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 리파운더 정의선]
현대차의 '질주' 만든 '공감'과 '책임'의 리더십[리파운더 정의선②]
“절대 도망가지 않겠다. 나를 걸겠다.”
2005년 기아 사장에 부임한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취임 일성으로 꺼낸 약속이었다. 서른다섯에 경영 전면에 나선 그는 책임을 회피하지 않고 임직원과의 인간적 신뢰와 공감대를 바탕으로 조직 문화를 개혁했다. 사기를 잃었던 조직을 다시 세우고 현대차그룹을 글로벌 3위로 끌어올린 힘은 정 회장의 리더십에서 나왔다는 평가다.

현대차 국내 임직원의 자발적 이직률은 0.39%다. 해고를 제외하면 지난해 스스로 회사를 떠난 직원이 거의 없었다는 뜻이다. 직원들의 만족도가 연봉이나 복지 때문만은 아니다. 현대차의 자발적 이직률은 역대급 성과급 등 파격적인 직원 복지로 화제가 된 SK하이닉스(0.9%)보다도 낮았다. 정 회장이 도입한 새로운 문화가 직원 만족도를 높였고 이는 낮은 이직률과 생산성 향상으로 이어졌다.

정 회장은 조직문화 혁신을 위해 보고문화부터 개혁했다. 그는 2018년 현대차와 기아 고위 임원들에게 “훌륭한 직원을 보고서 만드는 데 활용하는 리더는 필요없다”며 보고 문화 혁신을 강하게 주문했다.

그는 젊은 직원들이 다양한 아이디어를 펼칠 수 있도록 “결정의 속도보다 실패의 경험을 두려워하지 않는 조직을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수평적이고 자율적인 조직을 만들기 위해 복장자율화도 도입했다. 임원들이 복장자율화에 익숙해질 수 있도록 정장 대신 캐주얼 복장으로 회의를 주재했고 보고서보다 토론을 강조했다. 위에서 아래로 가는 명령 대신 현장에서 올라오는 실험적이고 효율적인 의견이 의사결정의 중심이 됐다. 문화적 전환은 조직 효율을 끌어올렸다.

정 회장의 의사소통 스타일은 담백하고 정직한 편이다. 신뢰를 위해 사과와 인정도 빠르게 한다. 2021년에는 젊은 직원들이 성과급 불만을 표출하자 총수로서 직접 사과하고 책임감을 표명하며 이례적인 행보를 보였다. 그는 “직원들이 회사에 기여를 한데 비해 존중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부분과 관련해 굉장히 미안하게 생각했고 나 스스로도 책임감을 많이 느꼈다”고 말하며 변화를 약속했다.

현대차그룹의 신차 품질 및 리콜 문제 등으로 온라인상에서 루머와 부정적인 의견들이 확산되는 상황에서도 빠르게 인정하고 문제를 수정하는 방식을 택했다. 그는 2021년 임원들에게 “품질 관련 루머와 관련해 유튜브나 블로그뿐 아니라 댓글도 보고 있다”며 “우리에게 도움이 되는 것은 무엇이든 받아들여야 한다. 거기에는 자존심도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완벽한 품질의 서비스와 제품을 제공하면 다시 평판을 회복할 수 있다는 믿음이었다.

최근에는 현대차그룹의 자율주행 기술격차에 대해 인정했다. 정 회장은 기아 80주년 행사에 참여해 기자들에게 “(현대차그룹의 자율주행 로보택시 기업) 모셔널이 열심히 하고 있지만 좀 늦은 편이 있고 테슬라가 잘하고 있기 때문에 격차가 조금 있을 수 있다”고 솔직히 인정했다. 이어 “그러나 그 격차보다 더 중요한 건 안전”이라며 “현대차그룹은 안전 쪽에 좀 더 포커스를 두려고 한다”고 밝혔다.

정 회장을 직접 접해본 사람들은 유독 겸손함과 인간적인 면모에 놀란다. 무뚝뚝한 외모와 달리 ‘공감형’ 리더라는 평가가 많다. 정 회장은 2005년 대한양궁협회장을 이어받은 뒤 선수들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하고 있다. 선수들이 올림픽 금메달을 딴 뒤 정 회장의 목에 메달을 걸어주며 눈물을 터뜨리는 모습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특근을 하면서도 공장을 가동하는 직원들을 직접 방문해 격려하기도 했다.

정 회장은 특히 그룹의 헤리티지가 ‘인본주의’라는 것을 잊지 않는다. 그는 국내 신공장인 울산공장 기공식을 방문해 “반세기 전의 원대한 꿈이 실현될 수 있었던 것은 오랜 기간 담당 라인에서 묵묵히 힘써준 현장의 수많은 기술자 선배들의 열정과 헌신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또 “현대차가 혁신하는 궁극의 목적은 결국 ‘사람’”이라며 “인본주의 가치를 상품뿐만 아니라 상품을 개발하고 생산하는 사업장의 사람에게도 향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영은 기자 kye021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