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골프존이 코스 설계사들 저작권 침해”
[법알못 판례 읽기]
골프존이 설계업체들이 본 손해를 물어줘야 한다는 취지의 상고심 판결이 나온 만큼 파기환송심을 통해 최종 확정될 배상액 규모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업계에선 배상액과 저작권료에 상응하는 만큼의 스크린골프장 이용료 상승 여부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분위기다.
골프 코스도 저작물인가…엇갈린 하급심
대법원 1부(주심 마용주 대법관)는 오렌지엔지니어링, 송호골프디자인 등 국내 골프코스 설계회사들이 골프존을 상대로 자사 골프 코스에 대한 저작권 침해 행위를 중단하고, 이에 대한 손해를 물어내라며 낸 소송에서 골프존 승소로 판결한 원심을 지난 2월 26일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에 돌려보냈다.
미국 코스 설계회사인 골프플랜이 코스 설계 도면에 대해 같은 취지로 낸 골프존 상대 소송(주심 노태악 대법관)에서도 같은 결론이 나왔다.
원고 회사들은 골프존이 자사가 저작권을 보유한 골프 코스를 별도의 허가 없이 그대로 재현한 영상을 토대로 스크린골프 시뮬레이션 시스템을 개발해 저작권을 침해당했다며 소송을 냈다.
미국 회사가 2015년 손해배상 소송을 먼저 제기했고 2018년 국내 업체들이 같은 취지의 저작권침해금지 및 손해배상 소송을 추가로 냈다.
원고들은 골프 코스가 인간의 사상 또는 감정이 표현된 창작물(저작권법상 저작물)이라고 주장했다. 코스 설계 과정에서 설계자의 창조적 개성이 충분히 표현되고, 그 결과 홀마다 독특한 특색을 나타낸다는 점에서다.
골프존은 골프 코스 설계엔 애초에 ‘창작적 표현’이 가능하지 않다고 맞섰다. 골프장이 들어선 부지의 지형의 생김새가 코스 설계를 결정짓는 핵심 요소라는 이유였다. 또 골프 경기 규칙에 따라 티잉그라운드, 페어웨이, 러프, 벙커 등 구성 요소의 선택, 배열, 조합이 매우 제한적이라는 논리도 폈다.
1심은 원고 회사들의 손을 들어줬다. 법원은 “코스 구성 요소들의 형태, 모양, 배치 등은 자연적으로 이뤄진 게 아니라 해당 골프장을 설계한 설계자의 사상에 따라 결정된다”면서 골프 코스에 인간의 사상이 반영돼 있다고 봤다.
홀마다 페어웨이의 모양이나 길이, 폭, 꺾어진 방향과 각도, 벙커나 워터 해저드의 위치, 모양 및 크기 등이 모두 달라 다른 골프 코스와 확연히 구별되므로 창작성을 인정해야 한다는 판단이다.
법원은 골프 코스가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표현이나 누가 하더라도 같거나 비슷할 수밖에 없는 표현만을 사용한 게 아니라 코스를 창작하는 저작자 나름의 정신적 노력의 소산인 특성들이 부여된 표현을 사용해 창조적 개성을 발현한 것”이라면서 저작물로 봐야 한다고 판시했다.
그러나 2심 법원은 이 사건 핵심 쟁점인 골프 코스에 대한 저작권 인정 여부에 대해 다른 판단을 내놨다. 2심은 골프 코스가 인간의 사상 또는 감정의 표현물인 저작물에 해당한다면서도 ‘기능적 저작물’이어서 창작성을 인정할 수는 없다고 봤다.
기능적 저작물이란 예술성보다 기능이나 실용적인 사상의 표현을 주된 목적으로 하는 저작물을 뜻한다.
항소심 법원은 “코스 구성 요소들의 형태, 배치, 조합은 골프 경기 규칙과 규격, 국제적인 기준에 따른 제약, 지형, 부지의 형상, 배치되는 홀의 개수 등에 따른 제약을 고려하면서 골프 경기에서의 난이도, 재미, 전략 등과 같은 기능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것”이라며 “다른 홀들과 구별되는 차이가 있다 하더라도 그런 사정만으로는 창작성을 인정할 수 없다”고 봤다.
개별 홀의 형태도 서로 다르긴 하지만 직선 홀이나 휘어진 형태의 도그 레그(dog leg) 홀 등 몇 가지 유형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는 데 주목했다.
클럽하우스, 진입도로, 연습장 등 골프장 시설물과 개별 홀들의 배치 순서(루팅 플랜)에 대해서도 “이용객들의 편의성과 안전성, 골프장 운영의 효율성 등을 주로 고려해 배치할 수밖에 없으므로 각 코스의 기능적 요소의 일부로 봐야 한다”면서 설계자의 창작적 표현이라고 보긴 어렵다고 결론지었다.
대법 “제한적이긴 하나 창조적 개성 발휘된 저작물”
대법원은 이를 다시 뒤집고 1심과 같은 취지로 판결했다. 대법원은 “일반적으로 골프 코스는 경기 규칙에 따라 플레이 순서, 홀의 개수 등이 미리 정해져 있고 미국 골프협회(USGA)가 잔디 관리에 관한 가이드라인에서 페어웨이의 표준 폭, 벙커의 종류와 허용 범위, 추천 깊이에 관한 개략적인 범위를 제시하고 있다”면서 코스 설계 과정에서 설계자의 창작적 표현이 제한적일 수 있다는 점은 인정했다.
그러나 “설계자는 이런 제약을 고려하면서도 코스를 이루는 여러 구성 요소들을 다양하게 선택·배치·조합해 다른 코스나 개별 홀과 구별되도록 창조적 개성을 발휘해 코스를 설계할 수 있다”며 “코스 설계에 수반되는 실용적·기능적 요소에 따라 창작적 표현에 현실적 제한이 있다는 사정만으로 코스의 창작성이 일률적으로 부정된다고 볼 수는 없다”고 짚었다.
골프 코스 설계자의 ‘창작성’을 인정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대법원은 “이용객들이 티샷과 그 이후의 샷, 그린 주변에서의 어프로치, 그린에서의 퍼팅 등 골프공을 쳐야 하는 각각의 상황에 따라 나름대로 적절한 전략을 세워 코스를 공략하도록 하고 개별 홀들의 순차적인 진행 과정에서 나타나는 코스의 변화를 느끼면서 재미있게 골프를 즐길 수 있게 한다”며 “인공적인 조경이나 주변 경관과 어우러져 이용객들이 골프 코스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게 하는 등의 설계 의도에 따라 선택·배치돼 유기적인 조합을 이루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코스 각 구성 요소들의 선택·배치·조합이 단순히 남의 것을 모방한 것이거나 누가 하더라도 같거나 비슷하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닌 이상, 각 골프 코스는 창작자의 독자적인 표현을 담고 있어 기존 코스와는 구별되는 창조적 개성을 가진다고 볼 여지가 있다”고 정리했다.
[돋보기]
일부 서비스 중단한 골프존 “소송 적극 대응”
미국 회사가 2015년 최초로 소송을 제기한 후 대법원 판결이 나오기까지는 장장 11년이 걸렸다.
별개 사건에서 국내 코스 설계회사들을 대리해 8년간 소송을 이끌어 온 법무법인 대륙아주의 최종선·김정은 변호사는 “골프 코스도 창작성이 있는 저작물에 해당함을 명확히 한 최초의 대법원 판결”이라며 “이를 계기로 코스 설계자들의 창작적 노력에 대한 정당한 평가가 이뤄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골프존은 아직 구체적인 손해배상액 등이 확정되지 않은 만큼 파기환송심 대응에 충실히 임하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골프존은 “적극적인 법적 대응을 통해 소송 쟁점에 대한 판단을 다시 받겠다”고 밝혔다.
두 사건 모두에서 골프존은 법무법인 세종이 대리했다. 상고심 결론이 나온 당일부로 골프존은 전체 400여 개 코스 중 소송 대상이 된 28개 코스에 대한 서비스를 전면 중단했다.
1심 법원은 국내 설계회사들에 대해 약 28억원, 미국 회사에 대해 약 42억원의 배상액을 인정했다. 파기환송심에서 이보다 많은 액수의 배상액이 책정될지도 관심이다.
업계에선 골프존이 확정된 배상액을 소비자들에게 전가할 경우 스크린골프장 이용료 상승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골프존이 국내 스크린골프장 업계를 사실상 독점하고 있어서다.
한 업계 관계자는 “골프존의 실적 추이 등을 고려하면 이용료를 높이는 방식으로 해결하진 않을 수도 있다”고 했다.
장서우 한국경제 기자 suwu@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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