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 휴먼’의 시대, 숫자로 증명해야 하는 시험대 올라
[박영실의 이미지 브랜딩]
과거 김대중 정부 시절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브로드밴드”를 외쳤고 문재인 정부 시절에는 ‘AI(인공지능)’를 세 번 강조했던 그가 2025년 이재명 대통령 앞에서는 ‘ASI(초지능·Artificial Super-Intelligence)’를 세 번 외쳤다.
시대의 변곡점마다 한국을 찾아 새로운 화두를 던지는 그의 행보는 단순한 투자자의 방문을 넘어선다. 그는 기술의 최전선을 읽어내는 ‘선지자’의 이미지를 구축해왔다.
이번 방한은 오픈AI와 진행 중인 ‘스타게이트’ 프로젝트, 그리고 한국의 메모리 반도체와 에너지 전략이 맞물린 중대한 시점에 이뤄졌다. 하정우 AI미래기획수석이 전한 비공개 대화의 내용은 손 회장이 단순한 조언자가 아니라 국가 전략의 파트너로서 자신을 포지셔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붉은 넥타이’ 전략과 기술적 휴머니즘의 이중주
손정의 회장의 패션은 단순한 옷차림이 아니라 그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의 강도를 조절하는 미디어 전략이다. 그는 상황과 청중에 따라 극명하게 대조되는 두 가지 스타일을 구사하며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확립한다.
먼저 이번 이 대통령과의 면담에서 보여준 모습은 ‘비즈니스 외교관’으로서의 정석을 보여준다. 손 회장은 짙은 네이비 슈트에 선명한 붉은색 넥타이를 매치했다. 통상적으로 붉은색 넥타이는 ‘열정’, ‘파워’, 그리고 ‘강한 의지’를 상징한다.
과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만남에서도 붉은 넥타이를 맸던 그는 이번 한국 대통령과의 만남에서도 동일한 선택을 했다. 이는 이번 화두인 ‘ASI’가 단순히 검토해볼 만한 기술이 아니라 국가의 명운을 걸고 즉각적으로 추진해야 할 ‘긴급하고 뜨거운’ 과제임을 시각적으로 호소하는 것이다.
가장 흥미로운 지점은 그의 페이스북 커버 사진과 같은 ‘캐주얼 모드’다. 로봇 ‘페퍼’와 함께 있는 사진에서 그는 밝은 회색 재킷에 셔츠 단추를 풀고 환하게 웃고 있다. 여기서 그의 옷차림은 권위를 완전히 내려놓는다. 딱딱한 기술이 아니라 사람을 향하는 따뜻한 휴머니티를 지향한다는 메시지다.
“SF가 아니다. 사람에게 다가가는 로봇”이라는 문구와 어우러진 그의 편안한 복장은 대중이 첨단기술에 대한 공포심을 줄이고 친근감을 느끼게 한다.
손 회장의 패션은 ‘공식 석상에서의 붉은 넥타이(강력한 추진력과 경고)’와 ‘일상과 무대에서의 편안한 차림(기술 낙관론과 휴머니즘)’이라는 두 가지 축으로 작동한다.
겸손한 악수 속에 명확한 아이 콘택트
손 회장의 행동 양식은 부드러움 속에 강한 목적성을 숨긴 소프트 파워의 정수를 보여준다. 이번 이 대통령과의 면담 과정에서 손 회장은 대통령과 악수할 때 상체를 숙이며 최대한의 예우를 갖추면서도 시선만은 상대의 눈을 명확하게 응시했다. 이는 “당신을 존경하지만 나 또한 동등한 파트너다”라는 무언의 자신감을 내비치는 것이다.
더불어 그의 행동은 철저히 ‘기브 앤드 테이크’의 원칙을 따른다. 그는 한국 정부에 규제완화나 에너지 지원을 요구하기에 앞서 “한국은 메모리 1위 국가이기에 AI 강대국이 될 수 있다”는 확신과 함께 ‘암(ARM) 스쿨’ 설립이라는 구체적인 선물을 먼저 풀어놓는다.
말로만 협력을 외치는 것이 아니라 르네 하스 ARM CEO를 대동하고 인재 양성 계획을 직접 제시하는 ‘행동하는 사업가’의 면모를 보여줬다.
심리적 거리를 좁히며 반복과 은유 전략
하정우 수석이 전한 바에 따르면 손 회장은 대화 도중 이 대통령에게 “매우 스마트한 분이라 존경한다”며 상대의 자존감을 높여주는 화법을 구사했다. 이는 단순한 칭찬이 아니라 상대를 자신의 기술적 비전을 이해할 수 있는 동지로 격상시킴으로써 심리적 거리를 좁히는 고도의 행동 전략이다.
그의 화법은 크게 반복, 은유, 그리고 자신감이라는 세 가지 축으로 요약된다. 첫째, 그는 과거 브로드밴드와 AI에 이어 이번에도 ‘ASI’를 세 번 외치는 ‘3회 반복의 법칙’을 구사했다. 이는 수많은 논의 속에서도 상대의 뇌리에 단 하나의 핵심 키워드를 각인시키는 전략이다.
둘째, 그는 “ASI 접근성은 기본 인권”, “과도한 데이터 규제는 과학자의 목을 조르는 것”과 같은 파격적인 은유를 사용한다. 이러한 표현은 논리적 설명을 넘어 듣는 이의 감정을 자극하고 기술 투자를 국가의 도덕적 의무로 프레임화한다.
마지막으로 그는 “10년 뒤 세계 GDP의 10%”, “10조 달러 투자 시 반년 만에 회수”와 같은 천문학적인 숫자를 주저 없이 제시한다. 이는 자신의 비전이 허상이 아닌 다가올 현실임을 숫자로 증명하려는 자신감의 표현으로 분석된다.
‘거품론’과 ‘혁명’ 사이, 입증의 시간을 마주하다
손 회장은 이번 방한을 통해 다시 한번 ‘미래 전도사’로서의 브랜딩을 공고히 했다. 그러나 그에게 남겨진 과제 또한 만만치 않다. 글로벌 시장에서는 여전히 ‘AI 거품론’이 제기되고 있으며 한국의 ‘일학개미’들 역시 소프트뱅크그룹의 주가 변동성에 시름하고 있다.
오픈AI에 대한 과도한 노출 리스크, 그리고 그가 장담한 천문학적 수익이 실현될 수 있을지에 대한 의구심은 여전하다.
이제 그는 자신이 주장한 ‘ASI 시대’ 단순한 장밋빛 환상이 아니라 한국의 메모리 반도체와 결합해 실질적인 ‘슈퍼 휴먼’의 시대를 열어젖힐 수 있음을 숫자로 증명해야 하는 시험대 위에 서 있다.
그의 붉은 넥타이가 열정의 상징으로 남을지, 위험 신호로 남을지는 그의 비전이 만들어낼 구체적인 성과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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