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건스탠리, 2027년 양사 합산 이익 542조 전망
빅테크, 2026년 데이터센터 144조원 투입
전문가, 2027년 증설로 인한 '조정' 주의
고대역폭메모리(HBM) 등 차세대 반도체 시장에 제때 대응하지 못하고 경쟁력을 잃어 주가가 5만원대까지 추락했기 때문이다. 이재용 회장은 임원들에게 “경쟁력을 회복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강조했다.
1년 뒤 주가는 200% 넘게 뛰었고 지난 2월 4일 삼성전자 시가총액은 한국 기업 최초로 1000조원을 넘어섰다. HBM 선두주자인 SK하이닉스는 지난해 삼성전자를 뛰어넘는 영업이익을 냈다. 1년 동안 주가는 330% 급등했고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질주하자 코스피는 5000의 문턱을 넘어섰다.
그동안 ‘메모리반도체 겨울’을 부르짖던 외국계 투자은행(IB)도 태세를 전환했다. 모건스탠리는 최근 2027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합산 영업이익이 542조원에 달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지난해(약 91조원)보다 6배 가까이 급증한다는 분석이다. 올해는 두 기업의 합산 영업이익이 300조원을 넘길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메모리 반도체가 AI 시대를 맞아 ‘슈퍼을’로 거듭났다. AI 시대가 도래한 이후 처음으로 ‘공급자 우위’ 환경이 갖춰졌기 때문이다. 지난해 초까지만 해도 엔비디아 젠슨 황 CEO의 한마디에 일희일비하는 한국 기업의 주가를 보며 투자자들은 메모리 기업이 AI 시대 하청업체로 전락한 것 아니냐는 우려를 내놨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AI 인프라 확대를 위해 빅테크 투자가 늘고 AI칩 수요와 범용 반도체 수요까지 폭증하면서 가격 결정권이 메모리 공급자에게 주어졌다.
이는 생산을 갑작스럽게 늘릴 수 없는 HBM 특성 때문이다. HBM은 범용 D램과 달리 고객사 요구에 맞춰 생산하는 주문형 반도체다. ‘선 주문, 후 생산’ 방식인 만큼 메모리 업체들이 수요를 초과하는 비효율적인 투자를 감수할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1년 내내 이어진 공급 부족 현상으로 인해 현재 세계 반도체 시장은 공급자 우위 시장이 형성됐다.
AI 메모리 수요 폭증으로 범용 DRAM 라인이 HBM라인으로 전환되면서 일반 제품의 가격까지 동반 폭등했다. HBM 생산 비중이 높아질수록 범용 D램과 낸드플래시 생산 여력이 줄어드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1분기 D램 계약 가격을 60~70%, 낸드플래시는 80~100%까지 올린 것으로 알려졌다.
HBM을 개발한 주요 메모리 기업들은 앞으로 공급부족 사태가 2027년까지 이어질 것이란 예측을 잇따라 내놓고 있다. 박준덕 SK하이닉스 부사장은 “최근 장기공급계약(LTA )은 단순 구매 의향이 아닌 상호 간 강한 약속이 반영되는 추세”라며 공급자 우위 시장을 시사했다.
김재준 삼성전자 부사장은 “올해 HBM 생산 가능 물량이 전량 매진됐으며 고객사들이 2027년 이후 물량까지 조기 확정을 요청하고 있다”고 전했다.
마이크로소프트(MS), 아마존, 알파벳 등 주요 빅테크 기업은 2026년에만 1000억 달러(144조원) 규모의 투자를 단행할 것으로 예상된다. 메모리 칩 시장 공급대란에 빅테크들도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젠슨 황 엔비디아 CEO는 최근 “올해 메모리 반도체 수요가 공급을 넘어선 탓에 공급망 확보가 매우 어려운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 역시 “반도체 확보에 실패하면 ‘칩 벽(chip wall)’에 부딪힐 것”이라며 “물량 확보가 회사의 생존을 결정지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2009년 시작한 HBM 개발
한국 반도체 산업의 역사는 ‘불가능에 대한 도전’ 그 자체였다. 1974년 삼성이 파산 위기의 한국반도체를 인수했을 때만 해도 세계 시장의 반응은 냉담했다. 일본 미쓰비시 연구소가 ‘한국이 반도체 사업에 성공할 수 없는 5가지 이유’라는 보고서를 내며 비웃었던 일화는 유명하다. 당시 한국은 미국의 설계를 가져와 단순 조립하는 반도체 변방국에 불과했다.
1980년대는 일본의 시대였다. 좋은 장비와 연구개발(R&D) 경쟁력, 가격경쟁력까지 갖춘 일본은 순식간에 D램 시장을 장악했다. 1990년대 초반까지도 일본 반도체는 아무도 넘볼 수 없을 것 같았다. 일본전기(NEC)·도시바·히타치·후지쓰·미쓰비시·마쓰시타 등 6개 기업은 나란히 세계 10대 반도체 기업에 이름을 올리고 일본 반도체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일본 기업인들의 과감한 투자와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 속에 일본 반도체 산업이 미국을 장악한 것은 1980년대 초였다. 그러자 레이건 행정부가 일본을 상대로 압박을 시작했다.
1985년 로널드 레이건 당시 미국 대통령은 상무부에 일본의 덤핑 조사를 명령했다. 일본 경제를 잃어 버린 30년에 빠지게 한 ‘플라자 합의’도 이 시기에 나왔다.
엔화가치가 높아지자 일본의 수출 경쟁력은 낮아졌다. 레이건 전 대통령은 더 나아가 일본 반도체 기업에 수차례 보복관세를 발표하며 통상 압박을 가했다. 그 결과 미국은 1990년대 들어서며 반도체 시장에서 영향력을 회복했다. 하지만 일본 기업들은 미국의 압박으로 타격을 받고 몰락의 길에 접어든다.
삼성은 칼을 갈고 있었다. 미국과 일본 등에 비해 수십 년 늦게 시작했지만 더 싸고, 더 빨리 만드는 전략으로 한발 한발 추격했다. 그리고 메모리 반도체에 운명을 건 승부수는 1992년 세계 최초 64M D램 개발로 이어지며 일본을 추월하는 기적을 낳았다. 이후 256M D램(1994년), 1GB D램(1996년) 등을 꾸준히 발표하며 메모리 반도체의 왕좌에 올랐다.
현대전자와 LG반도체가 만나 탄생한 하이닉스반도체는 2012년 SK그룹 인수된 이후 퀀텀점프 했다. 2009년 초 하이닉스반도체는 전기요금을 못 낼 정도로 자금 사정이 악화했다. 채권단에 손을 벌리는 일은 다반사였다.
재무구조가 부실했던 하이닉스 인수는 최태원 SK 회장이 끝까지 밀어붙인 딜이었다. 최 회장은 엔지니어 중심의 기업문화는 손대지 않았다. 연구개발과 제조를 총괄하는 SK하이닉스 최고경영자 자리는 모두 과거 현대전자 출신 엔지니어들이 담당하도록 했다.
SK에 인수된 뒤 1년 후인 2013년 세계 최초의 HBM이 세상에 공개됐다.당시 반응은 회의적이었다. 고난도의 패키징 공정을 거쳐야 하고 수율도 낮은 데다 D램보다 가격이 비싸 수요처가 마땅치 않았다. SK하이닉스는 절박했기 때문에 뭐라도 해야 했다.
이 같은 이유로 다른 반도체 기업은 외면했지만 SK하이닉스는 꾸준한 투자를 이어왔다. 시장 성장이 예상보다 더뎌 비관론까지 제기됐지만 SK하이닉스는 2019년 또다시 3세대 HBM2E 를 최초로 개발하는 등 투자를 멈추지 않았다. 2022년 6월 세계 최초로 4세대 HBM(HBM3)을 양산해 엔비디아에 납품하는 데 성공했고 그해 말 챗GPT의 등장으로 생성형 AI가 부상하면서 HBM이 본격적으로 세상에 알려졌다.
두 거인이 세계 시장을 호령할 수 있었던 바탕에는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간 국내 ‘소부장(소재·부품·장비)’ 생태계가 있었다. 1980년대 삼성전자가 반도체 사업의 기치를 올리자 그 주변에는 외산 장비의 부품을 수리하거나 소모품을 세정해 공급하던 ‘유지보수형’ 중소기업들이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IMF 이후에는 정부와 대기업이 국산화 과제를 쏟아내자 테스나 유진테크처럼 현장 노하우를 가진 대기업 출신 엔지니어들이 창업에 나섰다. 여기에 엔지니어들의 기술적 뿌리에서 탄생한 원익IPS(전신 아토) 같은 기업들이 핵심 공정 장비를 하나둘씩 국산화해 내면서 오늘날 한국 반도체 생태계의 허리 역할을 했다. “취하지는 말고 즐겨라”
실적보다 성장세가 더 중요해진 증시
하지만 숫자가 주는 환호에만 취해 있기보다는 냉정하게 다음을 준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우선 주식시장 관점에서는 실적보다 성장세(모멘텀)가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전병서 중국경제연구소장은 “2026년 상반기의 기록적인 황금기를 뒤로하고 하반기부터 몰려올 ‘피크아웃(Peak-out)’의 파고를 어떻게 넘느냐가 진정한 시험대가 될 것”이라며 “메모리 기업들의 설비투자 증설 물량이 2027년 이후 시장에 쏟아질 경우 이익 증가세가 둔화되고 시장은 이를 악재로 받아들여 주가가 조정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산업적 측면에서도 현재의 호실적을 ‘초격차 재확립'’로 보기엔 무리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AI 반도체 시장의 변화 속도가 워낙 빨라 한 번의 기술 변곡점을 놓치면 한순간에 흔들릴 수 있다는 위기감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최근 삼성 임원들에게 “숫자가 좀 나아졌다고 자만할 때가 아니다”며 “지금이 경쟁력을 회복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최근 삼성전자의 실적이 완벽하게 회복했지만 HBM 등 초격차 기술에서 겪었던 시행착오를 반복하지 말고 근본적인 기술 경쟁력 확보에 사활을 걸어야 한다는 메시지다.
전 소장은 “미국 소프트웨어 기업의 부진은 곧 투자 감소로 이어지고 반도체 산업, 특히 AI 반도체(GPU, HBM 등) 업계에 ‘수요 둔화’라는 위험을 가지고 올 수 있다”며 “화려한 AI 스토리에 취하기 보다는 냉정하게 시장을 바라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영은 기자 kye0218@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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