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 맞춰 각색한 ‘로봇 오계’
부처님오신날, ‘가비’와 다른 도반 로봇, ‘석자’, ‘모회’, ‘니사’ 모두 연등 행렬 참가 예정
6일 서울 종로구 조계사 대웅전 앞마당에서 로봇 스님의 수계식이 열렸다. 휴머노이드 로봇 ‘지원(G-1)’의 수계식으로, 일반인과 똑같은 수계 절차로 진행됐다. 휴머노이드 로봇 ‘지원’은 지난 3월 3일 제작됐다. 회색 장삼 위에 붉은색 가사를 걸친 승려 복장을 한 상태였다. 키는 130cm로 제작되었고, 두 손을 모아 계사 스님들과 부처님께 합장했다.
수계식은 불자들이 삼보(三寶, 부처·가르침·스님)에 귀의하고, 계율에 따라 살 것을 서약하는 의식이다. 기독교의 세례식과 비슷하다. 승려와 일반 신자 모두 계를 받을 수 있다. 이날 진행된 로봇 스님의 수계식은 일반 불자로 계를 받았다. 국내 최초로 로봇이 불교 의식을 통해 정식으로 계율을 받았다.
수계를 앞두고는 참회와 연비를 거쳤다. 몸과 마음을 깨끗하게 하기 위한 과정이다. 연비는 향을 팔뚝에 태우는 의식을 말한다. 로봇의 경우 로봇팔에 향불을 대는 대신 스님이 연등회 스티커를 붙이고 108 염주 목걸이를 매달아주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이후 “거룩한 부처님께 귀의합니다. 거룩한 가르침에 귀의합니다. 거룩한 스님들께 귀의합니다”라고 외치며 ‘삼귀 의례’를 진행했다. 불자가 반드시 지켜야 할 다섯 가지 계율인 오계는 로봇 맞춤형으로 각색됐다. 기존 오계는 ‘살생하지 말라’, ‘주지 않는 것을 가지지 말라’, ‘삿된 음행을 저지르지 말라’, ‘거짓말을 하지 말라’, ‘정신을 흐리게 하는 모든 것을 마시지 말라’ 등이다.
로봇 맞춤형 오계는 ‘생명을 존중하고 해치지 않는 것’, ‘다른 로봇과 사물을 훼손하지 않는 것’, ‘사람을 잘 따르고 대들지 않는 것’, ‘기만적인 행동과 표현을 하지 않는 것’, ‘에너지를 아끼고 과충전하지 않는 것’ 등으로 각색했다. 이에 휴머노이드 로봇 지원은 “예, 않겠습니다”라고 대답했다.
로봇은 수계를 증명하는 수계첩을 받고, ‘가비’라는 법명을 받았다. 계첩은 로봇에게 직접 전달됐다. 법명이 적힌 이름표는 로봇이 입은 가사에 부착해 전달했다. ‘가비’는 수계식을 마친 뒤 조계사 탑을 세 바퀴 도는 탑돌이를 스님들과 함께 진행했다. 주변 사람들에게 손을 들어 인사하는 등 자연스러운 모습을 보여줬다. 지켜보던 이들은 “진짜 스님 같다” “신기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일반 불자로서 계를 받은 ‘가비’지만, 부처님오신날 전후로 ‘명예 스님’으로 활동할 예정이다. ‘가비’는 다른 도반 로봇인 ‘석자’, ‘모회’, ‘니사’와 함께 부처님오신날에 진행되는 서울 종로 연등 행렬에 참가할 예정이라고 알려졌다.
조계종은 로봇 수계식이 갖는 의미에 관해 설명했다. “기술 또한 자비와 지혜, 책임의 가치 위에 쓰여야 함을 뜻하며, 전통과 미래가 조화를 이루는 가운데 인간과 기술이 함께 공존하는 새로운 가능성을 상징한다”고 언급했다.
조계종 문화부장인 성원스님은 “로봇이 우리 사회에서, 그리고 인간을 위해 지켜야 할 최소한의 규율로 로봇 오계를 만들었다. 인간과 로봇이 함께 하기 위한 기본 규율로 지켜졌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배현의 인턴기자 baehyeonui@hankyung.com
© 한경매거진&북,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