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에 정부의 ‘2030년 로봇 100만 대 보급’이라는 강력한 정책 드라이브가 가세하며 시장의 빗장이 열렸다. 대기업이 깔아준 거대한 판과 정부의 수요 창출은 그간 ‘개발자·공학자’의 영역에 국한됐던 로봇 업계의 리더들이 경영적 야망을 품고 전면으로 튀어 오를 수 있는 완벽한 계기가 됐다.
K-로봇의 부상은 어느 날 갑자기 떨어진 기적이 아니다. 지난 수십 년간 대한민국을 지탱해 온 정밀 제조업의 비옥한 토양 위에서 공학도들의 집념이 ‘비즈니스’라는 날개를 달고 비상한 결과다. 반도체, 자동차, 가전 분야를 거치며 고도화된 정밀 가공 기술과 미세 제어 역량은 로봇의 핵심인 ‘뼈대’와 ‘관절’을 만드는 근간이 되었다.
이러한 제조업의 유산을 물려받은 국내 로봇산업은 크게 두 갈래의 ‘뉴 리더’ 군단을 형성하며 추세적 성장에 진입했다. 인간과 협력하거나 특정 임무를 수행하는 ‘로봇(완성품·솔루션)’ 기업군과 이들의 관절과 근육을 만드는 ‘로봇 부품’ 기업군이 그 주인공이다.
먼저 로봇 완성품 및 솔루션 분야에서는 레인보우로보틱스를 필두로 두산로보틱스, 뉴로메카, 유일로보틱스, 씨메스(CMES), 클로봇(CLOBOT) 등 6개사가 시장의 세대교체를 주도하고 있다.
이러한 상업적 성과는 거대한 자본의 흐름으로 이어졌다. 2023년 삼성전자의 첫 지분 투자를 이끌어낸데 이어 2025년 삼성전자의 콜옵션 행사와 자회사 편입이라는 대형 딜을 완성하며 ‘연구실 벤처’를 ‘글로벌 밸류체인의 핵심 엔진’으로 격상시켰다. 과거 로봇 창업자들이 독자 생존의 늪에서 규모의 경제를 만들지 못했던 한계를 경영적 승부수로 돌파한 것이다.
로봇의 몸체가 정교해질수록 그 안을 채우는 부품 리더들의 위상도 높아지고 있다. 로봇의 3대 핵심 요소인 감속기, 제어기, 서보모터를 국산화한 에스피지, 에스비비테크, 로보티즈, 알에스오토메이션, 하이젠알앤엠 등 5개사는 K-로봇의 ‘근육’을 책임진다. 과거 일본 기업들이 독점했던 부품 시장에서 이들이 거둔 성과는 한국 로봇산업이 대외 변수에도 흔들리지 않는 견고한 밸류체인을 갖췄음을 의미한다.
로보티즈의 김병수 대표는 로봇의 심장이자 근육이라 불리는 ‘액추에이터(감속기+모터+제어기)’의 국산화를 통해 한국 로봇의 기초 체력을 설계한 인물이다. 1999년 창업해 1세대 로봇 리더로 꼽히는 그는 이제 단순한 부품 공급자를 넘어 글로벌 휴머노이드 밸류체인의 핵심 설계자로 재평가받고 있다.
로보티즈의 기술력은 이미 세계 시장의 정점에서 증명되고 있다. 그로스리서치 등 시장 분석 기관에 따르면 로보티즈는 지난 10월 현대차그룹의 로봇 전문 계열사인 보스턴다이내믹스에 약 700개의 액추에이터를 공급했으며 테슬라의 차세대 휴머노이드 ‘옵티머스(Optimus)’ 프로토타입에도 대표 제품인 ‘다이나믹셀’이 적용된 것으로 알려졌다.
2대 주주인 LG전자와의 견고한 혈맹 아래 로보티즈는 자율주행부터 휴머노이드까지 영역을 무한 확장 중이다.
정채희 기자 poof34@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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