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관세 인상으로 매출은 늘지만 분위기는 썰렁
중국 광군절 매출 성장도 둔화 추세
한국은 환율·소비심리 개선으로 그나마 다행

예년과 다른 블랙프라이데이, 얼어붙은 소비자 지갑
11월은 전 세계의 쇼핑 시즌이다. 숫자 1이 네 번 겹치는 11월 11일부터 할인에 나서는 중국을 시작으로, 추수감사절 다음 금요일에 연중 최대 규모 쇼핑 행사를 여는 미국도 있다. 한국 역시 11월 초부터 유통업계의 대대적인 할인이 시작된다.

그러나 분위기는 예년과 다르다. 고금리 장기화, 글로벌 경기 둔화가 겹치며 소비심리가 얼어붙었다. 특히 미국은 관세 영향까지 더해지면서 할인해도 저렴하지 않다는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 한국은 올 하반기 들어 소비심리가 살아나고 있지만 여전히 소비에 신중한 모습이다. ◆ 분위기 달라진 미국, 매출 성장 둔화한 중국블랙프라이데이(Black Friday)는 미국에서 매년 11월 네 번째 목요일(추수감사절) 다음 날인 금요일에 열리는 유통·패션·전자업계의 연중 최대 할인행사다. 소비자들이 몰려들면서 점포 매출이 ‘적자(red)’에서 ‘흑자(black)’로 전환되는 날이라는 뜻에서 유래됐다. 또 쇼핑 수요가 늘어나면서 도로가 ‘검게 보일 만큼’ 차량과 사람이 몰린다는 의미로 ‘블랙’을 사용하기도 한다.

미국은 영토가 넓은 특성 탓에 지역 단위로 물류가 움직이며 매장이 자체적으로 재고를 관리한다. 점포가 물류 관리비를 부담해야 하는 만큼 재고가 쌓일수록 비용도 늘어난다. 할인을 통해 재고를 없애는 게 더 이익이기 때문에 대대적인 세일에 나선다. 1961년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단 하루 할인행사’로 시작됐으며 1970년대 들어 미국 전역으로 확산되면서 연말까지 이어지는 할인행사로 바뀌었다. 현재는 한국, 중국, 일본, 유럽 등에서도 11월부터 대규모 할인에 나서고 있다.

일부 제품은 90% 이상 할인하며 평균 할인 가격도 50~70% 가까이 된다. 이 때문에 오프라인 매장은 새벽부터 줄을 서서 오픈을 기다리고 온라인은 서버가 불안정할 정도로 트래픽이 늘어난다. 아마존, 월마트, 타깃 등 주요 온·오프라인 유통점포들은 블랙프라이데이를 열흘 앞두고 조기 할인행사를 시작했다.

그런데 올해는 분위기가 다르다. 인플레이션(물가인상)과 경제적 불확실성에 시달리면서 블랙프라이데이 시즌 판매 성장이 둔화될 수 있다는 의견이 나온다. 블룸버그는 “관세 인상으로 4월 이후 물가가 꾸준히 상승했다”며 “개인 재정과 고용 시장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면서 소비심리는 거의 사상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고 평가했다.

글로벌 컨설팅업체 베인앤드컴퍼니는 올해 미국 소매 연말연시 매출 증가율이 4.0%에 그칠 것이라고 내다봤다. 10년 평균 성장률(5.2%)에 미치지 못하는 수치다. 소비심리 악화와 신용 연체율 급증의 영향이다. 지난 10월 미국 소비자신뢰지수는 94.6(1985년=100 기준)으로 9월보다 1.0포인트 하락했다. 8월 이후 3개월 연속 하락세다.

또 다른 컨설팅업체 PwC는 미국 소비자의 올 연말 지출이 전년 대비 5% 줄어든다고 관측했다. 5년 만에 가장 큰 감소폭이다. PwC는 “소비자 84%는 가격 상승, 새로운 관세, 생활비 증가 등을 이유로 향후 6개월 동안 지출을 줄일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침체된 분위기와는 달리 올해 블랙프라이데이 휴일 매출은 사상 처음으로 1조 달러를 넘어설 전망이다. 미국소매업연합(National Retail Federation)은 올해 휴일 매출이 처음으로 1조 달러(1467조원)를 넘을 것으로 내다봤다. 11~12월 매출은 1조100억~1조 200억 달러로 예상된다.

다만 이 수치는 블랙프라이데이 흥행과는 별개다. 업계는 관세 인상으로 전반적인 제품 가격이 오른 점이 매출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분석했다. 실제 블랙프라이데이 기간 판매량이 높은 TV, 스마트폰, 태블릿PC 등은 관세 영향을 받는 중국, 인도, 베트남 등에서 생산돼 가격이 오르고 있다.

미국보다 보름 앞서 할인행사에 나선 중국 상황도 마찬가지다. 미국의 블랙프라이데이에 해당하는 중국 최대 쇼핑 축제 광군절의 매출은 전년 대비 14.2% 증가했지만 지난해 매출 증가율(26.6%)에 미치지 못한다. 중국 소비자조사업체 신툰(Syntun)은 “소비자들은 더 이성적으로 소비하며 실제로 필요한 제품에만 기꺼이 지불하려는 태도를 보인다”며 “필요도에 따라 등급을 나눠 소비하는 방식이 자리 잡고 있다”고 밝혔다.

업계 한 관계자는 “관세의 영향으로 할인을 한다고 해도 이전만큼 큰 체감을 못하는 분위기”라며 “현지에서도 크게 기대하는 분위기는 아니다. 블랙프라이데이를 위해 물량을 준비하는 대신 남은 재고를 없애는 데 집중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 Z세대가 가장 줄인다…한국은 그나마 ‘기대’연령별로는 Z세대의 지출이 가장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PwC에 따르면 전체 연령대의 지출은 전년 대비 5% 줄어드는 반면, Z세대의 지출은 23% 감소할 전망이다. 밀레니얼 세대가 지난해와 비슷한 금액을 지출하고 베이비붐 세대가 지출을 5% 늘리는 것과 대조된다.

한국은 그나마 상황이 낫다. 한국은행 ‘소비자동향조사 결과’에 따르면 9월 소비자심리지수는 110.1을 기록했다. 8월(111.4)보다 소폭 하락했지만 민생쿠폰 등의 효과로 최근 5개월 연속 상승했다.

직구 혜택이 줄어들면서 내수 소비로 전환된 영향도 있다. 예를 들어 미국 데커스가 운영하는 어그(UGG)의 정가 250달러짜리 부츠를 50% 할인가(125달러)로 구매한다면 5년 전 환율(약 1000원)로 계산 시 12만원만 투자하면 된다. 관세부가세는 면제다. 2025년 11월 기준으로는 18만원이 넘는다. 환율상승과 관세 인상이 반영된 영향이다. 한국에서도 같은 시기 브랜드 할인이 적용될 경우 직구 혜택은 크게 없어진다.

업계는 11월 중순부터 한국판 블랙프라이데이를 개최해 대규모 할인에 나섰지만 올해는 할인 기간을 늘려 11월 초부터 적극적으로 고객 잡기에 나섰다. 지난해 겨울 블프와 비교하면 일주일 이상 앞당겨졌다.

네이버와 신세계그룹은 10월 말부터 할인행사를 시작했으며 올리브영 역시 11월 1~7일 블랙프라이데이를 마쳤다. 무신사·에이블리·지그재그 등 주요 패션 플랫폼도 16~17일부터 블랙프라이데이 할인을 시작했다. 이외에도 LF, 롯데마트, 쿠팡, 삼성물산, 컬리 등이 블랙프라이데이 행사에 참여한다.

네이버와 무신사는 앞다퉈 실적을 자랑하고 있다. 네이버는 지난 10월 29일부터 11월 11일까지 진행한 ‘넾다세일’에서 누적 판매액 1조원을 돌파했다. 역대 프로모션 중 가장 높은 판매 실적이다. 무신사는 블랙프라이데이 하루 만에 판매액 600억원을 기록했다. 분당 600개 이상의 제품이 판매된 셈이다.

업계에서는 특히 K뷰티와 K패션에 대한 역직구(해외 직접판매) 수요도 기대하고 있다. 내수 시장이 침체된 상황에서 해외 소비를 통한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한 전략이다. 한국 역직구 시장은 2014년 6791억원에서 2023년 1조6972억원으로 증가했다. 의류, 화장품, 음악 상품이 늘어난 영향이다.

최수진 기자 jinny061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