열사 편입을 위해 자신이 보유한 의결권의 절반 이상을 네이버 측에 위임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한편에선 1967년생인 이 의장이 은퇴와 후계를 염두에 둔 판단도 있었다는 해석도 나온다. 송 회장과 이 의장은 모두 서울대 컴퓨터공학과를 나왔다.
시장의 관심은 ‘디지털 금융판’ 재편 가능성에 쏠리고 있다. 인공지능(AI) 기술과 커머스, 콘텐츠 IP, 결제망 등 ‘사용자 접점’을 갖고 있는 네이버가 굴지의 가상자산 거래소 업비트를 품으면 글로벌 시장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통합 디지털 금융 인프라가 등장한다는 관측이다.
증권가에서는 두 회사가 이번 거래를 계기로 원화 스테이블코인 생태계를 본격 구축하고 국내 시장을 선점할 수 있을 것이란 전망이 잇따르고 있다. 업비트는 이미 국내 최대 달러 스테이블코인 유통처다. 올해 1분기 국내 달러 스테이블코인 거래액은 57조원에 달했는데 대부분 업비트에서 이뤄졌다. 두 기업이 합쳐지면 강점은 커진다. 예컨대 발행한 스테이블코인을 네이버페이에 연동해 결제 활용처를 확보하는 식이다. 네이버파이낸셜에 대한 미래에셋과의 지분 협력까지 고려하면 ‘증권–결제–유통’이 하나의 삼각 구도로 묶일 수 있다는 기대도 나온다.
이지은 대신증권 애널리스트는 “스테이블코인 예치금을 활용한 운용 수익, 담보 대출 서비스 등 다양한 모델이 가능하다”며 “네이버파이낸셜은 결제 수수료를 절감하거나 새로운 금용서비스를 도입함으로써 수익 극대화가 가능하다”고 분석했다.
그간 네이버는 미래에 대한 위기 의식이 있었다. 검색 광고와 커머스 성장세가 둔화된 상황인 데다 AI 사업도 글로벌 빅테크에 밀리고 있었던 것. 지난해 네이버웹툰이 미국 나스닥에 상장했지만 그룹의 신성장동력으로 밀기엔 역부족이다. 스테이블코인을 고리로 한 금융서비스는 장기 성장동력이 될 수 있다. 실물자산 토큰화(RWA), 증권형 토큰(STO) 등으로 뻗어나갈 수 있는 확장성도 크다.
두나무의 성장 그림도 선명하다. 네이버 생태계가 더해지면 커머스 결제, 콘텐츠 정산, 해외 송금까지 이어져 ‘생활 속 코인’으로 확장될 가능성이 높다는 해석도 나온다. 업비트는 국내 경쟁사 빗썸을 거래 규모에서 4배 이상 격차를 벌리고 있다. 최근 자체 블록체인 ‘기와’와 지갑 서비스 ‘기와월렛’을 내놓으며 서비스 다각화에 속도를 내는 중이다.
◆‘카카오 키즈’에서 네이버 동맹으로
두나무의 뿌리는 카카오와 긴밀하게 얽혀 있다. 2012년 송치형 의장이 회사를 세운 뒤 2014년 카카오와 손잡고 선보인 ‘증권플러스 for 카카오’로 대중의 눈에 띄었다. 이후 카카오그룹은 수천억원을 투자하며 두나무의 성장을 지원했다. 2013년 케이큐브벤처스(현 카카오벤처스)가 두나무에 처음 2억원을, 2015년에는 카카오가 직접 33억원을 투자했다. 2022년에는 카카오인베스트먼트가 총 5780억원을 투입하며 3대 주주(지분율 10.59%)로 올랐다.
업비트가 단숨에 국내 최대 거래소로 자리잡은 데에도 카카오의 뒷배가 있었다. 카카오 계정으로 쉽게 가입·인증할 수 있었던 구조가 이용자 확산을 가속했고 두나무 경영진은 물론 실무진 곳곳에 카카오 출신 인력이 합류하며 사업 기반을 공고히 했다.
하지만 카카오가 오너 리스크와 금융 규제 압박으로 투자에 속도를 내지 못하면서 두나무는 결국 새 동반자를 찾아 나섰다. 카카오의 인연이 두나무를 성장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지만 블록체인과 가상자산을 성장축으로 점찍은 두나무 입장에서는 보다 넓은 결제망과 콘텐츠 자산을 보유한 새로운 파트너가 필요했다는 분석이다.
업계는 이번 거래와 관련해 카카오가 보유한 두나무 지분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합병이 현실화할 경우 기업가치는 크게 상승할 수 있지만 두나무의 높은 배당 정책이 조정될 가능성이 있다. IPO 계획에 따라 카카오가 지분을 완전히 처분하는 데는 더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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