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한 전자 vs 적자 빠진 자동차
日 대표산업 30년 만에 판 뒤집혀



전기차 등 미래차 대응에 실패한 혼다와 닛산 등 일본 자동차업계가 지난해 부진한 실적을 거뒀다. 요코하마 닛산 본사앞에 직원이 지나가고 있다.  AFP 연합
전기차 등 미래차 대응에 실패한 혼다와 닛산 등 일본 자동차업계가 지난해 부진한 실적을 거뒀다. 요코하마 닛산 본사앞에 직원이 지나가고 있다. AFP 연합
지난해 일본 주요 7개 전자 업체의 순이익이 7개 자동차 업체를 넘어선 것으로 추정된다. 1990년대 중반 이후 30년 만이다. 일본 전자 업체들이 과거의 부진을 딛고 부활하는 사이 잘나가던 자동차 업체들은 중국 사업 부진에 허덕이며 기세가 역전됐다. 사업 재편 노력이 일본 대표 산업의 명암을 갈랐다는 분석이다.
전기차 실패한 車업계
각 업체에 따르면 소니그룹, 히타치제작소, 후지쓰, 미쓰비시전기, NEC, 파나소닉, 샤프 등 7개 전자 업체의 2025 회계연도(2025년 4월~2026년 3월) 순이익은 총 3조2280억엔으로 추정됐다. 소니와 파나소닉을 제외한 5개 업체가 전년 대비 순이익을 늘렸다.

반면 도요타자동차, 혼다, 닛산, 스즈키, 스바루, 마쓰다, 미쓰비시 등 7개 자동차 업체의 지난해 순이익은 총 2조7750억엔으로 추정됐다. 닛산은 2년 연속 대규모 적자에 빠졌고 혼다마저 적자로 돌아섰다. 7곳 중 전년보다 순이익이 늘어난 기업은 한 곳도 없는 것으로 예상된다.

5년 전만 해도 상황은 달랐다. 2021 회계연도에 7개 자동차 업체의 순이익은 총 4조1584억엔으로 7개 전자 업체 순이익(2조3219억엔)의 두 배에 달했다. ‘슈퍼 엔저’를 등에 업은 자동차는 북미를 중심으로 수출을 늘리며 돈을 쓸어 담았다.

일본 자동차 업체들이 부진한 이유는 우선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인상에 있다. 미국은 지난해 4월부터 일본산 자동차에 25% 추가 관세를 부과했고 같은 해 9월부터 이를 15%로 낮췄다. 트럼프 관세는 지난해에만 일본 7개 업체의 영업이익을 2조5000억엔가량 깎아 먹은 것으로 추산됐다.

일본 자동차 업체들은 세계 최대 시장인 중국에서도 고전하고 있다. 중국 업체와 비교해 전기차 및 소프트웨어 기술에 뒤처져서다. 지난해 중국 자동차 업체들의 글로벌 신차 판매량은 사상 처음 일본을 넘어 세계 1위에 올랐다. 일본이 1위를 내준 것은 2000년 이후 처음이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일본 자동차는 지금까지 쌓은 성공을 무너뜨리고 싶지 않은 ‘혁신의 딜레마’가 있다”며 “하지만 기존 비즈니스 모델을 넘어 수익을 창출하는 방식을 보여주지 못한다면 엔저 호재가 불어도 쇠퇴로 향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신사업 올인한 전자
반면 한때 ‘가라앉는 거함’으로 평가받던 히타치는 현재 수주 잔액이 약 18조엔으로 연간 매출의 두 배에 달한다. 공장을 100% 가동해도 2년간 공급이 수요를 따라잡을 수 없다는 의미다. 2008 회계연도만 해도 일본 제조업체 사상 최대인 7873억엔의 적자를 기록하며 전자산업 쇠퇴의 상징으로 불렸던 히타치다.

히타치는 회사의 상징이던 전선, 화성(化成), 금속 등 3대 사업을 모두 팔고 그린에너지와 디지털전환(DX) 사업을 새 성장동력으로 삼았다. 과거 성공 경험을 버리고 새로운 사업에 경영 자원을 과감히 투입했다. 대규모 인수합병(M&A)도 혁신의 지렛대가 됐다. 스위스 ABB에서 인수한 파워그리드 사업 등의 글로벌 수주 잔액은 약 9조엔에 이른다.

히타치는 최근 백색가전 사업마저 자국 가전 유통 기업 노지마에 매각하기로 했다. 매각 금액은 1100억엔이다. 이번 가전 사업 매각은 17년간 이어진 사업 재편의 마지막 퍼즐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2010년대 ‘탈일렉트릭’을 선언한 소니는 게임, 음악, 영화 등 엔터테인먼트 사업을 중심으로 포트폴리오를 재구축했다. 히라이 가즈오, 요시다 겐이치로, 도토키 히로키 등 세 명의 사장을 거치며 ‘엔터테인먼트 종합상사’로 변신했다. 현재 영업이익의 60%를 엔터테인먼트 사업에서 올리고 있다.

오랜 기간 부진을 겪은 NEC와 후지쓰도 과거와 달리 경영 포트폴리오를 집중하며 회복하고 있다. NEC가 창업 사업인 통신기기 부문을 대폭 정리하는 것도 그 일환이다. NEC와 후지쓰는 도쿄증시에서 정보기술(IT) 서비스 기업으로 자리매김했다. 고객사의 인공지능(AI) 업무 효율화를 통해 사업 확장을 돕는 기업으로 변신했다.

한국 전자업체의 일본법인장은 “현재 잘나가는 사업을 팔더라도 미래를 사야 한다는 게 일본 기업이 주는 교훈”이라며 “어떤 기업도 변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시대”라고 말했다.
닛산·혼다 협업 지지부진
일본 자동차 2위 혼다와 3위 닛산은 계속해서 협업 협상을 벌이며 생존을 위한 몸부림을 치고 있다. 그러나 소프트웨어 등 차세대 기술을 둘러싸고 의견이 엇갈리면서 협상은 1년 넘게 지지부진하다. 닛산은 해외 완성차 업체에도 협업을 타진했지만 실패했다.

2024년 12월 우치다 마코토 당시 닛산 사장은 혼다와의 합병 협상 착수 기자회견에서 “어느 쪽이 위, 아래가 아니다”며 대등한 관계를 강조했다. 그러나 당시 협상은 혼다 주도로 이뤄졌고 자존심이 상한 닛산 내부에선 반발이 거셌다. 혼다가 심지어 닛산에 “자회사로 들어오라”며 제안하자 닛산의 불신은 더 커졌고 이듬해 2월 협상은 결렬됐다.

‘결정하지 못하는 조직’이라고 조롱받던 닛산은 작년 4월 이반 에스피노사 사장이 취임하면서 탈바꿈하기 시작했다. 전 세계 7개 공장을 닫기로 결정했고 총 5000억엔 규모의 비용 절감 계획도 순조롭게 추진하고 있다. 닛산 내에선 “결단 속도가 확 달라졌다”는 반응이 나온다.

차세대 자동차는 거액의 투자가 필요하다. 이에 닛산은 합병 협상이 결렬된 작년 2월부터 협업 방식으로 혼다와의 관계를 재구축하는 방안을 추진했다. 닛산 미국 공장에서 차량을 공동 생산하고 차량용 운영체제(OS)를 공통화하는 방안 등이 거론됐다. 그러나 세부 조율 과정에서 의견 차이가 이어지며 작년 12월을 목표로 한 합의가 이뤄지지 못했다.

닛산은 “이대로는 안 된다”는 판단에 따라 혼다와의 협의와 별도로 여러 글로벌 완성차 업체에 협업을 타진했다. 하지만 미국 관세 등에 대응하기 바쁜 업체들은 닛산의 제안을 거절했다. 현실적으로 닛산은 혼다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동안 협업 협상은 혼다가 주도했지만 이제 힘의 균형이 바뀌었다. 양사가 대등한 입장에서 협업을 논의하고 있다. 배경에는 혼다의 어려운 상황이 있다. 혼다는 전기차 관련 손실 등으로 2025 회계연도에 상장 후 처음으로 최대 6900억엔 적자를 기록할 전망이다. 소니·혼다 모빌리티도 전기차 개발을 중단했다.
전력반도체도 재편 본격화
일본 전력반도체 업계도 생존을 위해 안간힘이다. 전력반도체 업계 재편은 롬과 도시바, 미쓰비시전기 등 3사 통합을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다. 앞서 도요타그룹 계열 세계 2위 차량 부품사 덴소가 롬에 대한 인수 제안을 철회하면서다.

롬은 3월부터 도시바, 미쓰비시전기와 전력반도체 사업 통합을 위한 협의를 시작했다. 2024년 매출 기준 롬의 세계 전력반도체 시장점유율은 2.5%로 12위였다. 미쓰비시전기가 4.6%로 4위, 도시바는 2.6%로 10위다. 3사가 통합하면 9.7%로 독일 인피니언(17.4%)에 이어 세계 2위에 오른다.

미쓰비시전기는 중국 기업의 저렴한 고품질 전력반도체 판매 확대에 위기감을 느껴왔다. 롬 및 도시바와 통합 협의에 참여해 생산 비용 절감과 개발 역량 강화를 노린다는 방침이다. 전력반도체는 전통적으로 일본 기업이 강했지만 중국 회사가 부상하면서 과잉 생산되고 있다.

도시바의 목표는 재상장이다. 도시바는 2023년 상장폐지 이후 전력반도체 분야에서 외부 제휴를 모색해왔다. 도시바는 가전과 전기차 등 저·중전압에, 미쓰비시전기는 철도와 송배전망 등 고전압 분야에 강점이 있다. 롬은 차세대 제품의 일관 생산이 특기다. 3사 통합은 도시바 재상장을 위한 한 수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도쿄=김일규 한국경제 특파원 black041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