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틀러에 속은 ‘뮌헨의 교훈’이 根源 … “더 이상 유화론자로 보이지 않겠다”

미국 항공모함 제럴드 포드호에서 전투기가 출격하고 있다. 연합뉴스
미국 항공모함 제럴드 포드호에서 전투기가 출격하고 있다. 연합뉴스
미국은 고립주의 전통으로 제1차 세계대전 참전을 꺼렸다. 독일 잠수함에 의해 자국민이 희생되고 독일의 치머먼 비밀 전보 사건(미국을 공격한다면 텍사스 등을 되찾을 수 있도록 돕겠다고 멕시코에 제의)이 터지자 막판에야 참전했다. 제2차 세계대전 때도 윈스턴 처칠 영국 총리가 끈질기게 지원을 요청했음에도 진주만 공격을 당한 이후에야 본격 참전했다. 본토가 공격당하거나 당할 위험이 있고서야 참전을 한 것이다.

2차 대전 이후엔 미국의 대외 전쟁과 군사적 개입은 끝이 없다.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 사막의 폭풍작전에 이은 이라크 본토 전쟁, 아프가니스탄 전쟁, 이란 전쟁 등 전면전만이 아니다. 그리스 내전 개입, 레바논 파병, 쿠바 피그스만·그레나다·파나마 침공, 소말리아·보스니아 내전 개입, 리비아 공습, 베네수엘라 무력 개입 등이 이어졌다.

미국의 대외 전쟁의 동기를 찾아 거슬러 올라가 보면 ‘뮌헨의 교훈’에 닿는다. 1938년 ‘뮌헨 회담’에서 영국과 프랑스는 독일인이 많이 살던 체코슬로바키아의 수데텐랜드를 넘겨 달라는 히틀러의 요구를 들어줬다. 히틀러는 “이게 최후의 영토 요구”라며 이를 수용하면 더 이상 전쟁은 없다고 했다. 네빌 체임벌린 영국 총리는 믿었으나 속았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스티븐 M 길러는 ‘전쟁과 대통령’에서 ‘뮌헨의 교훈’을 통해 미국은 독재자들에 의해 국제질서가 위협을 인지하면 강력히 대응해야 한다는 점을 배웠다고 분석했다. 더 이상 체임벌린과 같이 유화론자로 보이지 않겠다는 각오가 2차 대전에 직접 참전한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존 F 케네디, 린든 존슨, 리처드 닉슨, 제럴드 포드, 조지 HW 부시(아버지) 대통령까지 이어졌다.

베트남전 승리에 대한 회의적인 분석에도 무력 투입을 멈추지 못한 것도, 그 이후 이어진 여러 전쟁도 ‘뮌헨의 교훈’이라는 ‘개념적 감옥’에 빠진 결과라는 것이다. 적을 물리치기 위해선 압도적인 힘을 사용해야 한다는 논리가 지배했다. 존슨 대통령은 “호찌민이 사이공 거리를 활보하게 내버려둔다면 체임벌린이 했던 것과 똑같은 짓을 하는 것”이라고 했다. 케네디 대통령은 소련에 의한 쿠바 미사일 사태 때 “체임벌린과 같이 절대 유화론자로 보이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봉쇄를 밀어붙였다. 패권국이 존재할 때 국제질서 안정

여기에 나치즘과 일본 제국주의에 맞서 싸운 2차 대전 승리 주역이라는 자신감이 더해졌다. ‘악의 제국’ 소련에 맞서 서방 세계 여러 나라의 맏형 노릇을 해야 한다는 기대까지 얹혀졌다. 이후 테러 국가들에 맞서 국제질서를 조정하고 통제하는 패권국가의 의무감도 스스로 떠안았다. 하나의 패권국이 존재할 때 국제질서가 안정된다는 국제정치학의 ‘패권안정론’의 바탕이다. 헨리 키신저는 “세계 한 지역에서 미국의 무력함을 보여준다면 필연적으로 다른 지역에서 우리의 신뢰를 약화시킬 것”이라고 했다.

이라크를 상대로 ‘사막의 폭풍 작전’을 주도한 아버지 부시 대통령은 “1930년대 말이나 1940년대 초 유화정책이 무력에 자리를 내주었다면 얼마나 많은 생명을 구할 수 있었을까. 얼마나 많은 유대인이 가스실을 면했을 것이며 얼마나 많은 폴란드의 애국자들이 오늘날까지 살아 있었을까. 나는 오늘의 위기를 선과 악의 대결로 본다”고 했다. “2차 대전은 탈냉전 세계를 헤쳐나가려 노력하는 새로운 세대의 대통령들도 그 기억을 주기적으로 소환해야 했다”고 길러는 지적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옹호자인 린지 그레이엄 공화당 상원의원은 동결 수준에 머문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의 이란 핵협정을 비판하며 “이란의 행동이 바뀔 것이라고 믿는다면 그는 우리 시대의 체임벌린이 되고 말 것”이라고 했다. 역시 ‘뮌헨의 교훈’이 트럼프 대통령의 대(對)이란전 배경의 그림자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란전을 비롯한 미국의 대외 개입이 오롯이 ‘뮌헨의 교훈’ 때문이라고 할 수는 없다. ‘미국은 왜 전쟁을 멈추지 못하는가’라는 책(윌리엄 D 하텅·벤 프리먼 지음)에선 그 근저에 미국의 거대한 군산복합체가 작용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전 세계 무기 시장의 43%를 장악하고 있는 미국 거대 방산업체들이 군 당국·의회와 회전문 인사를 통해 카르텔을 형성하고 막대한 국방 예산을 따내 무기를 과잉생산하고 있다는 것이다. 저자가 ‘전쟁 기계’로 표현한 이들 방산 메이저들은 끝없는 전쟁 덕분에 엄청난 수익을 낸다는 주장이다. 다만 미국의 국방비 증가가 러시아와 중국의 군비 증강에 대한 반작용 측면도 있음을 간과했다.

대외 개입의 또 다른 원인으로 대통령의 재선을 위한 업적 쌓기, 대통령 개인의 성향 차원의 분석도 있다. 리처드 오버리는 ‘전쟁충동’에서 전쟁 동기로 자원, 신념, 권력, 안보 등 네 가지 측면에서 분석했다. 국제정치는 이데올로기보다 현실주의적 힘의 논리가 지배하고 공격적 팽창은 생존을 위한 필연적이라는 현실주의 정치 이론의 대가 존 미어샤이머의 분석과 맥이 닿는다. 다만 오버리는 자유주의적 국제질서는 민족주의의 힘을 간과하고 있고 이데올로기를 기반으로 하는 개입주의가 파괴적 결과로 이어진다고 봤다. 미국은 막강한 정보력과 군사력, 든든한 경제력을 갖췄음에도 이라크전과 아프가니스탄전에서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 것도 이 때문이란 분석이다. 이란전 ‘전투 승리·전쟁 실패’ 고리 끊을까

미국은 2003년 이라크와 전쟁을 벌여 사담 후세인을 제거했지만 혼란을 매듭짓지 못한 채 2011년 철군했다. 미군 4421명이 전사했고 전쟁 비용은 3조 달러에 달했다. 테러와의 전쟁 명분으로 2001년 시작한 아프가니스탄 전쟁은 2022년 탈레반에 다시 밀려 철군했다. 미군 2448명이 전사했고 전쟁 비용은 2조 달러에 달했다. 전투는 이겼지만 전쟁에선 진 것이다.

정보력 오판도 작용한다. 아프간전의 경우 미군 철수 한 달 전까지만 해도 미국 정보 당국은 탈레반에 권력이 넘어갈 가능성이 매우 낮은 것으로 판단했다(클린턴 정부 백악관 수석보좌관을 지낸 조지 스테퍼노펄러스·리사 디키 지음 ‘백악관 상황실’). 이 때문에 철군 과정은 매우 혼란스러웠고 폭탄 테러로 미군 13명이 사망하는 일이 발생했다. 이란에 잡힌 미국인 인질 구출 작전(데저트원) 땐 수송기 착륙 지점이 텅빈 모래 사막일 것으로 분석됐다. 그러나 막상 도착해보니 이란인들로 가득 찬 여객용 버스가 그곳에 있었다. 헬기와 수송기가 충돌하는 바람에 미군 8명이 사망했고 작전은 처참한 실패로 막을 내렸다.

이런 결과를 낳는데 대해 전직 미국 고위 참모들의 자성이 잇따른다. 조 바이든 행정부 때 국무장관을 지낸 토니 블링컨은 “권력 앞에서 바른말을 하려는 사람이 없다. 그런 상황은 굉장히 위험하다”고 했다(‘백악관 상황실’). 스테퍼노펄러스는 “아첨꾼이나 집단사고에 순응하는 사람들은 대통령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고 했다.

길러는 미국 대통령들의 고뇌와 정치적 욕망, 패권을 계속 틀어쥐려는 복잡한 욕구들이 전쟁의 또 다른 원인들이라고 분석했다. 9·11 이후 퍼진 ‘반테러 대중정서’도 전쟁의 한 원인이다. 미사일과 드론 등 무인무기 시대에 군인의 위험 부담이 줄어든 것도 전쟁을 더 쉽게 하도록 하는 요인으로 꼽힌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란 전쟁 끝은 어떨까. 미국은 우라늄 농축과 미사일 프로그램 중단, 나탄즈 포르도 이스파한의 핵시설 해체, 헤즈볼라·후티·하마스 등 대리세력에 대한 자금 지원 중단 등을 이란에 요구하고 있다. 미국이 이번엔 ‘전투는 승리, 전쟁은 실패’라는 고리를 끊어낼 수 있을까. 아울러 이란 핵폐기를 위한 트럼프의 강력한 의지가 북한 핵 해법에도 투영됐으면 한다. 동결 수준에서 제재를 풀어주는 일이 되풀이되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홍영식 전 한국경제 논설위원·전 한경비즈니스 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