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기 미래에셋자산운용 ETF 부문 대표 인터뷰
[커버스토리 : 김남기 미래에셋자산운용 ETF 부문 대표 인터뷰]
미래에셋자산운용 ETF 운용 부문을 이끄는 김남기 대표는 인터뷰 시작부터 날카로운 지표를 던졌다. 2025년 ‘에브리싱 랠리’가 몰고 온 장밋빛 환상 이면에 가려진 개인투자자들의 성적표다.
유동성이 폭발하고 자산 가격이 치솟는 인플레이션 시대, 투자는 이제 선택이 아닌 ‘생존’의 문제가 됐지만 역설적으로 김 대표는 지금이 ‘투자 과잉의 시대’라고 진단했다. 그는 투자가 생존인 시대일수록 오히려 전략을 단순화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차트를 쫓고 정보에 매몰되는 과잉 투자의 늪에서 벗어나 ETF란 시스템을 통해 투자를 ‘일상’으로 만드는 일이다. ‘K-리레이팅’의 파도를 준비하라김 대표는 “일반 투자자가 시간과 노력을 쏟는다고 해서 성과가 선형적으로 오르지 않는다”며 오히려 샀다 팔았다를 반복하며 성과를 갉아먹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차트를 분석하고 기업의 이슈를 쫓느라 너무 많은 에너지와 시간을 소모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노력이 반드시 수익으로 연결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그는 “ETF가 21세기 가장 혁신적인 상품인 이유는 워런 버핏 같은 천재가 아니어도 누구나 주식투자에 지속적으로 성공할 수 있는 길을 제시했기 때문”이라며 “전략을 단순하게 설정해 놓고 남는 시간에 본인의 인생과 커리어에 투자하는 것이 투자가 생존인 시대의 현명한 전략”이라고 강조했다.
지난 20여 년간 시장의 질적·양적 팽창을 최전선에서 이끈 김 대표의 2026 투자전략은 대한민국 증시의 ‘뉴 레이팅(New-Rating)’이다. 2020년 ‘TIGER 미국S&P500’을 출시하며 한국인들에게 미국 주식 장기 투자의 길을 열어주었던 그가 ‘한국 우량주’를 주목하라는 상징적인 메시지를 던진 것이다.
“삼성전자만큼 돈을 버는 해외 기업들이 어떤 밸류에이션을 받는지 보십시오. 우리 우량주들도 이제 그 격차를 줄이며 재평가받는 상황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그간 한국 증시는 ‘국장’이라는 비하 섞인 별칭으로 불리며 저평가받았다. 김 대표 역시 과거엔 연금 계좌에서 미국 S&P500 투자를 최우선으로 권했을 정도다. 하지만 상황이 180도 달라졌다. 김 대표는 “이제 우리나라 주식도 S&P500처럼 우량주 중심으로 모아가면 좋은 시대가 됐다”며 “2026년은 한국 주식도 적립식으로 사 모으는 문화가 시작되는 원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투자자들에게 전략을 단순화할 것을 거듭 당부했다. 종목 차별화가 심화하는 시대일수록 개인이 2000개가 넘는 종목 중 9%의 승자를 골라내기란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대신 그는 ‘TIGER 코리아TOP10’처럼 한국의 상위 10개 종목을 담거나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비중이 높은 ‘반도체 TOP10’ 같은 상품을 통해 시스템적으로 우량주 리레이팅에 올라타라고 조언했다.
김 대표의 개인 계좌 역시 이러한 변화를 적극 반영했다. 작년부터 국내 주식을 담기 시작한 그는 지난 연말부터 포트폴리오의 성격을 금융주 중심의 배당 투자에서 국내 대표 지수와 반도체, 휴머노이드 로봇 관련 ETF 등으로 교체했다. 실제로 그는 “최근 상장한 휴머노이드 로봇 등도 가지고 있는데 수익률이 50%가 넘었다”며 리레이팅의 주인공이 될 우량주에 집중한 결과를 몸소 증명했다.
김 대표는 “현재 정부가 추진하는 주주환원 정책이 우량주들의 주가 하단을 지지하는 강력한 버팀목 역할을 하고 있다”며 “시장이 약할 때도 쉽게 빠지지 않는 구조가 만들어진 것”이라고 덧붙였다. 장기적 우상향 외 예측은 최소화
그는 “우리가 예측할 것은 미국이 망하지 않을 것이며 자본주의가 계속 성장할 것이라는 거시적 믿음 하나면 충분하다”며 나머지는 시스템에 맡길 것을 권했다. 화폐가 계속 발행되는 경제 구조 속에서 주식 가격은 장기적으로 우상향할 수밖에 없기에 이 정도만 예측하고 마음 편하게 모으기에 나서라는 주장이다.
국가 간의 우열을 가리는 것조차 피로함을 느끼는 투자자들을 위해서는 ‘TIGER 토탈월드스탁액티브’를 예로 들었다. 혁신하는 국가는 담고 도태되는 국가는 알아서 빠지는 ‘리밸런싱’의 마법이야말로 타이거 ETF의 투자 철학을 보여주는 상징이라는 설명이다.
금융위기 우려에 대해서도 그는 솔직한 견해를 밝혔다. 과거 금융위기처럼 자산이 반토막 나는 위기는 언제든 올 수 있지만 리먼 사태와 코로나19를 거치며 위기 때마다 무작위로 돈을 풀어 문제를 해결하는 실험이 성공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 대표는 “위기가 와도 유동성을 풀어 해결하는 공식이 일상이 됐다”며 “자산 투자는 생존의 열쇠”라고 말했다.
세대별 투자도 달라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근 김 대표가 주력하는 ‘커버드콜 2.0’ 월 분배형 상품은 은퇴 세대를 향한 그의 깊은 고민이 담긴 결과물이다. 그는 이를 평생 모은 연금이 줄어드는 것이 두려워 정작 돈을 꺼내 쓰지 못하는 은퇴자들을 위한 “마지막 잎새 증후군을 치유하기 위한 도구”라고 설명했다. 원금을 최대한 보존하면서도 배당과 옵션 프리미엄을 통해 질서 있게 자산을 인출할 수 있는 솔루션을 제공하겠다는 취지다.
다만 최근의 과도한 분배율 경쟁에 대해서는 “시장 성장률보다 높은 분배금은 결국 원금을 갉아먹는 눈속임일 수 있다”며 “투자 수익은 탐욕과 공포를 견뎌낸 고통의 대가”라는 점을 잊지 말라고 덧붙였다.
반면 자산을 모아가는 단계인 2030 투자자들에게는 전혀 다른 조언을 건넸다. 그는 “커버드콜 상품은 원지수보다 수익률이 낮기 때문에 젊은 투자자들이 자산을 모을 때 활용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원지수 자체의 성장에 집중해 자산을 불려나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단순하고도 강력한 포트폴리오도 제시했다. 김 대표는 여전히 미국 시장에 대한 익스포저를 코어(Core)로 가져가되 시대의 흐름인 AI와 국내 시장의 재평가를 결합한 전략을 제시했다.
그는 “세제 혜택이 있는 연금 계좌에서 S&P500을 중심에 두고 AI 혁명의 정점인 필라델피아반도체, 그리고 국내 리레이팅의 주인공인 ‘코리아TOP10’이나 ‘반도체TOP10’ 등을 병행하라”고 조언했다. 여기에 위성 전략으로 중국 시장에 투자하는 ‘중국 테크TOP10’과 ‘차이나 반도체’까지 곁들이면 미국을 중심으로 AI 반도체, 대형주, 그리고 한국과 중국의 우량주를 두루 담는 안정적인 포트폴리오가 완성된다는 설명이다.
S&P500 열풍의 주역 김남기, 이제 ‘K-리레이팅’에 승부수
지금이야 성공 신화를 논하지만 김 대표의 시작은 지독히도 운이 없었다. 삼성자산운용에서 2007년 회계와 채권이라는 탄탄한 커리어를 뒤로하고 그가 선택한 것은 당시 투자자들에게 이름조차 생소했던 ETF였다. “전망이 좋을 것”이라는 선배의 조언 하나에 몸을 던졌지만 시장은 냉담했다. 삼성자산운용 KODEX ETF의 순자산이 1조원 수준에 불과하던 때였다.
1년 반 동안 아무런 반응이 없는 사이 2008년 금융위기 속에서 수억대 성과급을 챙기는 채권 시장 동료들을 보며 그는 소위 ‘듣보잡’ 취급받던 ETF를 붙들고 일생일대의 기로에 서야 했다. “돌아갈 것인가, 계속할 것인가.”
고민하던 그는 자신과 마지막 약속을 했다. “딱 1년만 더 해보자. 대신 가장 늦게까지 사무실 불을 끄고 나가는 사람이 되자.” 이 결심은 곧 반전으로 이어졌다. 2009년 아시아 최초 ‘인버스 ETF’ 상장팀의 일원으로 시장의 폭발적인 성장을 목도하며 그는 ETF 매니저로서 확고한 신념을 얻었다. 그를 시장에 남게 한 첫 번째 결정적 장면이다.
김 대표의 두 번째 승부처는 2020년. 미래에셋으로 자리를 옮긴 그는 한국 투자자들에게 ETF가 단기 ‘매매 도구’가 아닌 ‘장기 투자 자산’임을 일깨웠다. 코스피의 박스권 행보에 지친 이들에게 세계에서 가장 검증된 우상향 자산인 미국의 S&P500을 안방으로 가져온 것이다. 코로나19 유동성 파티 속에서 레버리지 광풍이 불 때 그는 “일만 잘해서는 가난해지는 시대, 투자는 이제 생존”이라는 메시지를 던지며 연금 계좌를 통한 해외 우량주 장기 투자의 시대를 열었다. 한국 ETF 시장이 질적 성숙으로 나아간 두 번째 결정적 장면이다.
이제 그는 세 번째 장면을 꿈꾼다. 이번 서사의 새 주인공은 바로 ‘한국 증시’다. 그는 “2020년에 미국 장기 투자 문화가 정착된 것처럼 2026년에는 국내 시장에서도 리레이팅되는 대형 우량주에 투자하는 문화가 정착될 것”이라고 예고했다. 미국 주식 장기 투자의 길을 닦았던 그가 이제는 한국 우량주를 통해 투자자들의 평안한 노후를 보장하겠다는 새로운 승부수를 던지고 있다.
정채희 기자 poof34@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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