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방미통위 2인 체제 의결 절차적 하자 인정
3200억 규모 미디어 인수 원점 회귀 가능성
항소심이 남아 있지만 약 3200억원 규모의 미디어 기업 인수가 1년 9개월 만에 원점으로 돌아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서울행정법원 행정3부(재판장 최수진 부장판사)는 11월 28일 YTN 우리사주조합이 방미통위를 상대로 제기한 최다액출자자 변경 승인 처분 취소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했다.
재판부는 “방미통위가 법정 정원 5인 중 3인이 결원인 상태에서 2인의 위원만으로 처분을 의결한 것은 의결정족수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 것”이라며 “절차상 하자가 있어 위법하다”고 판시했다.
2인 체제 의결의 적법성 여부가 핵심
이번 사건은 윤석열 정부의 공공기관 혁신 계획에 따라 추진된 YTN 민영화 과정에서 비롯됐다.
기획재정부는 2022년 11월 한전KDN과 한국마사회가 보유한 YTN 주식 1300만 주(지분 30.95%)를 매각 대상으로 결정했고 2023년 10월 유진기업과 동양이 출자한 특수목적회사 유진이엔티(유진그룹 51%, 동양 49%)가 낙찰자로 선정됐다.
유진이엔티는 2023년 11월 방미통위에 최다액출자자 변경 승인을 신청했고 방미통위는 2024년 2월 7일 10개 조건을 부과해 이를 승인했다. 당시 방미통위는 김홍일 위원장과 이상인 부위원장만으로 구성된 2인 체제였으며 국회 추천 위원 3인은 모두 공석 상태였다.
YTN 우리사주조합은 이러한 2인 체제 의결이 위법하다며 소송을 제기했고 언론노조 YTN지부도 공동으로 소송에 참여했다. 다만 재판부는 노조의 원고 적격을 인정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방송법 관련 규정에 순수한 공익 보호만이 아닌 노조의 개별적·직접적·구체적 이익을 보호하는 취지가 포함돼 있다고 볼 근거가 없다”며 “노조가 주장하는 근로조건 침해 등은 이 사건 처분과 관련한 간접적이거나 사실적인 불이익에 지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이번 판결의 핵심은 방미통위법 제13조 제2항의 해석이었다. 해당 조항은 “위원회의 회의는 재적위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의결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방미통위 측은 ‘재적위원’을 “문제 되는 의결 시점에 위원회에 적을 두고 있는 위원”으로 해석해 2인이 재적한 상태에서 2인 전원의 찬성으로 이뤄진 의결이 적법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이러한 형식적 해석을 배척했다. 재판부는 “법규범의 의미는 문언뿐 아니라 입법 목적, 입법 취지, 법규범의 체계적 구조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해석돼야 한다”며 “방미통위법 제13조 제2항은 재적위원 과반수의 찬성을 형식적으로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합의제 행정기관으로 실질적으로 기능하기 위한 최소한의 위원, 즉 3인 이상의 위원이 재적하는 상태에서 재적위원 과반수의 찬성이 필요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법원, 합의제 행정기관의 본질 강조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합의제 행정기관의 본질과 방미통위 설립 취지를 상세히 분석했다. 재판부는 “방미통위는 다른 독임제 중앙행정기관과 달리 방송의 자유를 실질적으로 보장하기 위해 구성된 합의제 행정기관으로서의 성격을 본질로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방미통위법이 위원 5인 중 2인은 대통령이 지명하고 1인은 여당, 2인은 야당 추천으로 구성하도록 한 점에 주목했다. 재판부는 “대통령과 여야가 모두 구성에 관여하게 함으로써 정치적 중립성을 보장하려는 입법자의 결단”이라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방미통위법의 다른 조항들도 최소 3인 이상의 구성을 전제하고 있다고 해석했다. 방미통위법 제13조 제1항은 “위원회 회의는 2인 이상 위원의 요구가 있을 때 위원장이 소집한다.
다만 위원장은 단독으로 회의를 소집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재판부는 “‘2인 이상의 위원’은 위원장을 제외한 나머지 위원을 의미하므로 회의 소집을 위해서는 2인 이상의 위원과 위원장 1인, 최소 3인의 구성원 존재가 당연한 전제”라고 해석했다.
행정 공백 우려는 근거 없어
방미통위 측은 “3인이 공석인 경우 주요 소관 사무 대부분을 수행할 수 없어 중앙행정기관의 기능이 마비된다”며 “2인 체제하의 모든 행정처분이 위법하게 되면 법적 안정성이 심각하게 훼손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조직 관리·운영 업무 등 일반적 행정업무는 회의체를 거치지 않고도 의사결정이 가능하다”며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나아가 “행정 공백 우려를 이유로 2인 체제 의결이 가능하다고 해석하면 5인 상임위원으로 구성된 합의제 기관으로 운영하도록 한 법률 규정과 입법 취지에 정면으로 반한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외국 입법례도 참고했다. 독일 행정절차법 제90조 제1항은 “위원회는 모든 구성원이 소집되고 과반이 참석해야 의결할 수 있으며, 적어도 의결 권한이 있는 3인 이상의 위원이 회의에 출석해야만 정족수가 충족된다”고 명시한다. 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도 5인 위원 중 3인 이상 출석을 회의 개의 요건으로 삼고 있다.
재판부는 “이는 특별히 가중된 의사정족수 요건이 아니라, 합의제 행정기관에서 다수의 의결 참석 가능성이 보장돼야만 민주적이고 합리적인 의사 형성이 가능하다는 이론적 바탕에서 비롯된 법리적으로 당연한 내용을 확인적으로 규정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돋보기]
대형로펌 격돌…유진그룹 항소 가능하나 형사고발로 부담 가중
YTN 최대주주 승인 취소 소송에는 국내 주요 로펌들이 참여해 치열한 법리 공방을 펼쳤다.
피고(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 측은 법무법인 린(정경오·오정필 변호사)이 대리했다. 피고 보조참가인 유진그룹은 태평양(문성호·박태준·이석준·허보열·홍기태·정환철 변호사)과 화우(김세원·박수정·박정수·이동근·이수경·박해영 변호사) 양대 로펌을 동시에 선임해 공동 대응했다.
피고 측은 행정 공백 우려와 법적 안정성 훼손을 강조하며 2인 체제 의결의 적법성을 옹호했으나 재판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원고 측인 YTN 우리사주조합과 노조는 LKB평산(문준필·서재민·성관정 변호사)이 대리했다. 서재민 LKB평산 변호사는 “2인 체제 위법성은 하급심에서 상당히 입장이 갈리고 있는 상황”이라며 “이번 판결은 2인 체제가 위법이라는 논리를 한층 더 나아가 전개했다”고 평가했다.
다만 노조의 원고적격이 인정되지 않은 점에 대해서는 아쉬움을 표했다. 방미통위가 아직 항소장을 제출하지 않은 가운데 유진그룹이 세운 특수목적회사인 유진이엔티는 12월 4일 항소장을 제출했다. 법조계에서는 행정소송법상 방통위 승인 처분의 직접적 당사자이자 원고의 반대 입장에 있는 ‘공동소송적 보조참가인’으로서 유진그룹의 독립적 항소가 가능하다는 해석이 나온다.
그러나 유진그룹이 항소를 계속 강행할지는 미지수다. 현재 YTN 인수과정에서 직권남용, 위계에 의한 업무방해, 입찰 방해 의혹 등으로 진행 중인 형사고발 사건이 큰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유진그룹은 항소 포기 후 국가배상 청구 가능성, 방미통위의 직권 철회 시 발생할 부작용 등을 고려해 신중한 경영 판단을 할 것”이라며 “일단 항소장을 냈다가 취하할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허란 한국경제 기자 wh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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