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 협력의 지속성을 담보할 데이터 신뢰 체계 과제 남아
[박영실의 이미지 브랜딩]
평범한 회식처럼 보이지만 이 장면은 인공지능(AI) 동맹의 상징적 출발이었다. 흥미로운 건 이 ‘치맥 회동’의 기획자가 황 CEO의 딸인 매디슨 황이었다는 점이다. 넷플릭스 ‘오징어 게임’의 ‘깐부’(친한 친구) 개념을 차용해 ‘AI 깐부 결성’이라는 이벤트를 연출했다.
황 CEO는 “치킨과 맥주를 좋아하고 친구들과 함께할 때 가장 행복하다”며 ‘깐부’라는 단어에 의미를 더했다. 이후 세 리더는 코엑스에서 열린 엔비디아 그래픽카드(GPU) ‘지포스’의 한국 출시 25주년 행사 무대에도 함께 올랐다.
그리고 다음 날 경주 APEC CEO 서밋에서는 이재명 대통령을 만나 모두 정장 차림으로 공식 일정을 소화했다. 이들의 옷차림 변화는 단순한 스타일이 아니라 TPO(시간·장소·상황)에 따른 완벽한 메시지 전략이었다.
옷으로 말하는 리더들, ‘편안함’과 ‘존중’의 미학
세 리더의 만남에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옷차림이었다. 황 CEO는 검은 가죽 재킷에 블랙 티셔츠 차림으로 등장했다. 엔비디아의 상징색인 블랙은 그가 늘 강조해온 ‘기술의 절제된 힘’을 표현한다.
그의 옷은 기능적이면서도 실용적이다. 블랙 가죽 재킷에 진한 데님, 그리고 검은 스니커즈는 ‘나는 혁신가이자 리더’라는 그의 정체성을 드러낸다. 이재용 회장은 화이트 티와 베이지 톤의 팬츠로 차분한 이미지를 연출했다.
평소 정장을 즐기던 그가 캐주얼한 아이보리 톤을 택한 것은 글로벌 파트너와의 ‘친밀한 협력자’ 이미지를 의식한 선택이다. ‘깨끗함’과 ‘투명함’의 메시지를 담은 흰색은 동시에 ‘무겁지 않은 리더십’을 상징한다.
정의선 회장은 베이지 톤의 플리스 베스트와 화이트 티를 매치했다. 이는 그의 자동차 디자인 철학인 ‘기술 속의 따뜻함’을 옷차림으로 시각화한 듯하다. 이들의 스타일에는 공통점이 있다. 형식은 내려놓되 품격은 유지한다.
AI 시대의 리더는 ‘권위’보다 ‘접근성’을 입는다. 깐부치킨 회동의 캐주얼룩이 바로 그 예다. 반면 다음 날 APEC에서 세 사람이 모두 다크톤 슈트를 입은 것은 ‘국가 행사’라는 TPO에 따른 ‘격식과 존중의 언어’였다. 블랙 타이에 완벽히 맞춘 공식 복장은 기술 동맹이 국가적 차원으로 격상됐음을 시각적으로 보여준 순간이었다.
행동으로 드러난 리더십, 위트와 인간미의 조화
세 리더는 각자의 리더십 성향을 뚜렷이 드러냈다. 황 CEO는 치맥 자리에서 시민들에게 “오늘은 내 인생 최고의 날”이라며 웃음을 터뜨렸고 식당 밖으로 나와 기다리던 팬들에게 바나나맛 우유를 나눠줬다.
그는 단순한 CEO가 아니라 ‘팬 친화형 리더’로서 자신을 브랜딩한다. 이는 기술을 인간적인 이야기로 풀어내는 그의 커뮤니케이션 방식과도 맞닿아 있다.
이재용 회장은 계산을 직접 하며 “좋은 사람들과 맛있는 걸 나누는 게 행복”이라고 말했다. 다음 날 커피숍에서 만난 직원에게 5만원을 건네며 “수고 많다”고 인사한 그의 모습은 ‘젠틀 리더십’의 교과서였다. 정제된 언행과 즉흥적인 친절은 ‘냉정한 경영자’ 이미지를 넘어 따뜻하고 겸손한 리더로 각인시켰다.
정의선 회장은 “2차는 제가 쏘겠다”라는 유쾌함으로 분위기를 이끌었다. 그의 말에는 기민한 순발력과 유연한 파트너십 감각이 배어 있었다. 글로벌 자동차 시장의 격변 속에서도 그는 사람 중심의 팀워크를 우선시하는 리더십을 행동으로 보여준다.
말로 완성된 설득의 기술, 유머·스토리·비전의 조합
소통 면에서 세 리더의 스타일은 각기 다르지만 하나의 목표를 향한다. 황 CEO는 스토리텔링형 화법을 적재적소에 활용한다. 그는 코엑스 무대에서 “K팝, K드라마, K지포스”를 연달아 외치며 관중의 환호를 이끌었다. 기술을 문화의 언어로 표현하는 그의 언변은 냉철한 기술 산업을 ‘꿈과 감동의 영역’으로 확장한다.
이재용 회장은 절제된 언어를 통해 신뢰를 구축한다. “엔비디아는 삼성의 중요한 고객이자 젠슨은 나의 친구다”라는 한 문장에는 인간관계와 사업관계를 동시에 포용하는 리더다운 균형감이 있다. 무대에서 “왜 이렇게 아이폰이 많아요?”라고 농담을 던진 순간에도 그는 기술 경쟁을 유머로 승화시켰다.
정의선 회장은 평소 과묵하지만 실속형 화법을 구사한다. “미래에는 자동차에서도 게임을 하게 될 것”이라는 그의 발언은 기술과 일상의 경계를 허무는 통찰이자 현대차의 미래 비전을 압축한 문장이었다. 세 사람 모두 기술과 사람, 유머와 철학을 잇는 리더의 언어를 구사하고 있었다.
‘AI 깐부’가 넘어야 할 산, 기술 동맹에서 신뢰 동맹으로
이들의 만남은 단순한 화제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치킨 한 조각, 맥주 한 잔이 세계경제 지형을 바꾸는 ‘AI 삼각동맹’의 상징이 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 리더 앞에는 여전히 과제가 있다.
첫째, 기술 협력의 지속성을 담보할 데이터 신뢰 체계가 필요하다. 엔비디아의 GPU, 삼성의 반도체, 현대차의 자율주행 플랫폼이 하나의 생태계로 작동하기 위해선 기술 표준화와 보안 협력이 필수적이다.
둘째, 공공성과 윤리의 리더십이다. AI 동맹이 기술 독점을 강화하는 방향이 아닌, 인류의 삶을 향상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진정한 ‘깐부 정신’이 완성된다. 결국 이들의 회동은 한 나라, 한 산업을 넘어 ‘친구처럼 협력하되 리더답게 책임지는 시대의 서막’이었다.
치맥 잔 위로 비친 그들의 웃음 속에는 기술의 미래, 인간의 연결, 그리고 리더십의 새로운 정의가 담겨 있었다. 이들의 만남은 단순한 화제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세계는 지금 이들의 협력이 만들어낼 산업 지형의 변화에 주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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