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귀여움과 수십개의 ‘ㅇㅇ코어’ 시대
2026년, 명품의 재정립과 80년대 스타일의 귀환

왼쪽부터 샤넬, 셀린느, 프라다. (사진=각사 홈페이지)
왼쪽부터 샤넬, 셀린느, 프라다. (사진=각사 홈페이지)
2025년은 ‘귀여움’이 모든 트렌드를 이끌었다. 일반 키링으로 시작해 초소형 화장품 키링, 라부부와 인형 뽑기까지. 프랑스 명품 브랜드 루이비통은 현대미술 아티스트 무라카미 다카시와 협업해 귀여움을 적용한 컬렉션을 선보였다. 걸그룹 아일릿은 ‘낫 큐트 애니모어(NOT CUTE ANYMORE)’라는 노래를 통해 역설적으로 귀여움을 강조하기도 했다.

고물가 시대가 이어지며 절약 중심이었던 2024년의 소비 패턴이 한 단계 더 정교해지면서 ‘미감’이 들어간 결과다. 악화하는 기업의 실적과는 별개로 2025년의 패션 시장은 역동적이었다. 경기 불황으로 패션에 큰돈을 쓰지 않지만 트렌드와 경험을 중요시하는 한국 소비자 특성으로 서울 곳곳에서는 국내외 브랜드들의 팝업스토어가 열렸고 트렌드는 수시로 바뀌었다.

2026년 패션 시장의 분위기는 이보다 더 진화할 것으로 보인다. 취향이 결합하면서 작은 브랜드에 대한 관심은 커지며 명품은 높은 가격보다 더 중요한 디자인과 스토리를 만들어야 하는 전환점을 맞는다. 패션 트렌드는 1980년대 스타일 중심으로 전개될 전망이다. 여성의 사회적 진출이 늘어나기 시작하면서 생긴 유행이 약 40여 년 만에 돌아온다. ◆ 2025년, 귀여움과 수십개의 ‘ㅇㅇ코어’ 시대올해 패션업계를 관통한 핵심 트렌드는 ‘귀여움’이었다. 작은 인형에 열쇠고리가 달린 키링 유행은 전국 인형뽑기방으로 이어졌다. 리셀 플랫폼 크림은 “비교적 낮은 가격대에 가방·의류·디지털 기기에 다양하게 코디해 실용성이 높고 개성도 표현할 수 있어 MZ 소비자들에게 사랑받았다”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현상은 고객들의 바뀐 소비 습관 영향이다. 삼성패션연구소는 올해 주요 키워드로 ‘Frugal Chic Mindset’(검소하지만 세련된 요즘 소비자)를 선정했다. 소비자들은 절제된 소비 속에서도 자신만의 세련된 취향을 유지하는 모습으로 진화하고 있다. 가격을 중시하면서도 실용성과 미감을 겸비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를 증명하는 단어는 ‘귀여운 럭셔리’다. 2023~2024년 유행한 ‘조용한 럭셔리’에 빗댄 단어로 귀여움을 과시하면서도 상대적으로 저렴한 명품류가 관심을 받았다. 고가의 리본, 하트, 마이크로백(아주 작은 사이즈의 가방) 등을 귀여운 럭셔리로 칭한다. 베이징에 본사를 둔 중국의 장난감 회사가 선보인 인형 ‘라부부(Labubu)’가 인기를 얻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라부부는 희소성과 SNS 유행으로 리셀 가격이 정가 대비 10배가량 뛰면서 올해 새로운 명품으로 떠올랐다.

여기에 수십개의 ‘ㅇㅇ코어’ 단어들도 초단기 유행이었다. 실제 올해 유행한 단어들은 발레코어, 로맨틱코어, 캐슬코어, 고프코어, 코지코어, 모터코어, 말차코어, 오타쿠코어, 뜨개코어, 제철코어, 걸코어 등 10개가 넘는다. 특정 단어와 자연스러운 멋을 추구하는 스타일인 ‘놈코어(Normcore)’를 합성한 것으로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입을 수 있는 패션을 의미한다.

동시에 2025년은 ‘팝업스토어’의 해였다. 글로벌 브랜드 젤리캣, 스킴스, 팔란티어, 빔스, 넷플릭스, 구찌, 발렌티노 등이 서울 성동구 성수동에서 팝업스토어를 운영하며 한국 고객들과의 접점을 확대했다. 글로벌 패션 시장에서 한국의 위상이 과거 해외 본사의 전략을 수동적으로 따르는 ‘지역 시장’ 중 하나에서 아시아 전역의 트렌드를 시험하고 선도하는 ‘테스트 베드’로 변화한 영향이다.

삼성패션연구소는 “한국 시장의 달라진 위상에 해외 패션 브랜드들이 경쟁적으로 국내로 들어오고 있다”며 “아직 국내 인지도를 갖추지 못한 브랜드는 패션 대기업을 통해 진입하거나 인지도가 확보된 브랜드는 직진출 방식으로 한국에 진입하는 분위기”라고 평가했다.
사진은 디올, 로에베, 루이비통. (사진=각사 홈페이지)
사진은 디올, 로에베, 루이비통. (사진=각사 홈페이지)
◆ 2026년, 명품의 재정립과 80년대 스타일의 귀환2026년의 분위기는 2025년과 비슷하면서도 달라질 전망이다. 귀여움 대신 주목받는 것은 ‘지적인 모습’이다. 소셜미디어 기업 핀터레스트는 2026년 주요 트렌드로 ‘포엣코어(Poet-core)’를 선정했다. 포엣코어는 ‘시인(poet)’의 감성과 세계관을 시각적으로 표현한 스타일로 패션뿐만 아니라 삶을 대하는 철학적인 태도까지 포함하는 단어다. 사첼백(사각형 모양의 가방), 레이어드 스타일, 목티, 넥타이 등이 포엣코어에 해당한다.

포엣코어 트렌드는 경제 상황과 연결된 흐름이다. 큰돈을 쓰지 않아도 ‘나’를 표현할 수 있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고가의 명품보다 빈티지 제품을 주로 활용하는 포엣코어는 고물가·고금리 상황에서 취향을 드러낼 수 있는 수단으로 활용될 것으로 보인다. 핀터레스트는 “MZ세대는 오버사이즈 목티, 빈티지 재킷 등으로 정체성을 표출할 것”이라며 “포엣코어는 학자금 대출 없이도 누릴 수 있는 미적 예술 석사 과정이라고 생각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이 과정에서 소규모 브랜드에 대한 관심은 더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패션연구소는 2026년 패션 트렌드로 ‘작은 브랜드가 가지는 힘’을 선정했다. 소규모 브랜드가 전체 패션 시장의 성장을 이끈다는 의미다. 브랜드 로고가 곧 나를 표현하는 정체성이던 과거와 달리 최근 소비자들은 취향, 라이프스타일 등을 반영한 브랜드를 발굴하는 경향이 뚜렷해지고 있다.

동시에 명품 브랜드는 시험대에 오른다. 패션 전문지 BoF는 글로벌 컨설팅업체 맥킨지와 2026년 패션 트렌드를 발표했는데 ‘명품의 재정립(Luxury Recalibrated)’을 주요 키워드로 선정했다.

글로벌 명품 시장이 침체되면서 브랜드들은 단순히 가격을 앞세우는 기존 전략을 폐기하고 창의적인 전략을 새로 구상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BoF는 “가격 경쟁 위주의 성장에서 벗어나 창의성에 집중해 고객 신뢰를 다시 구축해야 한다”고 밝혔다. 앞으로 명품 브랜드는 품질, 스토리텔링, 고객경험 등 전반적인 모든 것을 충족해야 살아남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달라지는 트렌드도 있다. 1980년대 스타일이 다시 관심을 받기 때문이다. 용어는 ‘글래머라티(Glamoratti)’다. 화려하고 세련된 스타일이 특징이다. 핀터레스트는 “화려함이 넘치던 그 시대가 돌아왔다”며 “어깨선이 강조된 맞춤 정장은 더 커지고 액세서리는 더 굵고 대담해질 것이다. MZ세대가 이 유행을 주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글래머라티는 1980년대 스타일로 ‘파워 드레싱’으로도 알려졌다. 여성들의 사회적 지위가 높아지기 시작한 시점으로 무채색 또는 명도가 낮은 정장스타일의 옷이나 오피스룩이 유행했다. 여성들도 남성이 주로 입는 조끼·재킷을 입고 넥타이와 로퍼를 신는 게 특징이다. 슈트와 어깨 패드 같은 강한 모습을 통해 권위와 전문성을 시각화하는 스타일을 뜻한다.

삼성패션연구소는 “2026년 패션 시장이 여전히 녹록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지만 버드나무처럼 세태에 유연하게 대응하며 굳건하게 버티는 브랜드와 기업들에는 희망이 있다”고 전망했다.

최수진 기자 jinny061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