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공통적인 문제는 한국퇴직연금데이터의 글라이드 플랫폼에서 확인된다. 글라이드에는 자신의 퇴직연금 계좌를 핸드폰으로 스냅샷을 찍어 올리면 그것을 인공지능이 읽고, 퇴직연금 가입자의 나이 등을 고려해서 현재 퇴직연금 포트폴리오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알려주는 ‘포트폴리오 스샷’ 기능이 있다. 이 데이터의 분석으로부터 나온 결론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달걀을 한 바구니에 넣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안다. 이 결과로 포트폴리오에 대체로 최소 두 개 이상의 퇴직연금 투자상품을 가지고 있다. 문제는 이렇게 여러 개 가지고 있는 퇴직연금상품 중 여러 개가 그냥 다른 회사의 같은 상품이거나 다른 상품인데 성격이 굉장히 비슷한 것들이라는 것이다. 즉 자신은 다양화를 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하지 않은 경우다. 이렇게 의도치 않은 채, 모른 채 섞으면서 투자 자체의 문제와 퇴직연금 운용상의 정말 복잡한 문제가 생긴다. 그냥 대충 하나 찍어서 투자하는 것보다 훨씬 더 나쁜 결과를 낼 수도 있는 상황을 만든다.
아주 간단한 예를 하나 들어보겠다. 많은 경우 글라이드에 스냅샷을 올린 것을 보면 3개에서 많게는 5개까지의 TDF를 갖고 있다. 따라서 이 예시는 설명을 위해서 아주 간단하게 만든 것이라 여기면 되겠다. 만약 퇴직연금 가입자가 신영TDF2050과 삼성ETF를 담은 TDF2050을 70%와 30%의 비율로 가지고 있다고 가정하자. 두 TDF는 2050의 같은 빈티지이지만 주식배분만을 간단히 살펴보면 신영TDF2050는 2025년 8월 기준 약 62%, 그리고 삼성ETF를 담은 TDF2050은 약 73%로 대충 10% 정도의 주식배분 차이가 난다.
이제 조금 더 들어가 상위 5개 보유종목 데이터를 살펴보자. 신영TDF2050은 MGI Global Equity Fund M-2 USD, Mercer Sustainable Global Equity Fund – USD, Mercer Passive Global Equity Fund, 신영중기채권증권, Mercer Global Small Cap Equity Fund M-5 USD의 펀드로 이루어진 상품이다. 반면에 이름에서도 보였듯이 삼성ETF를 담은 TDF2050은 Vanguard S&P 500 ETF, JP Morgan Beta Builders Europe, iShares Core MSCI Emerging, KODEX 종합채권(AA-이상) 액티브, iShares MSCI World ETF이다.
몇 가지 문제점만 짚어보자. 첫 번째, 주식배분이 다른 두 개의 TDF를 70%/30% 비율로 섞으면서 주식비중이 70%대도 아닌 60%도 아닌 대충 65% 정도의 레벨이 됐다. 백번 양보해서 65%를 의도했다고 하자. TDF는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주식 비중을 줄여가는 상품이다. 이렇게 두 개를 섞었을 때도 앞으로 어떻게 주식배분을 줄여가는지 퇴직연금 가입자가 알기 쉽지 않다.
지금 예시의 두 개 다른 상품은 하나는 Mercer 액티브·패시브·ESG·스몰캡 혼합으로 멀티매니저, 펀드오브펀드의 구조를 가지고 있고, 다른 하나는 지수 ETF 조립형이다. 운영철학과 상품의 구조가 정반대라 봐도 무방한 두 개다. 또다시 백번 양보해서 여러 개를 다 하려고 일부러 그랬다 치자.
그런데 다른 것을 섞어서 다양화를 하려고 했는데 실제로 들여다보면 중복된 노출을 다른 방법으로 한 경우다. 이 경우 S&P 500 + MSCI World + Europe 등을 통해 상품 하나만 했어도 충분히 같은 노출을 할 수 있을 것을 두 개를 통해 ETF와 펀드 구조로 반복하는 결과가 나왔다. 게다가 환헤지도 헷갈린다.
사실 디폴트옵션의 일부도 이렇게 다른 상품을 섞어서 만들어졌다. 글로벌 시장에서는 흔하지 않은 현상이기도 하다. 이렇게 상품을 섞는 일은 하나를 딱 선택해야 하는 어려운 문제를 쉽게 풀어낸다. 하지만 어려운 문제는 어렵게 풀어야지 어려운 문제를 쉽게 대충 풀었다면 그 해답은 어떻겠는가.
영주 닐슨 한국퇴직연금데이터 대표 겸 성균관대 SKK GSB 교수
©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