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전·대만 위기 계기 러~이란~중 잇는 저항축 구축 … 서방 동맹은 분열
결국 막판 미국이 참전하면서 전쟁은 끝났다. 그러나 전후 미국은 영국·프랑스의 요청을 뿌리치고 유럽에서 군대를 모두 철수시키면서 국제질서의 축(軸) 역할을 스스로 마다했다. 대신 국제연맹이라는 국제기구를 통한 질서를 유지하려 했으나 찢겨진 다자주의 속 전체주의 부상을 억누를 수는 없었다. 고립주의 전통을 이어가던 와중에 맞은 대공황은 미국이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하게 하는 족쇄가 됐다. 국제질서를 잡을 ‘호랑이’의 부재로 세계는 제2차 세계대전으로 떠밀려 갔다.
2차 대전 이후는 판이했다. 미국의 힘에 의해 결정된 전쟁 결과는 세력균형에 의해 간당간당 유지되던 그간의 국제질서에 종지부를 찍었다. 미국은 서방이 더 이상 전체주의의 먹잇감이 되지 않도록 국제질서 축 역할을 자임했다. 당시 미국의 국내총생산(GDP)은 전 세계의 절반을 차지, 경제력도 뒷받침됐다. 냉전기 소련은 미국을 중심으로 한 자유주의 동맹과의 체제·군비 경쟁을 감당하지 못하고 몰락했다.
냉전 해체 이후 상황은 달라졌다. 이라크·아프가니스탄전 실패로 압도적 국제질서 유지자로서의 미국 영향은 움츠러들었다. 두 전쟁에서 퇴각한 뒤 미국 정책 무게의 추는 해외보다 국내 문제로 이동했다. 그러는 사이 중국은 국제질서의 주도자 자리를 위한 야욕을 키웠다. 애초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등 중국을 글로벌 경제 체제 편입으로 이끈 것은 미국이다. 세계경제 체제로 들어와 번영을 이루면 체제 변화를 유도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했다. 그러나 중국은 체제 변화 없이 전통 제조업은 물론 첨단기술과 무력 강국으로 거듭났다.
중·러, 유라시아 해양·대륙 거대한 선 구축
2022년은 미국 중심의 질서에 큰 도전을 받는 해였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베이징 동계올림픽 때 회담을 하고 제한 없는 협력을 약속했다. 시 주석은 “100년 만의 대격변 시기 세계질서를 긍정적 발전 궤도에 올려놓기 위해 주도적 역할을 맡을 준비가 돼 있다”고 했다. 미국 일극 체제에 대한 도전 선언이다. 러시아는 유럽 평화의 기반, 즉 지역 질서를 흔들 수 있다는 야욕을 우크라이나 침공을 통해 보여줬다. 이미 체첸과 조지아를 침공해 옛소련 시절 영토에 대한 확장 야욕을 키워왔다.
미국의 대(對)이란전이 국제질서 대전환의 분기점이 될까. 미국 전략적 과오부터 부각된다. 호르무즈 봉쇄로 인한 유가 급등은 석유수출국 러시아의 주머니를 두둑하게 해줬다. 우크라이나전을 일으킨 러시아에 대한 제재 효과를 미국 스스로 상쇄시켜버린 것이다. 대만전을 벼르는 중국엔 미국의 전력(戰力) 분산으로 인한 득(得)을 안겨줬다. 이란전은 미국이 구축한 국제질서에 대한 ‘저항의 축’을 공고히 해줬다. 러시아~이란~중국을 연결하는 축이다. 러시아는 항법전자전 대응 장치 등 이란을 간접 지원했다. 중국은 원유 수입 등을 통해 이란의 재정적 후원자가 돼 줬다. 중국과 러시아는 이미 유라시아의 중심을 원형으로 아우르는 거대한 선(線) 구축에 나선 터다. 러시아는 러시아~아제르바이잔~이란~인도를 철도·고속도로·항로로 연결하는 7200km의 국제남북운송회랑(INSTC)을 구축하고 있다. 튀르키예, 파키스탄과의 협력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이란은 시리아 내전에 개입하고 하마스와 헤즈볼라, 후티 반군 등을 지원하며 중동 영향력을 키워왔다.
중국은 스리랑카·미얀마·파키스탄에 항구 등 기반 시설 투자를 대대적으로 하면서 인도양까지 손을 뻗치고 있다. 최근 파키스탄과 훈련도 했다. 대만·믈라카해협, 인도양에 걸친 거대한 ‘해양 실크로드’ 구축이다. 내륙으론 이미 러시아~중앙아시아~중국~북한으로 결속해 있다. 유라시아 대륙과 해양을 아우르는 거대한 패권망 구상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지 세력인 마가(MAGA) 일각의 반발에도 이란을 공격한 것은 핵 개발 저지를 넘어 이런 연결 고리를 끊으려는 전략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다만 중국과 러시아의 협력이 강고하게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중국의 일대일로와 러시아의 전략은 중첩된 부분이 많으며 이런 교차점은 언제든 긴장을 유발할 수 있다. 대미 ‘저항의 축’ 주도권을 놓고 부딪칠 소지도 있다. 그러나 현시점에선 긴장 요인보다 미국 주도의 세계질서에 도전하기 위한 전략적 공동이익이 더 커 맞잡은 손을 놓지 않을 것이다.
미국-유럽 틈새 비집고 들어오는 중국
이란과의 전쟁에서 미국의 또 다른 과오는 서방 동맹의 분열을 부른 점이다. 트럼프는 전쟁을 돕지 않았다며 한국과 유럽, 일본 등 동맹국들을 연일 비난했다. 사전 협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전쟁을 시작해 놓고 이러는 것은 국가 신뢰를 갉아먹는 일이라는 비판을 받는다. 80년 대서양 동맹에 금을 내는 것은 중국과 러시아 연합에 맞서 힘을 합쳐도 모자랄 판에 미국에 역효과로 돌아올 것이란 지적이다. 중국은 미국과 유럽의 이런 틈새를 파고들고 있다. 물론 유럽은 미국에서 멀어지긴 어렵지만 중국을 지렛대로 대미 의존도를 낮추려는 의도를 숨기지 않는다. 경계심을 늦추지 않으면서도 중국 옆문을 두드리고 있다. 트럼프는 한국에 대해 주한미군이 북핵 위협 앞에서 지켜주고 있는데도 도와주지 않는다고 불만을 털어놓는다. 그러나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은 “미군 주둔은 자비심 때문이 아니며 열강의 이익이 교차하는 전략적 요충지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미국의 전략적 필요성도 있다는 것이다.
이란전, 우크라이나전, 대만해협 위기 등 동시다발 패권 투쟁 양상이 국제질서를 어떤 식으로 바꿔놓을지 주목된다. 미국이 국제질서 유지자로 계속 남을 수 있을까, 아니면 중국·러시아의 호전성과 야망을 더 키우게 될까. 물론 이란 핵문제와 호르무즈해협 개방 등에 대한 최종 종전 협상 결과에 달려 있다. 협상이 어떻게 끝나더라도 적어도 이란의 시아파 체제와 강경 혁명수비대 와해를 부를 가능성은 낮다는 분석이 많다. 그런 와중에 트럼프와 서방 동맹 간 상호 불신이 쉽게 사그라들지 않을 것으로 보여 미국의 일극 패권 위상이 흔들릴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그러나 미국은 이란전을 통해 글로벌 차원의 군사력 투사 능력이 여전히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보여줬다. 반면 중국과 러시아는 이란에 대한 직접 군사 개입은 회피했다. 이 때문에 중국·러시아·이란 축이 미국 주도의 국제질서를 돌려놓기엔 여전히 힘에 부칠 것이란 반론도 적지 않다. 중국 경제력도 예전만 못하다. 러시아도 우크라이나전을 4년 넘게 끌면서 전략적 무능과 무기의 낮은 질적 수준을 확인해주고 있다. ‘돈로주의(신고립)’를 표방한 트럼프의 선택도 주목된다. 할 브랜즈는 ‘유라시아 지정학’에서 “미국은 혼란의 시대 영향력을 유지하기 위한 비용을 감수할 것인지 지역강국으로 전락할 위험을 감수할 것인지 선택해야 하는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고 주장했다.
홍영식 전 한국경제 논설위원·전 한경비즈니스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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