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초 작고한 정창선 중흥그룹 회장(1942년생)도 그런 경우다. 19살에 공사판에 발을 디뎠다. 미장견습공이었다. 함바집에서 인부들과 부대끼면서 일을 배웠다. 1983년 금남주택건설을 세웠다. 이후 중흥건설과 중흥종합건설 등을 설립하면서 30개 계열사를 지닌 건설그룹으로 성장했다.
여기까지는 남들이 갔던 길이었다. 우성, 한보, 미도, 청구 등 한때 업계를 주름잡았던 건설사들의 창업스토리와 다르지 않다. 달랐던 점은 현금흐름을 중시한 내실경영이었다. 남들이 빚을 내 아파트를 짓고, 다른 업종으로 무한확장을 꾀할 때도 한눈팔지 않았다. 36개월 자금계획표를 먼저 짠 뒤 3개월 단위로 현금흐름을 점검했다. 업무용이 아닌 자산은 사지 않고, 보증은 서지 않으며, 적자가 예상되는 프로젝트는 수주하지 않는다는 ‘3불(不) 원칙’도 준수했다.
현금흐름 우선이라는 경영방식, 다른 건설사들이 가지 않은 길을 선택한 결과는 대단했다. 외환위기와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뜬히 이겨냈다. 2021년엔 대우건설을 인수, 새우가 고래를 삼키는 기적을 이뤄냈다. 재계서열도 20위권으로 껑충 뛰었다.
남들이 갔던 길을 가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들이 그려놓은 지도를 보고 지름길을 찾을 수 있어서다. 반면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가는 것은 힘들다. 뭐가 있을지 도통 알 수 없어서다. 되돌아올 수도 없는 만큼 상응한 대가를 치를 각오도 해야 한다. 비단 창업자만이 아니다. 인류의 역사도, 범부의 일상생활도 선택의 연속이었다.
우리는 지금 두 개의 가보지 않은 길에 들어서 있다. 하나는 AI(인공지능)고 다른 하나는 코스피 5000 시대다. 일반인이야 AI를 향유하면 그만이다. 기업은 다르다. AI를 얼마나 빨리 활용하느냐에 따라 운명이 달라진다. 대부분 기업들이 AX(AI전환)를 입에 달고 사는 이유다.
아직까지 결과는 썩 좋지 않다. 맥킨지 보고서에 따르면 조사 대상 기업 대부분이 AX에 투자했지만 AI성숙도에 도달한 기업은 1%에 불과하다. 막대한 돈을 투입하고도 중간에 포기한 기업도 부지기수다. 최근 ‘AI전환 절대공식’이란 책을 펴낸 AI전략 전문가 김건우 씨는 “AX는 결승선이 없는 여정”이라며 “자칫하면 엄청난 예산만 낭비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일반 기업들의 AX에 아직은 정답이 없다는 의미다.
코스피 5000 시대도 처음 가보는 길이다. 지금으로선 기대만발이다. 패러다임이 바뀐 만큼 과거 잣대로 주가 수준이나 기업가치를 재단해선 곤란하다는 낙관적 전망이 대세다. 닷컴버블과 변동성 확대 등을 근거로 한 경계론은 거의 들리지 않는다.
많은 창업자들이 그랬듯이 기업과 투자자들은 AX와 코스피 5000 시대라는 가지 않은 길을 두고 선택의 기로에 놓여 있다. 선구자들의 경험과 결과를 지켜본 뒤 합류를 결정할 것이냐, 아니면 리스크를 감수한 채 흐름에 올라탈 것이냐를 두고 말이다. 로버트 프로스트는 110년 전 ‘가지 않은 길(The Road Not Taken)’에서 ‘선택에 따라 모든 것이 달라졌노라고 먼 훗날 한숨을 쉬며 이야기할 것’이라고 노래했다.
하영춘 한경비즈니스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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