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시닦이 하던 식당에서 창업 계획
5조달러 시가총액 1위 기업 CEO로
“겸손·고통·서사" 강조한 리더십

"폐업까지 30일" 외친 창업 초기
2014년 'AI 비전' 첫 공개

젠슨 황 CEO는 엔비디아 주가가 처음 100달러(액면분할 전)를 넘긴 2014년 팔뚝에 엔비디아 로고를 문신으로 새겼다./연합뉴스
젠슨 황 CEO는 엔비디아 주가가 처음 100달러(액면분할 전)를 넘긴 2014년 팔뚝에 엔비디아 로고를 문신으로 새겼다./연합뉴스
불과 10년 전 엔비디아는 반도체 업계에서 비주류였다. 엔비디아 시가총액이 삼성전자를 넘어선 건 2021년부터다. 그전까지 엔비디아가 생산하는 그래픽처리장치(GPU)는 고사양 그래픽을 위한 보조 역할로 보는 시선이 대다수였다.

2017년 암호화폐 채굴에 GPU가 활용되면서 엔비디아 GPU는 시장에서 불티나게 팔렸다. 암호화폐 등락에 따라 엔비디아 주가도 출렁였지만 젠슨 황에겐 이미 “AI 시대를 열겠다”는 목표가 있었다.

2022년 말 챗GPT가 세상에 등장한 이후에는 엔비디아 주가가 폭주했다. 엔비디아 시가총액은 역사상 처음으로 5조 달러를 넘어섰다. 상장 후 주가는 2025년 11월까지 약 3300배 치솟았다.

엔비디아가 AI 시대의 주인공으로 올라선 건 우연이나 운이 아니었다. 기술로 미래를 내다보는 혜안, 진정성으로 사람의 마음을 얻어내는 서사, 고통을 위대함으로 만드는 인격까지 갖춘 리더십이 그를 지금의 자리로 이끌었다. ‘위대함’은 고통에서 나온다
"접시닦이에서 지구 1위 CEO로”…‘위대한 쇼맨’ 젠슨 황 리더십
젠슨 황은 언제나 ‘고통’을 강조한다. 그는 칼텍대 졸업 연설에서 “위대함은 지능이 아닌 인격에서 나온다. 그리고 인격은 그저 똑똑하다고 생기는 것이 아니다. 고통을 겪은 사람에게서 만들어진다. 여러분 모두에게 충분한 고통과 시련이 닥치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말한 적이 있다.

이번 방한에서도 한국과 자신의 공통점을 ‘시련’에 이뤄낸 위대함에서 찾았다. 젠슨 황은 APEC 기자간담회를 마치며 “AI는 인류가 만든 가장 복잡한 기술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 어려운 길을 스스로 걸어온 회사”라며 “고통 없이는 위대함이 없다. 그건 한국이 내게 가르쳐준 진리”라고 말했다.

젠슨 황은 대만에서 태어나 10세 때 미국 친척집에 보내졌다. 타향살이는 그를 강하게 만들었다.

1993년 서른 살엔 동업자들과 AMD를 나와 엔비디아를 창업했다. 개인용 PC가 대중화되면서 가까운 미래에 게임, 동영상 등 멀티미디어 기기로 PC가 진화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창업 초기엔 사무실이 따로 없었다. 캘리포니아주에 있는 식당 ‘데니스’의 구석에 아침마다 모여 열 번씩 커피를 리필하며 치열하게 토론했다.

데니스는 젠슨 황이 15세 때 접시닦이 알바를 하던 곳이다. 이후 32년째 회사를 이끌고 있다. 용산 전자상가를 돌며 GPU를 팔던 그는 엔비디아를 AI 가속기 시장의 80%, 데이터센터 GPU 시장의 92%를 차지하는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젠슨 황은 “미국에서 이민자로 겪은 고된 삶이 강인한 인내심과 정신력, 겸손함을 키웠다”고 말한다.

33년 동안 망할 뻔한 위기도 여러 번 찾아왔다. 하지만 젠슨 황은 흔들리지 않는 자기 확신으로 오랜 시간을 인내했다.

“우리 회사는 폐업까지 30일 남았습니다.” 창업 초기 젠슨 황은 이 문장으로 직원 회의를 시작하곤 했다. 1995년 출시한 첫 번째 그래픽카드(NV1)가 실패했고 1997년 8월 출시한 ‘리바128’을 시장에 출시했을 때 회사 자금은 한 달 치 월급뿐이었다.

젠슨 황은 재가 되기 직전이었다. 다행히 리바128은 시장을 강타했다. 주문이 쏟아졌다. 젠슨 황은 직원들을 독려했고 4개월 만에 100만 개를 팔아치우며 회사는 기적적으로 살아남았다.

1999년 상장 후 그해 가을 엔비디아는 모든 것을 바꿀 물건을 세상에 내놨다. 엔비디아가 처음 ‘GPU’라는 이름을 붙여준 ‘지포스 256’이다. 지포스는 기존에 CPU가 소프트웨어를 통해 처리해 병목현상이 나던 그래픽 연산을 스스로 수행해 연산 속도를 압도적으로 높인 괴물칩이었다.

당시 PC 시대를 점령했던 반도체 CPU 대신 새로운 시장을 연 것이다. 이 순간이 훗날 AI 시대를 열게 될 반도체의 시작이었다는 것은 아무도 알지 못했다. 이익 갉아먹던 애물단지 ‘쿠다’, 보물단지로
"접시닦이에서 지구 1위 CEO로”…‘위대한 쇼맨’ 젠슨 황 리더십
엔비디아의 비밀병기인 ‘쿠다’가 출시됐을 때에도 시장 반응은 차가웠다. 2006년 말 젠슨 황은 쿠다를 내놓으며 “쿠다가 슈퍼 컴퓨팅을 확장할 것”이라고 말했지만 아무도 쿠다의 가치를 믿지 않았다. 젠슨 황은 월스트리트 투자자들을 만날 때마다 같은 질문에 시달렸다.

“도대체 그걸로 어떻게 돈을 벌 것입니까?” 쿠다는 무료였지만 사용자는 거의 없었다. 엔비디아 내부에서도 ‘쿠다 택스(세금)’라고 부를 만큼 회사의 이익을 갉아먹는 애물단지였다. 엔비디아 주가는 쿠다 출시 이듬해인 2007년 70%가량 급락했다.

10년 가까이 쿠다를 외면하던 시장이 반응한 사건은 2012년 토론토대 제프리 힌턴 교수팀의 딥러닝 대회 우승이었다.

이들은 13만 회 이상 인용된 기념비적 논문 ‘심층 합성곱신경망(CNN)을 이용한 이미지넷 분류’ 초록에 “GPU로 매우 효율적인 연산을 구현했다”고 적었다. 힌턴 교수는 올해 노벨물리학상을 받았고 당시 연구팀원이던 일리야 수츠케버는 오픈AI를 공동창업했다.

AI 겨울을 끝낼 돌파구를 찾은 젠슨 황은 빠르게 움직였다. 2013년 엔지니어였던 브라이언 카탄자로가 쿠다 플랫폼 위에서 신경망을 결합한 소프트웨어 ‘cuDNN’을 개발하자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직접 논문을 섭렵하며 신경망을 공부했다. 신경망에 대한 확신을 얻은 젠슨 황은 직원들에게 메일을 보냈다.

“이제 우리는 더 이상 그래픽 회사가 아니다. 모든 것을 딥러닝에 집중한다.”

당시 부사장이었던 그레그 에스티스는 “지난 금요일까지 우리는 그래픽 회사였는데 월요일 아침이 되자 AI 회사가 되어 있었다”고 회상했다.

AI 기술의 핵심에는 병렬 컴퓨팅과 신경망 연구가 존재한다. 하지만 당시만 해도 병렬 컴퓨팅은 성공이 어렵다며 외면받았고 신경망은 생물학적 뇌 구조를 모방했다는 이유로 시대에 뒤떨어진 기술이라며 외면받았다. 하지만 젠슨 황은 이를 ‘일생일대의 기회’로 봤다.

2014년 GTC에서 젠슨 황은 AI 비전을 처음 공개했다. 이후 AI 기술은 폭발적으로 발전했다. 2016년 8월 젠슨 황은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오픈AI 사무실로 직접 찾아갔다.

세계 최초의 AI 전용 슈퍼컴퓨터 ‘DGX-1’을 전달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본체에 검은색 마커로 이렇게 서명했다. “일론과 오픈AI팀에게! 컴퓨팅과 인류의 미래를 위하여.”

젠슨 황의 진짜 무기는 통찰력과 혜안이다. 그는 이미 20년 전 GPU의 범용 처리 가능성을 간파하고 가속 컴퓨팅의 미래를 내다봤다. 그 통찰을 2006년 쿠다 개발로 구체화하며 일찌감치 AI 생태계를 개척했다.

2016년 세계 최초의 AI 슈퍼컴퓨터 DGX-1을 세상에 내놓은 후 미친 속도로 컴퓨팅 성능을 높여왔다. 2020년 멜라녹스테크놀로지를 인수하며 데이터센터의 핵심인 초고속 네트워킹까지 장악했다. 하드웨어부터 소프트웨어, 대규모 데이터센터까지. 젠슨 황은 AI 제국을 이루기 위한 토양을 하나씩 쌓았다. 회사 위해 춤도 춘다 : 설계된 쇼맨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30일 오후 서울 강남구 삼성역 인근 깐부치킨 매장에서 이재용 삼성그룹 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과 치킨 회동을 하고 있다./뉴스1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30일 오후 서울 강남구 삼성역 인근 깐부치킨 매장에서 이재용 삼성그룹 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과 치킨 회동을 하고 있다./뉴스1
“이 중 엔비디아 주식을 들고 있는 사람들 있나요?”

지난 10월 30일 한국을 방문해 코엑스 광장에서 무대에 선 젠슨 황의 질문에 관중들이 환호했다. 서학개미의 위력을 이미 알고 있는 젠슨 황은 “그래서 한국이 부자인 겁니다”라며 응답했다.

행사장 공연을 위해 온 K팝 걸그룹을 직접 소개하기도 했다. 젠슨 황은 “이제 누구도 팝을 듣지 않는다. 누구도 재즈를 듣지 않는다. 누구도 로큰롤을 듣지 않는다. 왜냐면 세상 모두가 이제 K팝을 듣는다”고 말하며 콘서트장의 MC 못지않는 진행 실력을 보여줬다. 지구에서 가장 비싼 시가총액 ‘5조 달러’ 기업을 이끄는 CEO이자 엔지니어라고는 상상할 수 없는 재치와 스타성이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정의선 현대차 회장과의 깐부치킨 회동부터 한국 IT 산업에 대한 존경과 감사까지 전한 젠슨 황은 한국인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A to Z를 미리 공부라도 한 듯 전략적인 마케팅을 보여줬다.

해외에서도 젠슨 황은 팝스타 못지않은 인기를 누린다. 마크 저커버그는 그를 “테크계의 테일러 스위프트”라고 평가했고 엔비디아 기술 발표는 최근 몇 년간 ‘슈퍼볼’ 같은 열기로 가득 찬다.

2024년 초여름 대만 야구장에서 시구자로 나섰을 때 그의 등 번호는 93번이었다. 엔비디아의 창립 연도를 의미한다.

작년에는 중국 엔비디아 새해 행사에 조용히 등장해 직원들과 함께 춤을 췄다. 미국의 중국 반도체 규제 속에서 최대 시장인 중국에서 일하는 직원들을 격려하고 중국 정부의 미움을 사지 않는 전략적 행보였다. 마치 팝스타를 방불케 하는 팬덤은 젠새너티(젠슨 황+열광)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냈다.

대중이 젠슨 황에게 환호하는 이유는 그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기업을 이끌기 때문이 아니다. 사람들의 마음을 얻기 위해 ‘진정성 있는 설계’를 하기 때문이다.

‘깐부 회동’ 한 달 전 그는 딸 메디슨 황을 한국에 먼저 보내 장소를 물색하게 하고 그 만남에 담을 의미까지 직접 설계했다.

김영은 기자 kye021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