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무제표 AI 독해]

호르무즈해협 봉쇄 여파로 국내 휘발유 가격은 리터당 2000원을 돌파하며 차량이 길게 늘어서는 주유소 앞 진풍경을 볼 수 있다. 자연스럽게 시선은 국내 정유사로 향한다. 유가 급등기에 정유사가 당연히 막대한 폭리를 취할 것이라 생각되지만 현실은 판이하게 다르다.
리터당 2000원 시대의 착시…정유사 '밸류업'이 요원한 진짜 이유 [재무제표 AI 독해]
높은 원가 구조와 재고평가이익의 착시정유산업의 본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거대한 장치산업’이라는 태생적 한계와 ‘높은 원가’ 구조를 직시해야 한다. 국내 정유 4사(SK이노베이션, GS칼텍스, S-Oil, HD현대오일뱅크)는 주요 원재료인 원유를 100% 해외 수입에 의존하고 있으며 전체 제조원가에서 원유 구매 비용이 절대적이다. 그러다 보니 매출원가율이 95%를 상회하는 수익 구조를 띠며, 따라서 우리나라 정유사들은 단순히 원유를 들여와 파는 것이 아니라 ‘정제마진’을 높이는 활동에 사활을 건다.

정제마진이란 원유를 정제해 제조한 휘발류, 경유 등의 판매 가격과 원유 도입 가격의 차이인 셈인데 막대한 정제시설 구축 투자금을 고려하면 정제마진의 뒷받침이 없으면 손해가 나는 구조다. 문제는 원유 가격의 변동성, 물류비, 보관료 그리고 환율 등 통제 불가능한 거시경제 변수들이 늘 수익성을 크게 좌우한다는 데 있다.

원유는 특성상 시차로 인한 이익까지 계산에 넣어야 한다. 중동산 원유를 국내로 들여와 제품으로 판매하기까지 약 1~2개월의 운송 및 정제 기간이 소요된다. 유가가 안정적으로 오르면 저렴하게 매입한 원유의 가치 상승분에 대하여 장부상 재고자산평가이익이 발생하지만 반대로 변동성이 극심해지거나 하락할 때는 막대한 재고자산평가손실을 입게 된다. 이 와중에 대중과 외부 투자자들은 전쟁의 여파로 유가가 급등했으니 정유사들이 작년에 저렴하게 사둔 원유 재고자산 덕분에 당장 1분기에 엄청난 이익을 냈을 거라는 착각에 빠진다.

하지만 숫자는 절대 직관적인 시각에 부합하지 않는다. 2025년 말 기준 재고자산은 GS칼텍스가 미착품을 포함해 약 2.6조원, S-Oil도 약 2.6조원, HD현대오일뱅크가 약 2.1조원에 달한다. 유가가 10%만 올라도 단순 계산으로 수천억원의 자산 가치가 상승하므로 곧바로 장부상 큰 이익이 발생할 것 같지만 회계의 세계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유가가 올랐다고 해서 장부상 재고자산 평가이익이 무한정 발생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K-IFRS(한국채택국제회계기준)에서 채택하고 있는 저가법(Lower of Cost or Market)의 “재고자산의 취득원가와 순실현가능가치 중 낮은 금액으로 표시한다”는 엄격한 회계원칙을 따르기 때문이다. 즉 이익이 온전히 실현되려면 재고 상태가 아니라 정제된 석유 제품이 높아진 시장 가격에 ‘실제 판매’될 때 진짜 이익으로 인식할 수 있다.
리터당 2000원 시대의 착시…정유사 '밸류업'이 요원한 진짜 이유 [재무제표 AI 독해]
매출은 정유, 이익은 비정유위 표는 최근 5년간 국내 상위 4개 정유사 ‘정유 부문만의’ 매출액과 영업이익률 추이다. SK이노베이션의 경우 배터리 및 에너지 부문이 합병되어 석유사업을 주로 맡고 있는 종속회사 SK에너지 실적만 포함시켰다. 정유사는 원유 정제 관련 매출액만 보통 30조~40조원 이상이다. 그러나 이익률은 1% 이하로 혹은 적자를 면치 못한다. 2022년은 국내 정유사가 반짝 좋았던 시점으로 4개사 합산 171조원의 매출액과 10조원의 영업이익 등 최대 규모의 실적을 낼 수 있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공급 차질과 팬데믹 이후 폭발적인 수요 회복이 맞물린 유례없는 정제마진 호조 덕분이다. 역으로 생각해 보면 매출액이 거대한 반면, 외부 변수에 극도로 취약한 산업임을 알 수 있다.

정유사는 정유 부문의 리스크를 상쇄하기 위해 윤활기유와 석유화학 부문으로 사업다각화되어 있다는 점도 공통적인 특징이다. 외형적인 매출 포션은 여전히 정유 부문이 70~80% 이상으로 압도적이지만 실제 알짜 이익은 윤활 부문에서 창출되는 경우가 많다. 윤활기유는 원유가 변동 시 원가는 즉각 반영되는 반면 최종 제품의 가격은 유가에 후행하여 천천히 하락하는 ‘가격 비탄력성’을 지니고 있어 높은 이익률을 보장한다. 실례로 2025년 S-Oil의 경우 전체 매출의 8.8%에 불과한 윤활 부문에서 무려 5784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하며 정유 부문의 적자를 상쇄한다. GS칼텍스 역시 2025년 윤활 부문의 매출 비중은 4.2%에 그쳤으나 영업이익 기여도는 55.6%에 달하며 고수익 방어막 역할을 증명했다. 석유화학 부문 역시 부가가치를 높이기 위한 노력이다.

S-Oil은 올레핀 하류시설 및 대규모 스팀 크래커 건설(샤힌 프로젝트)에 9조원의 투자를 단행하며 석유화학 부문 비중을 지속적으로 키우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이 국내 정유사 1위 기업이지만 정유업을 넘어 ‘에너지 종합기업’으로 크기 위해 사활을 거는 것도 결국 정유 본업만으로는 생존과 수익을 담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글로벌 탄소중립 트렌드와 환경 규제 강화 속에서 HD현대오일뱅크는 블루수소, 화이트바이오, 친환경 화학 및 소재를 3대 미래 사업으로 선정하고 2030년까지 영업이익 비중 70%를 비정유 부문에서 달성하겠다는 청사진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S-Oil과 GS칼텍스 역시 2027년부터 본격화될 지속가능항공유(SAF) 혼합 의무화 제도에 대비하여 바이오 연료 인프라를 구축하고 폐플라스틱 순환 경제 생태계 구축에 나서고 있다. SK이노베이션 또한 배터리 및 소재 사업 등 친환경 사업 비중을 넓히며 ‘탄소에서 그린으로(Carbon to Green)’라는 전면적인 포트폴리오 혁신을 강행 중이다. 이는 단순한 ESG 트렌드 쫓기가 아니라 정유에 편중된 사업의 근본적 불확실성을 걷어내기 위한 생존 전략이다.
리터당 2000원 시대의 착시…정유사 '밸류업'이 요원한 진짜 이유 [재무제표 AI 독해]
<출처 – DART 2025년 에쓰오일 사업보고서> 미국-이란 전쟁 오히려 악재정부는 중동 분쟁에 따른 원유가 급등에 대응하기 위해 ‘석유 및 석유대체연료 사업법’ 등에 근거하여 2026년 3월 13일부로 정유사의 공급가격에 대해 ‘석유제품 최고 가격제’를 전격 시행했다. 휘발유, 경유, 등유의 실소비자 및 판매업자 공급가에 상한을 두고, 심지어 월 수출량마저 전년 동기의 100% 이내로 초과하지 못하도록 묶어버리는 강력한 규제다. 정유사가 원유 재고의 평가 차익분이 2026년 1분기에 반짝 흑자로 잡힐 수는 있으나 치솟는 새로운 원유 도입 원가와 억눌린 내수 판매 가격 사이에서 정제마진은 필연적으로 훼손될 수밖에 없다. 또한 정유사는 환율 상승의 충격을 온몸으로 흡수해야 하는데 원유 결제 대금을 달러로 지급해야 하는 산업 특성상 외화부채가 외화자산보다 많은 구조를 가져 환율 상승 시 대규모 외환차손 및 외화환산손실을 피할 수 없다. 예를 들어 미국 달러화의 환율 10% 변동에도 S-Oil 당기손익에 -6984억원의 영향을 미친다. 환율이 단 10%만 상승해도 정유사들의 이익이 수백억에서 수천억원 증발하며 본업(정제마진)에서 번 돈을 모두 앗아갈 수 있는 심각한 시장 위험이라는 점을 명시하고 있다.

더욱이 전쟁의 장기화는 해상 운임과 보험료 등 물류비를 급등시키고 장기적인 고유가는 수요파괴(Demand Destruction)를 유발해 최종적으로는 수익성을 크게 떨어뜨리는 악순환을 낳는다. 이런 상황 속에 정책으로 묶인 가격 전가 능력과 수출마저 쿼터까지 진퇴양난의 상황이다. 거대한 장치 자본을 쏟아붓고도 글로벌 펀더멘털에 휘둘리는 취약한 수익 구조에 더해 정부의 이익 통제까지 겹친 이 냉혹한 구조 속에서 2026년 국내 정유사의 진정한 ‘밸류업(기업가치 제고)'’ 무척이나 요원해 보인다. 화석연료의 굴레를 끊고 친환경 에너지 종합기업을 꿈꾸거나 비정유 부문 사업다각화 등 완전한 탈바꿈을 숫자로 입증하기엔 ‘매우 어려워 보인다’는 뜻이다. 특히나 이번 전쟁은 정유사에 ‘가격은 못 올리고 비용만 오르는 구조’다. 국제 정세의 소용돌이 속에 정유사 밸류업은 안갯속을 걷고 있다. ■ AI에게 묻는다
정유주 본질 체력 확인하려면? AI에 ‘세 가지’만 물어보세요
유가·환율·정책이라는 3중 변수에 노출된 정유사의 본질은 ‘착시 이익’을 걷어내고 지속가능한 수익 구조를 확보했는지에 달려 있다. 5월이면 1분기 분기보고서가 공시된다. 이때 복잡한 재무제표 주석과 세부 데이터를 일일이 계산하기 어렵다면 AI를 활용해 핵심을 빠르게 검증해 보자.

①“영업이익에서 재고평가이익을 제외한 ‘실질 정제마진’은 얼마인가?” 정유사의 이익은 유가 상승기에 ‘재고이익’이라는 착시가 끼어들기 쉽다. 즉 싸게 사둔 원유가 비싸지며 발생하는 회계상 이익일 뿐 실제 영업 경쟁력과는 무관할 수 있다. 이와 더불어 정유사의 본질적인 수익구조에 대한 질문도 함께하자.

②“비정유 부문(윤활유·석유화학)의 영업이익 비중은 얼마나 확대됐는가?” 아울러 원유 수입과 수출 비중이 높아 생기는 환율 영향도 조사시키면 좋다.

③“환율 변동으로 인한 외환손익이 순이익을 얼마나 잠식했는가?” 정유사는 거대한 매출액에 반하지 말고 재고 착시를 걷어낸 이익, 비정유 비중, 그리고 환율 대응력이라는 세 가지 축으로 본질적인 체력을 판단해야 한다.

※상기 글은 해당 회사의 재무제표와 사업보고서를 참고해 작성한 내용입니다. DART(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공시된 ‘재무제표 읽기’를 통해 기업 이야기를 나누고자 합니다.

이승환 재무제표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