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의 "테크놀로지아!" 그리고 우리의 플랜B는  [EDITOR's LETTER]
“테크놀로지아(Technologia)!”

기름때와 먼지가 가득한 파키스탄의 어느 길거리 흙바닥. 슬리퍼를 신은 장인들이 망치와 정 하나로 수십 톤짜리 대형 트럭의 눌어붙은 엔진을 낱낱이 분해합니다. 정밀 측정 장비도 없는 현장에서 직접 쇠를 녹여 부품을 깎아내고, 손대중으로 수평을 맞춰 조립된 엔진에 기름을 붓자 거짓말처럼 웅장한 시동 소리가 터져 나옵니다. 온라인상에서 이처럼 낙후된 환경과 장비로 기상천외한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이들을 향해 “테크놀로지아!”라는 찬사의 밈을 던집니다.

이 투박한 독기를 국가 시스템으로 끌어올려 ‘전략 무기’의 영역으로 진화시킨 국가가 있습니다. 이란입니다. 이란의 저력은 단순한 ‘대체품 만들기’ 수준이 아닙니다. 1970년대 도입한 미국제 F-14 전투기를 40년간 독자적으로 운용해 온 것만 봐도 그렇습니다. 제재로 부품 공급이 끊기자 이란은 기체를 분해하고 부품을 역설계하며 자력 유지 체계를 키워왔습니다. 미군의 첨단 드론을 나포한 뒤 이를 바탕으로 유사 기체를 개발해낸 일도 같은 맥락입니다. 고립은 역설계와 내재화의 훈련장이 됐습니다.

그 결과 이란은 의약품, 자동차부품, 가전제품의 자체 생산 체제를 완성했습니다. 삼성, LG, 푸조 같은 글로벌 브랜드가 떠난 자리를 자체 브랜드들이 역설계 제품으로 채우며 내수 시장을 방어하고 있는 것입니다. 실제로 전쟁 속에서도 이란의 마트에는 물건들이 바닥나는 일이 없다고 하더군요.

파이낸셜타임스나 뉴욕타임스 같은 서구 언론들은 이란 경제의 가장 큰 특이점으로 우리가 아는 자본주의의 ‘효율성’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점이라고 봤습니다. 서구 모델이 최저 비용으로 최대 이익을 내는 중앙집중식 효율에 집착할 때 이란은 철저히 ‘분산과 회복력(Resilience)’에 올인했습니다. 우선 인프라 설계부터가 다릅니다. 이란은 수백 개의 소규모 발전소를 전국에 거미줄처럼 분산 배치했습니다. 대형 시설 하나가 타격받으면 국가 전체가 마비되는 효율적 구조를 버린 대신 하나가 터져도 전체 계통은 살아남는 ‘벌떼형 인프라’를 구축한 것입니다.

금융도 비슷합니다. 미국이 국제 송금망인 SWIFT에서 이란을 배제했지만 이란은 물물교환, 위안화 결제, 전통 송금망인 하왈라, 암호화폐 활용 등 여러 우회로를 조합해 버텨왔습니다. 제재가 심해질수록 거래 방식은 더 복잡해졌고, 길은 더 비정상적이 되었지만 완전히 막히지는 않았습니다. 이란은 제재를 피하는 기술을 하나의 경제 습관으로 체화한 나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른바 최근 서구 언론들이 눈여겨보는 ‘저항경제’는 바로 그 집요한 버티기의 다른 이름일 것입니다.

물론 이란 모델을 이상화할 생각은 없습니다. 제재와 고립, 비효율과 불편을 미화할 이유도 없습니다. 다만 배울 점은 분명합니다. 최악의 조건에서도 “스위치 하나 꺼진다고 나라 전체가 멈추지 않게 하자”는 발상입니다. 플랜A가 아니라 플랜B, 어쩌면 플랜C까지 준비해놓는 태도 말입니다.

이 대목에서 자연스럽게 한국을 돌아보게 됩니다. 우리 경제는 지금 잘 달리고 있습니다. 수출은 사상 최고 수준을 경신하고 있고, 반도체와 자동차는 여전히 한국 경제를 떠받치는 양대 축입니다. 3월 수출액을 보니 반도체는 처음으로 월간 300억 달러를 돌파했고 전쟁 속에서도 자동차는 꿋꿋하게 63억 달러를 수출해 2위를 지켰습니다. 보기만 해도 흐뭇한 숫자입니다. 한국 경제의 두 엔진이 힘차게 돌아간다는 뜻이니까요.

그런데 바로 그래서 더 불안합니다. 엔진이 두 개라고 안심하고 있지만 사실은 그 두 개에 너무 많은 것을 걸고 있는 것 아닐까요. 만약 글로벌 공급망이 더 크게 흔들리고, 중동 리스크가 길어지고, 에너지 가격이 뛰고, 반도체 사이클이 꺾인다면 우리는 과연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요.

그래서 궁금해집니다. 에너지, 소재, 부품, 물류, 식량, 방위산업, 바이오, 소프트웨어, 서비스 수출까지 우리의 플랜B는 얼마나 준비돼 있는가. 지금 한국 경제에 필요한 것도 바로 그 시선입니다. 잘나가는 지금의 성과에 안도하는 데 그칠 것이 아니라 그 바깥에 어떤 대체축을 세울지, 어떤 산업을 새로 키울지, 어떤 충격에도 버틸 수 있는 구조를 만들지 질문하고 고민해야 할 듯합니다.

이런 플랜B의 씨앗은 의외로 가까운 곳에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아, 요즘 저는 바이오플라스틱에 관심이 가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저는 짧은 생각으로 바이오플라스틱은 그저 친환경 상품의 일종으로만 봐왔습니다. 그런데 최근 나프타 부족으로 인한 쓰레기봉투 대란을 보면서 바이오플라스틱 같은 상품들도 일종의 전략적 대체재가 될 수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수많은 이해관계가 얽혀 있어 쉽진 않겠지만 공공의 영역에 있는 쓰레기봉투 같은 것이라도 바이오플라스틱으로 바꿔 위기 상황도 넘겨보고 환경에도 도움이 되는 선택을 해보는 건 어떨까 합니다.

이홍표 한경비즈니스 편집장


이홍표 기자 hawlli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