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박명규 기자
그래픽=박명규 기자
자동차산업의 게임 규칙이 조용히 바뀌고 있다. 예전처럼 ‘팔리면 남는’ 공식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관세와 공급망 비용이 동시에 뛰고 전기차(EV) 전환 비용까지 겹치면서 판매량만으로 수익성을 설명할 수 없는 시대가 됐다. 전통적으로 작동하던 ‘수요 증가→생산 확대→고정비 분산→마진 상승’의 공식이 흔들린 것이다. 많이 팔려도 비용과 투자 부담이 그만큼 커지면서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의 마진 구조는 뚜렷하게 빡빡해졌다.

장문수 현대차증권 애널리스트는 “관세·공급망·정치적 리스크가 동시다발적으로 작용하며 완성차의 비용 구조가 영구적으로 높아졌다”며 “마진 압박은 한계 기업을 구조조정이나 인수합병(M&A) 매물로 내몰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완성차 업체들은 이전과 다른 압력에 직면했다. 중국의 공세적 확장, 미국의 보호주의 강화, 유럽의 방어적 규제 조정이 맞물리며 글로벌 시장의 경쟁 환경을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

미·중 무역 갈등과 보호무역주의 강화는 자동차 업계의 비용 구조를 높이는 핵심 요인으로 꼽힌다. 신용평가사 무디스는 미국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시작한 관세 폭탄으로 글로벌 완성차 업계의 영업이익이 약 300억 달러 감소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캐나다·멕시코와의 무역협정 갱신을 앞둔 미국은 추가 관세 부과를 경고하며 완성차 업체들의 불안을 키우고 있다.

완성차 업체들은 분주하게 전략을 재편하고 있다. 폭스바겐과 제너럴모터스(GM)는 미국 내 공장을 확장하고 스텔란티스는 그룹 내 14개 브랜드의 판매를 지역별로 조정할 계획이다. 사실상 미국 진출이 차단된 중국 전기차 제조사들은 미국 외 대부분 지역으로 수출을 확대하고 있다. 비야디(BYD)는 브라질, 헝가리, 튀르키예에서 생산을 시작할 예정이며 인도네시아에서도 생산 확대를 계획 중이다. 이에 대응해 유럽연합(EU)과 브라질 등 주요국은 중국과의 경쟁 속에서 일자리 보호를 위해 무역장벽을 강화할 가능성이 높다.

이코노미스트는 중국산 자동차 유입으로 유럽의 전기차 판매량이 18% 증가하고 가격은 하락할 것으로 전망했다.

불확실한 EV 전환 비용은 변수다. 북미와 유럽에서 EV 수요가 둔화한 데다 보조금 축소와 배출가스 규제 완화가 겹치면서 시장 환경이 한층 불투명해졌다. 하지만 완성차 업체들은 이미 시작한 대규모 투자와 미래 기술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 막대한 자본지출을 이어갈 수밖에 없다.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이후 18개월 동안 미국 내 EV·배터리 생산시설에 1880억 달러 규모의 투자가 발표된 것만 봐도 전환 비용의 규모를 가늠할 수 있다.

일단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은 전기차 출시 일정을 줄줄이 재조정하고 있다. 아우디는 내연기관 모델을 출시하지 않고 전기차 전환을 완료하겠다는 당초의 계획을 연기하고 애스턴마틴은 첫 전기차 공개를 미룰 예정이다. 혼다는 미국 오하이오 공장에서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전기차를 개발 및 생산하려던 계획을 철회한다는 계획이다. 이코노미스트는 미국 내 전기차 판매 증가율은 2%에 그칠 것으로 전망했다.

장 애널리스트는 EV 수요 둔화와 규제 환경 변화 속에서 하이브리드 차량(HEV)이 2026년 완성차 산업의 핵심 현금원이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현대자동차와 기아, 도요타, 혼다 등은 HEV 판매를 통해 안정적인 현금흐름을 확보하며 EV 전환 자금을 자체적으로 조달할 수 있는 반면 스텔란티스처럼 HEV 포트폴리오가 약하고 내연기관·트럭에 의존하는 기업들은 구조적 비용 압박과 현금 부족 위험에 직면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태림 기자 t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