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의 움직임은 빠르지만 제도화 논의는 여전히 더디다. 스테이블코인 제도화를 포함한 가상자산 2단계 입법을 둘러싸고 정부안 제출이 지연되자 더불어민주당은 자체 법안을 마련해 입법을 주도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자본의 이동 속도와 제도의 간극 속에서 올해 초 가상자산 시장을 관통하는 세 가지 이슈를 짚어봤다.
①삼성, 두나무 지분 산다?
“삼성이 두나무 지분을 인수한다는 설이 돌더라구요?”
네이버와 두나무가 ‘빅딜’을 공식 발표한 지난해 11월 27일 기자간담회 현장에선 일부 기자들 사이에서 이런 말이 오갔다. 당시에는 확인되지 않은 소문에 그쳤지만 약 50일 뒤 삼성그룹이 금융 계열사를 통해 두나무 지분 인수를 검토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오며 시장의 관심이 쏠렸다.
삼성 금융계열사들은 즉각 두나무 구주 매입설을 부인했지만 주가는 민감하게 반응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삼성생명 주가는 지난 1월 16일 장중 9.74% 급등한 17만6900원을 기록하며 52주 신고가를 경신했다.
현재는 분위기가 다시 잠잠해졌지만 시장에선 삼성 금융계열사들이 카카오인베스트먼트가 보유한 두나무 지분을 사들일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 카카오인베는 두나무 창업 초기 투자자로 현재 지분 10.59%를 보유하고 있다. 이 중 8%가량을 정리하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인수가는 네이버파이낸셜과 주식교환을 추진 중인 두나무의 주식매수청구가 단가(43만9252원)와 비슷하거나 소폭 높은 가격대에서 형성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이보다 낮은 가격에서는 기존 주주들이 굳이 별도의 거래에 나설 유인이 크지 않다는 이유다. 시장의 전망대로 흘러간다면 거래 규모는 1조원이 넘을 것으로 보인다.
업계에서는 삼성생명과 삼성증권 등이 유력한 인수 주체로 거론된다. 이들이 두나무 지분을 확보할 경우 가상자산 유통 채널에 대한 접점을 넓히는 동시에 네이버와의 협업을 확장할 여지가 생긴다는 관측이 나온다. 나아가 이를 발판으로 스테이블코인 사업 등 디지털자산 영역으로 보폭을 넓힐 가능성도 제기된다. 삼성전자가 이미 미국 가상자산 거래소 코인베이스와 협업해 삼성페이에 가상자산 관련 서비스를 연동하고 있다는 점도 이런 해석에 힘을 싣는다.
카카오인베 입장에서는 이번 거래로 장기간 묶여 있던 투자금을 회수해 새로운 투자 여력을 확보할 수 있다. 카카오인베를 비롯해 우리기술투자, 한화투자증권 등 두나무의 주요 재무적 투자자들 역시 구주 일부 매각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미래에셋이 국내 4위 가상자산 거래소 코빗 인수를 검토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며 시장이 술렁이고 있다. 미래에셋의 비금융 계열사인 미래에셋컨설팅이 코빗 최대주주인 넥슨 지주사 NXC(지분 60.5%)와 2대 주주 SK플래닛(31.5%) 보유한 지분 전량을 인수하는 방안을 놓고 협의를 진행 중이다. 거래 금액은 1000억~1400억원 수준으로 추산된다.
인수 주체로 거론되는 미래에셋컨설팅은 골프장과 호텔 운영을 주력으로 하는 비금융사다. 박현주 회장과 특수관계인이 지분 대부분을 보유하고 있다. 미래에셋이 금융계열사가 아닌 미래에셋컨설팅을 인수 전면에 내세운 배경에는 ‘금융·가상자산 분리(금가분리)’ 원칙이 있다. 2017년 이후 은행·증권사 등 금융회사가 디지털자산을 직접 보유하거나 가상자산 거래소 지분을 취득하는 데 제약이 있어 비금융사를 통한 우회 구조를 택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다만 미래에셋컨설팅이 그룹 지배구조의 정점에 위치해 있다는 점에서 이를 금융회사로 봐야 한다는 시각도 적지 않다. 인수 논의가 본격화할 경우 거래 성사 여부뿐 아니라 감독당국의 해석과 판단이 최대 관문이 될 전망이다.
일각에서는 미래에셋의 인수가 현실화할 경우 이를 ‘당장의 판을 뒤집는 승부수’라기보다 제도화 이후를 겨냥한 교두보 확보로 보는 해석이 나온다. 거래량이나 점유율 경쟁에서 앞선 거래소를 사들이기보다는 규제 환경이 정비된 이후를 대비해 비교적 부담이 적은 인프라를 선점했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숫자만 놓고 보면 코빗의 위상은 미미하다. 국내 원화 거래소 시장에서 점유율은 1%에도 못 미친다. 거래량 역시 업비트·빗썸보다 한참 떨어진다. 단기 실적이나 시장 재편을 기대하기엔 한계가 분명하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하지만 코빗은 대기업 주주 중심의 단순한 지배구조를 갖추고 있고 원화 거래소 운영 경험과 규제 대응 이력을 축적해 왔다. 자산운용과 글로벌 금융 네트워크에 강점을 지닌 미래에셋이 코빗을 품을 경우 기존 거래소와는 다른 결의 전략을 시도할 여지는 남아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③논란은 많아지는데 제도화는 아직
더불어민주당 디지털자산 태스크포스(TF)는 최근 비공개 회의를 열고 디지털자산기본법(가상자산 2단계 법안) 통합안을 논의했다. 당초 정부가 관련 법안을 제출하기로 했지만 일정이 계속 미뤄지면서 민주당은 더 이상 정부안을 기다리지 않고 자체적으로 법안을 발의하기로 방향을 정했다.
가상자산 시장의 거래·발행·유통 구조 전반에 대한 규율 틀을 마련하겠다는 취지다. 다만 쟁점이 복잡하고 논의가 길어질 경우를 대비해 스테이블코인만을 별도로 분리해 우선 입법하는 방안도 함께 검토하고 있다.
스테이블코인 제도화를 둘러싸고 금융위원회와 한국은행은 발행 주체를 놓고 아직 협의안을 도출하지 못하고 있다. 한국은행은 은행이 과반(51%) 이상의 지분을 보유한 컨소시엄 형태를 중심으로 제도화를 추진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발행 주체를 은행 중심으로 제한해 통화 안정성과 금융시스템 리스크를 최소화해야 한다는 논리다.
금융위는 도입 초기에는 은행 중심 컨소시엄이 필요하다는 데 공감하면서도 장기적으로는 산업 혁신을 고려해 핀테크 기업의 참여를 허용하는 방향으로 지분 구조를 유연하게 설계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을 내비치고 있다. 핀테크 업계는 은행 중심 설계가 혁신과 경쟁을 제약할 수 있다며 민간·비은행 사업자의 참여 확대를 요구하고 있다.
앞서 금융위는 가상자산 거래소 대주주 1인이 보유할 수 있는 지분을 일정 수준으로 제한하는 방안을 검토해왔다. 거래소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단순한 민간 플랫폼을 넘어 공공금융 인프라 성격을 띠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구체적으로는 주식시장의 대체거래소(ATS)에 적용되는 기준을 준용해 대주주 지분을 15~20% 수준으로 제한하는 방안이 거론됐다.
금융위는 “일부 거래소의 경우 창업자나 소수 주주가 운영 전반에 과도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돼 왔다”며 “수수료 등에서 발생하는 막대한 수익이 특정 개인에게 집중되는 구조에 대한 문제의식도 있다”고 설명했다.
업계와 정치권 안팎에서는 파장이 컸다. 지분 제한이 현실화할 경우 주요 가상자산 거래소들의 지배구조가 근본적으로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대주주가 일정 비율 이상의 지분을 보유한 거래소들은 지분 매각이나 지배구조 개편을 검토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대표적으로 업비트를 운영하는 두나무는 창업자인 송치형 회장이 상당한 지분(약 25%)을 보유하고 있어 규제의 직격탄을 맞을 수 있다. 대주주 지분을 15%로 낮춰야 할 경우 송 회장이 보유한 주식 중 10%가량을 처분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는 것. 두나무는 비상장사지만 시장에서 형성된 주식 가격을 기준으로 보면 기업가치가 수조 원대로 평가돼 조정 대상 지분 규모 역시 상당할 수 있다는 관측이 뒤따랐다.
다른 주요 거래소들 역시 대주주 지분이 높게 형성돼 있다. 빗썸은 빗썸홀딩스가 73.56%를, 코인원은 창업자인 차명훈 대표가 개인회사 지분을 포함해 53.44%를, 코빗은 NXC가 60.5%를, 고팍스는 해외 거래소인 바이낸스가 67.45%를 보유하고 있다.
네이버파이낸셜과 두나무 간 주식 교환 구조나 미래에셋의 코빗 인수에도 브레이크가 걸릴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네이버는 금융계열사 네이버파이낸셜이 두나무 지분을 100% 가지는 구조로 대주주 지분 제한에 걸린다. 미래에셋도 마찬가지다.
향후 당론을 확정하면 금융당국과의 당정 협의를 통해 이견을 조율하고 이후 국회 정무위원회 법안소위에서 여야 협상을 거쳐 입법을 추진하게 된다. 정무위원장이 국민의힘 소속인 만큼 법안 심사 과정에서 추가 조정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김태림 기자 ta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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