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거대한 파도가 밀려오는 건 확실하다. 파도를 내가 막아설 순 없다면 타이밍을 보고 잘 올라타야만 한다. 그 시도, 조직 구성원들과 함께 시작해 보자”
그런데 질문을 이렇게 조금만 바꾸면 사람들은 고민하기 시작한다. “조직 차원에서 AI를 업무에 더 많이 쓰라고 하는 건 좋으세요?” 그럼 거의 웃는다. 당연히 ‘부담스럽다’는 의미다. 내가 활용하는 건 좋은데 남이 더 많이 쓰라고 시키는 건 부담스러운 존재, 이게 AI다. 그렇다고 개인에게만 맡겨둘 순 없다. AI를 활용해 업무를 효율화하고 효과성을 높일 수 있다면 그건 개개인의 역량이 아닌 ‘조직’의 역량이 돼야 한다. 이를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 크게 2가지만 생각해 보자.
◆일 ‘쪼개기’부터 시작
첫 번째는 ‘성공 경험’ 만들기다. AI를 쓰니 ‘일이 더 잘되네’라는 경험이 쌓여야 변화가 빨라질 수 있다. 이를 위해 필요한 건 ‘작은 시도’다. 티가 안 나는 작은 일만 AI에게 시키라는 게 아니다. 업무 덩어리를 한 번에 바꾸려 하지 말고 일의 속성을 작게 ‘쪼개서’ 작은 일 하나씩 변화시키라는 뜻이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어떤 리더가 구성원에게 이렇게 지시한다. “AI가 일 많이 도와준다고 하니까, 월간 실적 보고서 만드는 거 자동화합시다”라고. 이 지시를 받은 구성원은 어떤 생각이 들까? 막막하다. AI에게 “월간 실적 보고서 만들어줘”라고 시켜도 내가 원하는 답을 안 주니까. 이때 작은 시도를 한다는 건 ‘월간 보고서 작성의 단계’를 잘라 ‘작은’ 단위 업무로 만든 뒤 그 업무에 AI를 활용하는 것이다. 그래서 필요한 게 업무 단계 ‘쪼개기’다.
월간 실적 보고서 작성의 업무는 어떤 단계로 쪼갤 수 있을까. 우선 실적 자료를 모아야 한다. 그러려면 ①담당자들에게 메일을 보내서 자료 요청을 해야 한다. 자료 취합이 쉬우려면 ②정해진 양식을 만들어 둘 필요도 있다. 취합 일정이 지나도 답을 안 한 ③담당자를 독촉하는 일도 해야 한다. 이렇게 각자의 자료가 모이면 ④하나의 데이터로 통합해야 한다. 그리고 자료를 ⑤통계적으로 분석하고 어떤 특이점이 있나 찾는다. 그 후에 특이점에서 ⑥의미를 발견하고 그것에 기반해 자료를 만든다. 특이점을 찾을 때 ⑦과거 자료와 비교 검토도 해야 한다. 자료 작성을 할 땐 가시성을 높이기 위해 ⑧표를 만들거나 이미지를 찾아 넣는다. 그리고 회사의 서식에 맞는지 ⑨검토하고 최종 점검을 한다. 그 결과물을 ⑩리더에게 보낸다.
이게 일을 ‘쪼개는 것’이다. ‘실적 보고서 작성’이라는 한 구절의 업무가 10문장, 다시 말해 10개의 단위 업무로 쪼개진다. 리더가 AI를 업무에 활용하게 하려면 이렇게 ‘쪼개진’ 업무에 적용하게 만들어야 한다. 예를 들어 ‘자료 취합 메일 발송을 자동화해 볼까?’라거나 ‘자료 제 시간에 제출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알람 보내는 걸 AI가 하도록 할까?’, ‘자료 분석을 맡길까?’라는 식이다. 그래야 구성원이 ‘무엇을’ 할지 알고 움직일 수 있다.
물론 실제 보고서 작성 업무를 단위 업무로 쪼개면 이것보다 ‘훨씬’ 더 많이 작은 것들로 나눌 수 있다. 중요한 건 이 과정을 구성원들과 함께 해보는 것이다. 이렇게 업무 프로세스를 쪼개서 ‘작게’ 시도할 업무를 찾는 게 필요하다. ‘보고서 작성 자동화하기’보다 ‘메일 발송 자동화’가 훨씬 다가가기 쉬워서다. 큰 덩어리 업무가 아닌 작은 일을 시도해 성공 경험을 만들어가자.
이걸 꼭 ‘조직 차원’에서 해야 할 필요는 없다. 내 일에 AI를 적용할 때도 마찬가지다. 가끔 ‘제가 하는 일은 사람이 해야만 하는 일이에요’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고객을 만나 상담을 하고 제안하는 일 같은 게 그렇다. 하지만 그 업무 역시 ‘단계’를 쪼개보면 ‘작은 부분’에는 분명 AI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게 있다. 상담하는 행위 자체는 사람이 해야겠지만 고객을 만나기 전 정보를 정리하는 일, 성공적 클로징을 위해 상담 연습을 하는 것, 팔로업 메일을 보내는 일 등 상담 과정 전후의 수많은 업무에 분명 AI를 써 먹을 게 생긴다. 나를 도와주는, 그것도 별다른 불평불만 없이 항상 옆에 있는 AI를 멀리할 이유는 없지 않을까? AI 활용에 대한 생각 바꾸기, 그건 일 ‘쪼개기’부터 시작됨을 기억하자.
◆AI 활용에 대한 ‘피드백’ 중요
두 번째는 ‘말하기’다. 말은 다시 2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잘’ 말하기와 ‘많이’ 말하기다.
‘잘 말하기’란 AI를 활용한 것에 대한 ‘피드백’이다. AI의 도움으로 훌륭한 결과를 얻었을 때 흔히 저지르는 실수는 “역시 AI 똑똑하네”라며 도구 자체를 칭찬하는 것이다.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만약 누군가 이렇게 말해버리면 ‘그럼 나는 뭐지?’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생각해야 하는 건 AI라는 도구를 ‘잘’ 사용한 사람의 노력이다. 어떤 일을 AI에게 시킬까를 생각한 것, 어떻게 질문해야 내가 원하는 결과가 나올까를 고민한 것, AI의 많은 제안 가운데 가장 적절한 것을 선택한 것 등을 바라봐야 한다. 이처럼 결과가 아닌 AI라는 도구를 다루는 ‘과정’을 인정하는 말을 주고받아야 한다. “AI를 어떻게 써서 이런 결과물을 만들어낸 거예요?”라는 질문을 서로 던지는 게 필요하다.
똑 같은 사양의 스마트폰이라도 누군가에겐 그냥 ‘전화기’와 다름없고, 어떤 이에겐 전화기에 TV의 기능이 탑재된 기계이기도 하다. 혹은 전화되는 게임기인 사람도 있고, 하나의 컴퓨터로 사용하는 이도 있다. AI 역시 마찬가지다. 도구 자체가 아닌 이걸 ‘어떻게 쓰는지’를 들여다 보고 그 과정을 알아주는 게 핵심이다.
다음으로 ‘많이 말하기’는 조직에서 AI 활용 사례를 자연스럽게 이야기하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든 업무에서든 ‘어제 생성형 AI한테 이렇게 질문했더니 이런 답을 하더라고’라는 얘기가 많이 들려야 한다. ‘오늘 내가 쓰는 AI가 가장 완성도가 떨어진 AI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시장은 빠르게 변하고 있다. 결국 변화의 흐름을 잘 따라가는 게 중요한데 그러려면 사람들 간 자극을 받아야 한다.
특히 이런 시도를 ‘리더’가 더 많이 할수록 조직의 수용도는 높아질 수 있다. 다만 ‘잘 쓴 것’만이 아닌 ‘어설픈 시도’도 공유하는 게 좋다. 리더가 의도적으로 자신의 서툰 시도를 노출할 때 구성원들은 ‘우리 조직에선 어떻게든 시도하는 걸 권장하는구나’라는 안도감을 느낄 수 있다. 한발 더 나아가 “나는 이런 걸 써봤는데 다른 것 발견한 거 없나요?”처럼 물으며 정보 공유의 장을 열어주는 것도 필요하다.
어딜 가나 들리는 AI 이야기. 이게 얼마나 갈지, 정말 세상을 바꾸는 건지 잘 모르겠다. 다만 ‘지금’ 거대한 파도가 밀려오는 건 확실하다. 파도를 내가 막아설 순 없다면 타이밍을 보고 잘 올라타야만 한다. 보드 위에서 비록 넘어질지라도 아직 내가 발 딛고 설 수 있는 얕은 바다라는 믿음을 갖고 뛰어드는 시도, 조직 구성원들과 함께 시작해 보자.
김한솔 HSG휴먼솔루션그룹 조직갈등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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