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심, 일부 원고 근로자 지위 불인정
공정별·협력 업체별 지휘 관계 별도로 판단

[법알못 판례 읽기]
현대제철 당진제철소. 사진=현대제철
현대제철 당진제철소. 사진=현대제철
현대제철 당진제철소에서 일하는 하청 노동자들을 사실상 정규직으로 인정한 1심 판결이 2심에서 일부 뒤집혔다.

법원이 근로자 파견 관계의 성립 여부를 업무 유형과 공정 특성별로 세밀히 나눠 판단하면서 소송의 결론이 달라진 것이다.

초기 불법 파견 소송에선 기업에 불리한 판결이 내려지는 경우가 많았지만 몇 년 전부터 세부 공정별로 근로자들에 대한 지휘·감독 여부에 대한 판단을 달리해야 한다는 법리가 점차 확립되는 추세다.

1, 2심 판단이 엇갈린 이번 사건에서 쌍방이 상고하면서 대법원이 최종적으로 어떤 판단을 내릴지 주목된다.

7년 만에 나온 1심 결론, 3년 만에 뒤집혀

서울고등법원 인천원외재판부 민사3부(부장판사 기우종)는 2025년 11월 26일 현대제철 당진제철소 사내 협력 업체 소속 노동자들이 회사를 상대로 낸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에서 원고 전부 승소한 1심 판결과 다른 결론을 내렸다.

소송이 처음 제기된 건 2016년 1월이다. 애초 비정규직 노동자 1500여 명이 참여했으나 일부가 소를 취하해 원고 수는 925명으로 확정됐다. 그로부터 약 7년이 지난 2022년 12월 1심 법원은 선고 시점을 기준으로 나이가 정년(만 60세)을 넘긴 원고 2명을 제외한 923명 전원의 노동자 지위를 인정했다.

당시 재판부는 원고들이 현대제철로부터 사실상 직접 지휘·명령을 받으면서 회사에 실질적으로 편입돼 있었다고 봤다. 항소심 단계에서 원고 수는 890명으로 재조정됐다.

2심 법원은 이 중 324명에 대해선 파견근로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에 따른 직접 고용 의무가 성립하지 않는다며 1심과 판단을 달리했다.

이번 사건에서 원고들은 현대제철과 자신들이 체결한 용역 도급계약이 도급의 형식을 띠고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근로자 파견으로 봐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 파견법 6조의 2 1항 3호에 따라 2년을 초과해 파견근로자를 사용한 경우에 해당하기 때문에 자신들이 직접 고용돼야 한다는 취지였다.

현대제철은 주요 ‘생산’ 공정·업무를 제외한 ‘지원’ 공정·업무에 한해 협력 업체와 도급계약을 맺어 외부 인력을 활용했고 자사가 해당 인력들을 직접적, 구체적으로 지휘·감독하지 않았다며 맞섰다.

현대제철 정규직 근로자들과 협력 업체 근로자들의 업무가 장소·시간·기능 면에서 명확히 구별돼 있으며 원고들의 근태 관리나 휴가·채용·징계 등 인사 관리에 대해 협력 업체가 독자적으로 권한을 행사한 만큼 근로자 파견 관계가 인정되지 않는다는 논리였다.

7가지 공정 개별 판단…업무 특성별 판단 나뉘어

2심 재판부는 판결문 서두에서 “원고들이 담당한 구체적 업무와 피고와의 관계에서 업무를 수행한 방식 등은 근로관계의 실질을 파악하는 데 매우 핵심적인 요소”라며 “근로자 파견 관계의 성립 여부는 근로자마다 개별적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전제했다.

그러면서 △공정 시험 △중장비 운용(내부 운송) △천장크레인 운전 △기타 조업 △설비 정비 △롤샵 △고로집진수·환경수처리 등 현대제철이 협력 업체에 위탁한 지원 공정·업무를 7가지로 세분하고 각 업무를 담당한 여러 업체를 모두 구분했다.

이 중 중장비 운용, 정비, 고로집진수·환경수처리 업무에 종사했던 하청 근로자들에 대해선 적법한 도급 관계가 인정된다고 봤다.

재판부는 △현대제철이 원고들에게 상당한 지휘·명령을 했는지 △협력 업체가 현대제철 사업에 실질적으로 편입됐는지 △협력 업체가 독자적으로 인사·근태관리 권한을 행사했는지 △협력 업체의 업무에 전문성·기술력이 있는지 △협력 업체가 독립적 기업 조직이나 설비를 갖추고 있는지 등 여러 기준을 적용해 공정별로 근로자 파견 관계의 인정 여부를 세세히 판단했다.

중장비 운용 업무의 경우 현대제철이 현대글로비스와 1차 도급계약을 맺고 현대글로비스가 유성티엔에스, 대주중공업, 동원테크, 대양산업, 당진에이치이 등 2차 하도급계약을 체결한 구조였다.

재판부는 현대제철이 이 하도급 업체 소속 근로자들에 대해 “직간접적으로 업무 수행 자체에 관해 상당한 지휘·명령을 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이 업체들이 현대제철과 직접 소통하거나 협의한 적이 없는 데다 작업계획서, 작업표준서 등 업무 관련 매뉴얼을 현대제철이 정해 통보하지도 않았다는 이유에서였다.

판결문에 따르면 하도급 업체들이 사용한 휴대용단말기(PDA)나 태블릿PC가 현대제철의 구내 운송 관리 시스템과 연동돼 있긴 했지만 현대제철이 원고들에게 개별적으로 업무를 지시한 내용은 확인되지 않았다.

현대제철은 현장 대리인을 통해서만 원고들과 소통했고, 대리인이 내린 업무 지시를 변경하거나 개입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현대제철이 “구내 운송 관리 시스템을 통해 중장비의 위치, 업무 수행 지연 여부 등을 확인할 수 있었고 예정보다 업무 수행이 지체되는 경우 현장 관리인을 통해 조속히 업무가 이뤄지도록 연락한 것으로 보이긴 한다”면서도 “업무를 지연하고 있는 근로자 본인을 직접 독촉하진 않은 것으로 보이고 원고들이 해당 지시를 따르지 않았다고 해도 직접 인사상 불이익을 주는 등 개별 근로자를 징벌·제재·관리할 권한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상세히 판시했다.

현대제철이 중장비 운용 업무를 담당하는 현장 근로자 결원 시 대체 투입 가능한 인력을 별도로 두고 있지 않았던 점, 업무가 직접 생산 공정과 실시간으로 연동되지 않고 물리적으로 분리된 장소에서 이뤄진 점 등을 고려하면 원고들이 현대제철의 사업에 실질적으로 편입됐다고 보기도 어렵다는 결론이다.

당진제철소 내 각종 설비에 대한 정비 업무 종사자들에 대해서도 같은 판단이 내려졌다. 현대제철은 ‘맥시모’라는 전산 프로그램을 통해 협력 업체들에 정비 작업을 의뢰했는데 재판부는 “작업 대상을 상세히 지정한 것은 설비 가동 중 언제 고장이 발생할지 모르는 점검과 수리 업무의 특성과 성격에 기인한 것”이라며 “그 자체로 구속력 있는 지시라 평가하긴 어렵다”고 봤다.

현대제철이 맥시모를 통해 의뢰한 작업을 수행할지 선택할 권한이 정비업체들에 있었고 현대제철이 맥시모에 입력한 작업 예상 인원, 희망 시작·종료일 등이 실제 작업 내용과 불일치한 경우가 다수 있었던 점도 현대제철이 정비업체 근로자들을 구체적으로 지시하거나 감독하지 않았다는 증거가 됐다.

고로집진수·환경수처리 공정도 철강 생산 공정과 내용으로나 기능적으로 완전히 구분되고 근로자들이 현대제철로부터 구속력 있는 업무 지시를 받지 않았다는 점에 근거해 파견 관계가 인정되지 않았다.


[돋보기]
후속 사건 多…대법 판단 시일 걸릴 듯

이번 사건에서 현대제철 측을 대리한 법무법인 화우 노동그룹의 신성환 변호사(변호사 시험 6회)는 “1심 판결문에선 6줄 정도에 불과했던 정비 업무 관련 판단이 2심에선 10여 장으로 대폭 늘어났다”며 “법리에만 머무르지 않고 실제 현장에 대한 충분한 이해에 바탕을 둔 변론으로 재판부를 설득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고 평가했다.

쌍방이 상고해 이 사건은 대법원으로 넘어가게 됐다. 원고 수가 많은 데다 관련 후속 사건들이 항소심 판단을 기다리고 있어 대법원 판결이 나오기까진 상당한 시일이 걸릴 수 있다는 전망이다.

판사 출신인 양시훈 화우 변호사(사법연수원 32기)는 “후속 소송이 하급심에 줄줄이 계류된 경우 대법원에서도 하급심 판결을 좀 더 지켜보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불법 파견 소송 경험이 많은 오태환 화우 변호사(28기)는 “현대자동차의 경우 2010년대 초반부터 지금까지 15년 넘게 근로자 지위를 둘러싼 소송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며 “법리가 많이 축적되긴 했지만 쟁점이 유사한 사안에서도 재판부 성향이 따라 판결이 달라지는 경우가 여전히 많다. 편견에서 벗어난 공정하고 객관적인 법원 판결이 더 많이 나오길 희망한다”고 했다.



장서우 한국경제 기자 suw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