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면 봄이 갖는 이 불협화음은 뜻밖의 결과로 이어지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꽃샘추위는 식물의 뿌리를 튼튼하게 해주고, 추위를 견딘 꽃의 향과 색은 더 짙어집니다. 인간도 마찬가지입니다. 초봄 같은 혼란이 마무리되면 새로운 질서가 형성돼 있음을 확인합니다. 일상에 침전된 자신을 깨닫는 순간, 또다시 탈출을 향한 몸부림을 치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한발 나아갑니다.
이런 봄의 질감은 마치 비주류의 결, 그것과 비슷합니다. 주류의 세상은 따듯하고 안정적이지만 비주류의 세상은 서늘하고 불안정합니다. 주류의 세상은 평평하지만 비주류의 세상은 울퉁불퉁합니다. 화사한 승자의 계절인 것 같지만 봄은 저항하고 의심받고 흔들리면서도 판을 뒤집는 비주류의 속성을 그대로 닮아 있습니다. 불안정성은 그렇게 비주류에게 변화의 에너지를 공급합니다.
우리는 많은 분야에서 판을 뒤집은 비주류의 스토리를 만날 수 있습니다. 미술사는 이를 보여주는 대표적 분야입니다. 19세기 프랑스 인상주의는 아카데미라는 주류 권력이 주도하는 판을 뒤집었습니다. 모네, 르누아르 같은 청년들이지요. 주류가 ‘무엇을 그릴까’에 집중할 때 그들은 ‘어떻게 보이는가’에 집중했습니다. 작업실 밖으로 뛰쳐나가 현대 미술의 문을 열었습니다.
절대주의 창시자로 불리는 말레비치는 검은 사각형과 흰색 사각형으로 예술을 대상이라는 구속에서 해방시켰습니다. 정제된 미니멀리즘이 주류를 형성하고 있던 1970년대 장미셸 바스키아는 거리의 벽을 그라피티로 물들였습니다. 원시적 생명력을 갖고 있는 낙서가 예술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줬습니다.
경영의 역사 또한 비주류 반란의 역사라고 할 만합니다. 지금 반도체 시장에서 이를 생생히 목격하고 있습니다. 10년 전 게임용 그래픽카드나 만드는 비주류였던 엔비디아는 반도체업계를 넘어 AI 생태계의 황제가 됐습니다. 인텔의 시대는 한순간에 막을 내렸습니다.
글로벌 제약업계 시가총액 1위에 등극한 일라이릴리는 150년 된 기업입니다. 하지만 2010년대 초 그들은 비주류의 길을 갔습니다. 당시 일라이릴리는 주력 제품들의 특허가 만료돼 매출이 급감하는 위기를 맞았습니다. 제약업계의 유행은 인수합병(M&A)을 통한 덩치 키우기였습니다. 그러나 일라이릴리는 자체 연구개발(R&D)에 집중했습니다. 실패를 장려하고 장기프로젝트를 보호했습니다. 더 중요한 포인트는 시각의 전환이었습니다. 그들은 “비만은 의지력이 아닌 생물학의 영역”으로 사고를 바꿨습니다. 비만을 만성질환으로 정의하는 순간 연구의 방향도 달라졌습니다. 기존 당뇨 치료제 성분을 발전시켜 식욕을 억제하고 포만감을 주는 호르몬(GLP-1)을 자극하는 신약을 개발했습니다. 20년 넘게 공들인 대사질환 연구가 결실을 맺으며 일라이릴리는 화이자, 존슨앤드존슨 등 기존 빅파마들을 제치고 세계 1위 제약사에 올랐습니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비주류를 피하려 합니다. ‘안전과 생존’이라는 본능에서는 벗어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비주류의 성공은 카타르시스를 줍니다. 유쾌한 반란을 응원하는 것 또한 본능의 일부가 아닐까 합니다.
한경비즈니스 편집장을 맡은 지 4년이 흘렀습니다. 그동안 한경비즈니스는 끊임없이 비주류처럼 생각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전통 경제주간지가 기피했던 다양한 주제들을 다루면서 ‘영감’을 주는 미디어가 되고 싶었습니다. 물론 독자들의 기대에 못 미친 부분도 많았습니다.
기쁨과 아쉬움을 뒤로하고 4년간의 편집장 생활을 이제 마무리합니다. 마지막 칼럼의 주제를 ‘비주류’로 정한 것은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기 위함입니다. 주류의 안락함에 젖지 않고 비주류의 야성을 갖고 살아가야겠다는 결심입니다. 그래야 꿈을 꿀 수 있기 때문입니다. “꿈은 비주류의 특권이다”라는 말을 다시 깊이 새겨봅니다. 오랜 기간 부족한 글에 응원을 보내주신 독자들께 진심어린 감사 인사를 전합니다.
야성을 잃지 않으면서도 삶의 격을 세워가는 이 시대의 모든 비주류를 응원하며, 굿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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