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침체·이상고온 등으로 수년째 불황 지속
패션 기업, 해외로 눈 돌리며 시장 넓혀
이에 따라 패션업계는 다른 출구를 모색하고 있다. 이들에게 출구의 단초를 제공한 것은 ‘K콘텐츠’의 글로벌 흥행이다. K뷰티와 K패션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해외 진출 기회가 생겼기 때문이다. 기업들은 앞다퉈 해외 사업에 나서고 있다. ◆ K패션 호감도 올라가는 지금이 타이밍주요 패션 기업들은 K패션에 대한 관심이 증가한 올해를 해외 진출 적기라고 판단했다. 한 업계 관계자는 “투자 여력이 없어도 지금 놓치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해외로 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중증외상센터’, ‘폭싹 속았수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 등 올해 공개된 K콘텐츠가 연달아 흥행하면서 한국에 대한 관심이 K패션으로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구글 트렌드에서 ‘Korean Fashion(한국 패션)’을 검색하면 전 세계 기준 2020년 검색량 43에서 올해 8월 100을 기록했다. 구글 트렌드는 검색 빈도가 가장 높은 시점(100)을 기준으로 관심도를 수치화해주는 서비스다. ‘K-Fashion(K패션)’, ‘Korean Brand(한국 브랜드)’ 등의 검색어도 같은 흐름을 보였다.
가장 활발한 곳은 현대백화점그룹의 패션 계열사 한섬이다. 한섬은 지난해까지 프랑스 파리를 중심으로 해외 사업을 전개하다가 올해 처음으로 태국에 진출했다. 지난 9월 태국 방콕에서 시스템·시스템옴므 패션쇼를 진행하며 동남아 패션 시장 진출 첫발을 뗐다. 한섬이 동남아 현지에서 패션쇼를 진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한섬은 동남아 시장에 공을 들이고 있다. 동남아는 글로벌 럭셔리 브랜드들이 주목하는 주요 시장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경제가 성장함에 따라 기존 중저가 중심의 패션 수요가 고품질의 프리미엄 패션 브랜드로 빠르게 확산하며 럭셔리 시장이 급성장하고 있다. 동남아 총 인구는 약 7억 명으로 전 세계 12분의 1가량을 차지하고 있으며 자산 100만 달러 이상을 보유한 고액 자산가 수는 100만여 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패션의 메카 프랑스 파리에도 지속적으로 투자가 이뤄지고 있다. 지난 8월 파리 대표 백화점 사마리텐에 ‘타임 파리’의 팝업스토어를 열어 브랜드 알리기에 나섰다. 한섬은 1년 넘게 파리에서 글로벌 플래그십 스토어 ‘시스템 파리’를 운영하고 있다. 내년 초엔 갤러리 라파예트에 ‘시스템옴므’ 정식 매장도 선보일 예정이다.
LF도 적극적이다. 대표 토종 브랜드 ‘헤지스’는 지난 10월 러시아에서 2호점을 열었다. 지난해 1호점을 연 지 1년 만이다. 또 올해는 인도와 신규 계약을 했고 연내 오픈을 목표로 매장을 준비 중이다. 헤지스는 올해 설립 25주년을 맞아 중동 등 글로벌 국가 확대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LF 자회사 씨티닷츠의 캐주얼 브랜드 ‘던스트’는 미국에서 성과를 내고 있다. 올해 상반기 홀세일(도매) 기반 미국 시장 B2B 매출은 전년 대비 110%, 북미 전체는 100% 성장을 기록했다. 올 하반기 뉴욕 ‘버그도프 굿맨’, ‘프렝탕 뉴욕’ 등 주요 프리미엄 백화점 내 편집숍에 입점하며 오프라인 채널을 확대했다. 이외에도 올해 파리 마레지구 라이프스타일 셀렉숍 ‘메르시’, 아마존 계열 글로벌 패션 리테일러 ‘샵밥’, 캐나다 전통 백화점 ‘라 메종 시몬스’까지 신규 채널도 확대했다.
코오롱FnC는 아시아 시장에 집중하고 있다. 코오롱의 골프웨어 브랜드 지포어는 지난 4월 일본과 중국에서 오프라인 매장을 연이어 오픈했으며 또 다른 골프웨어 왁은 올해 초 미국에서 세계 골프 박람회 ‘PGA쇼’에 참가했다. 액세서리 브랜드 아카이브앱크는 일본에서 팝업스토어를 운영하며 소비자 인지도를 높이는 데 주력하고 있다. 코오롱인더스트리의 대표 브랜드인 코오롱스포츠는 중국에서 특히 인기를 얻고 있다. 아웃도어에 대한 관심과 K패션 유행이 맞물리면서 지난해 중국 매출은 7500억원을 기록했다.
신세계인터내셔날은 뷰티를 앞세워 해외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지난해 인수한 어뮤즈는 유럽 내 영국과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온·오프라인 입점을 확대하고 있다. 영국은 K뷰티 유통 전문기업 퓨어서울(Pure Seoul) 9개 매장에 입점했고 이탈리아의 리테일 체인 OVS 50개 매장에서 제품을 판매하고 있다. 스페인, 프랑스, 독일 등에서는 유럽 지역의 K뷰티 플랫폼에 입점을 완료했다. 신세계인터내셔날의 대표 브랜드인 ‘연작’ 역시 중국에서 유통망을 확장하고 있으며 일본은 추가 온·오프라인 플랫폼 입점을 검토하고 있다.
아직 실적이 공개되지 않은 신세계인터내셔날, LF, 코오롱인더스트리(코오롱FnC), 삼성물산(패션 부문) 등도 마찬가지다. 증권업계에서는 이들 기업의 매출이 1~5%가량 감소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영업이익은 적자전환이 예상되는 곳도 있다. 연간 기준으로는 매출은 소폭 줄어들고 영업이익은 10~40% 감소할 가능성이 크다.
국내 취약한 내수 기반은 이들이 해외에서 출구를 찾을 수밖에 없게 만든 셈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2023년부터 올해 2분기까지 민간소비는 0%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심지어 올해 1분기에는 윤석열 전 대통령의 계엄령 영향으로 마이너스를 기록하기도 했다. 매출의 대부분이 국내에서 발생하는 업계 특성 탓에 내수가 어려우면 매출도 하락세로 전환된다. 삼성패션연구소는 “저성장이 예고된 패션 마켓, 의류 소비심리는 지속적으로 낮아지고 물가상승 등으로 소비자들은 더욱 소비에 민감해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지난해 시작된 실적 부진이 올해까지 이어지면서 투자 여력이 없지만 올해를 중요한 투자 타이밍으로 보고 있다. 특히 해외 영향력을 확대할 수 있는 중요한 시점이라고 판단하고 적극적으로 새 시장을 찾고 있다.
이혜인 삼성증권 애널리스트는 “K패션은 이미 인바운드 관광객을 넘어 해외 현지에서도 그 인기가 증명됐다”며 “초기에는 일부 인기 있는 대표 브랜드를 중심으로 시장 인지도가 형성되겠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협업에 참여하는 브랜드 수가 빠르게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단순한 해외 진출을 넘어 ‘K패션’이라는 집합적 브랜드 카테고리가 글로벌 패션 시장 내 확실히 자리 잡게 될 것”이라며 “향후 K패션의 글로벌 성장세를 가속화하는 결정적 전환점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최수진 기자 jinny0618@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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