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0년이 지난 지금 삼성전자라는 법인이 태풍의 한가운데 서 있습니다. 삼성전자가 사상 최대 실적을 내자 노조는 막대한 성과급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주주들은 반대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습니다. 급기야 정부 장관까지 나서 “삼성전자의 성과는 성장을 도와준 국민의 성과”라고 말합니다. 언론을 포함한 수많은 사람들이 삼성전자에 대해 한마디씩 보태고 있습니다.
저도 한마디 보태려 합니다. 이번 주 한경비즈니스 커버스토리가 ‘반도체 신드롬’이니까요. 제 생각에 가장 먼저 정확히 해야 할 것은 이것입니다. 법인은 주주의 것도, 직원의 것도, 물론 국민의 것도 아닙니다. 1897년 영국 대법원의 살로몬 판결이 확립한 원칙은 명확합니다. 법인은 그 자체로 독립된 인격체이며, 주주와 법인은 별개의 존재입니다. 법인이 번 돈은 누군가의 전리품이 아니라 법인 자신의 미래를 위한 자산입니다. 그 곳간은 오늘의 분배를 위한 것이 아니라 내일의 생존을 위한 벽돌이어야 합니다.
역사는 이 원칙을 망각한 법인의 말로를 생생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보잉의 사례가 가장 처절합니다. 2000년대 이후 보잉은 천문학적 자사주 매입과 배당으로 주주를 만족시키는 동안 엔지니어를 재무전문가로 교체했습니다. 기술의 언어가 재무의 언어로 대체된 결과는 737 맥스의 추락이었습니다. 사람이 죽었고, 신뢰가 무너졌으며, 법인은 아직도 그 대가를 치르고 있습니다. GM은 레거시 노동 비용의 무게에 짓눌려 전기차 전환의 골든타임을 놓쳤고 2009년 파산했습니다. 인텔은 재무 중심 경영으로 파운드리 투자를 미루다 TSMC와 엔비디아가 만들어낸 새로운 세계에서 추격자로 전락했습니다. 세 회사의 공통점은 하나입니다. 법인의 영속성을 위해 쓰여야 할 돈이 현재의 분배로 새어 나갔다는 점입니다.
삼성전자가 지금 서 있는 지점이 정확히 여기입니다. 솔직히 말하면 지금 삼성전자 노조의 막대한 성과급 요구의 본질은 돈의 크기가 아닐 거라고 생각합니다. 영업이익의 15%를 요구하지만 사실 논리적으로는 전부를 달라고 주장할 수도 있는 것이니까요. 오히려 SK하이닉스가 HBM으로 사상 최대 실적을 쓴 후 전례 없는 성과급을 지급하는 것을 지켜보며 느끼는 “우리는 1등이 맞는가”라는 실존적 질문에 대한 답을 찾지 못하는 불안입니다. 삼성이 반도체 신화를 쓰던 시절 직원들을 움직인 것은 돈만이 아니었습니다. ‘세계 1등’이라는 서사였습니다. PS와 PI라는 성과 시스템은 단순한 보상체계가 아니라 “당신이 기여한 만큼 우리가 함께 커진다”는 약속의 언어였습니다. 그 언약이 희미해진 자리에 불안이 들어찬 것입니다.
사실 삼성전자 경영진은 이미 주주들에게는 이런 비전을 한 차례 보여준 바 있습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젠슨 황 엔비디아 CEO, 정의선 현대차 회장이 함께한 이른바 ‘깐부회동’이 그것입니다. 세계적 경영자들이 소탈하게 미래를 이야기하는 이 장면에 시장은 즉각 환호했습니다. 삼성전자를 가로막던 비관론은 사라지고 주가는 급상승을 시작했습니다. 주주들은 그날 밤 리더들이 들었던 생맥주잔 너머의 미래에 기꺼이 베팅했습니다. 외부의 깐부들에게 보여줬던 그 찬란한 설계도와 확신을 이제는 내부의 동료들에게도 보여줄 차례입니다. 배당을 늘리거나 성과급을 조정하는 것이 해법이 아닙니다. “우리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그 여정에서 당신은 어떤 역할을 하는지”를 설득하는 비전의 언어가 필요합니다.
경영진 역시 주주나 종업원과 마찬가지로 유한한 인간입니다. 그들도 두려움을 느끼고, 실수를 하고, 시간의 압박 앞에 흔들립니다. 그럼에도 법인의 미래를 위해 가장 깊이 고민해야 할 사람들은 역시나 경영진입니다. 유한한 인간이 죽지 않는 법인을 창조한 것은 더 오래, 더 멀리 가기 위해서였습니다. 주주들이 보았던 그 희망을 이제는 종업원들이 사무실과 공장에서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구성원들에게 오늘보다 내일이 나아질 수 있다는 믿음을 심어주는 것, 그것이 경영진이 이 법인을 위해 할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일입니다. 삼성전자라는 법인이 수많은 구성원들의 지혜를 모아 지금보다 더 뜨겁게 뛰기를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이홍표 한경비즈니스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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