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사모 투자 시장에서 AI만큼 뜨거운 분야가 예측시장이다. 예측시장의 양대 산맥인 칼시(Kalshi)와 폴리마켓(Polymarket)은 수개월마다 기업가치를 두 배 이상 인정받고 있다. 그 결과 설립한 지 10년도 채 되지 않아 두 기업은 모두 데카콘($10B 이상의 기업가치를 지닌 스타트업) 반열에 올랐다.
예측시장 뛰어드는 월가…"도박 아닌 금융상품"[비트코인 A to Z]
이러한 기업가치 급등은 폭발적인 거래량 성장이 뒷받침했다. 예측시장이 처음 대중에 주목받았던 2024년 미국 대선 직후 많은 시장참여자들은 정치 시즌이 끝나면 거래량도 같이 사그라들 것이라 예상했다. 그러나 2026년 3월 기준 칼시의 주간 거래량은 $30억 달러를 넘어섰다. 1년 전 $1억 달러 수준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30배 이상 늘어난 수치다.

이는 칼시와 폴리마켓이 정치 외에 스포츠, 코인, 금융 등으로 카테고리를 다변화한 결과다. 특히 스포츠와 코인 관련 주제 거래량이 두 플랫폼 거래량의 80% 안팎을 차지하며 핵심 수입원으로 자리 잡았다.

흥미로운 지점은 미국의 주요 금융 회사들이 이 잠재력을 빠르게 포착하고 시장 진입에 나서고 있다는 사실이다. 각 회사는 자사의 정책에 따라 기존 예측시장의 주력 상품인 스포츠·코인 위주로 서비스를 제공하기도 하고, 도박성을 띠는 카테고리는 제외한 채 금융 카테고리 중심으로 접근하기도 한다. 본 글에서는 왜 금융 회사들이 예측시장에 주목하는지, 그리고 주요 회사들의 전략은 어떻게 갈리는지를 비교 분석한다. 예측시장의 진짜 잠재력은 파생 금융시장
a16z가 최근 발표한 보고서는 예측시장의 본질을 단순한 ‘도박 대체재’가 아니라 이벤트의 확률을 실시간으로 가격화하는 금융 인프라로 정의한다. 월가가 예측시장에 뛰어드는 이유 역시 여기에 있다.

첫째, 예측시장은 ‘이벤트 가격화 인프라’로 진화 중이다. 과거의 예측시장은 선거나 스포츠 경기 결과 같은 일회성 이벤트를 다루는 시장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CPI, FOMC 금리 결정, 관세정책, 지정학 이벤트까지 거래 대상이 확장되고 있다. 본질이 바뀌었다는 의미다. 예측시장은 이제 미래 사건의 확률을 실시간 가격으로 제공하는 벤치마크로 기능하기 시작했다. 시카고선물거래소가 곡물 선물의 표준을 만들었듯이 예측시장이 ‘이벤트 확률’의 표준 가격을 만들어가고 있다.

둘째, 월가가 주목하는 진짜 이유는 헤지 구조의 질적 개선이다. 기존에는 정치·매크로 이벤트를 헤지하려면 S&P500 지수를 숏하거나 변동성 상품을 매수하는 식으로 우회해야 했다. 이는 본질적으로 ‘이벤트 자체에 대한 베팅 + 그 이벤트와 자산가격 간 상관관계에 대한 베팅’이 결합된 이중 베팅 구조다.

베팅에 들어간 자본 효율이 낮을 수밖에 없다. 예측시장에서는 이 구조가 단순해진다. 이벤트 자체를 직접 거래하므로 단일 베팅 구조가 되고 정치·매크로 리스크를 더 정밀하게 가격화하고 헤지할 수 있게 된다. 펀드매니저 입장에서는 ‘Fed가 6월에 금리를 인하할 확률’을 직접 사고팔 수 있게 되는 셈이다.

셋째, 기관 채택은 아직 초기지만 경로는 명확하다. a16z는 이 경로를 데이터(Data) → 통합(Integration) → 거래(Trading) 3단계로 정리한다. 현재 대부분의 기관투자가는 예측시장 데이터를 VIX처럼 참고 지표로 활용하는 1단계 수준에 머물러 있다. 이것이 본격 거래로 진화하지 못하는 가장 큰 병목은 100% 증거금 구조다. 칼시와 폴리마켓 모두 트레이더가 포지션 전액을 선납해야 하는데 이는 자기자본 효율(ROIC)을 최우선시하는 기관 입장에서는 받아들이기 어렵다. 그러나 향후 마진(레버리지) 거래가 도입되면 거래량은 폭발적으로 증가할 가능성이 크다. 한 번 기관 자금이 유입되기 시작하면 유동성이 깊어지고 그 결과 더 많은 기관이 참여하는 네트워크 효과가 발생한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미국 금융 회사들의 예측시장 진출은 단순히 새 트렌드에 올라타는 행위가 아니라 차세대 파생 금융시장 인프라를 선점하려는 포석으로 해석해야 한다. 회사별로 접근법은 다르다. 폴리마켓에 베팅하는 ICE 뉴욕증권거래소
뉴욕증권거래소(NYSE)를 보유한 ICE그룹은 블록체인 기반의 금융 인프라 전환에 진심이다. ICE는 두 차례에 걸쳐 폴리마켓에 총 16억달러를 직접 투자했다. 단순 재무적 투자가 아니다. ICE는 폴리마켓의 이벤트 기반 데이터를 글로벌 기관에 유통하는 플랫폼이 되는 동시에 예측시장의 기관화를 주도하겠다는 청사진을 그리고 있다.

이번 1분기 실적 발표에서 ICE 경영진은 다음과 같이 밝혔다.

“우리는 폴리마켓 Signals and Sentiment 상품을 론칭했는데 이는 예측시장 데이터를 기관 워크플로용으로 정규화한 것이며 ICE 피드를 통해 독점적으로 제공됩니다. 또한 레딧(Reddit)과 다오존스 콘텐츠를 포함한 추가적 상관 데이터셋을 통합하여 시장 심리와 정보 흐름에 대한 보다 넓은 맥락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미국 브로커리지 중 가장 공격적으로 예측시장 서비스를 강화한 곳은 로빈후드다. 1분기 실적에서 예측시장 관련 매출은 연 환산 기준 약 4억1500만달러에 달했다. 이는 코인과 더불어 로빈후드 역사상 가장 빠르게 성장한 매출원이다.

현재 로빈후드는 칼시와 파트너십을 맺어 스포츠·코인 카테고리 위주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지만 회사가 그리는 비전은 훨씬 크다. CEO 블라드 테네프는 예측시장이 정통 파생금융상품의 한 축으로 기능할 수 있다고 보고 기관화 시대를 준비하고 있다. 그 결과물이 마켓메이커 서스퀘하나와의 합작법인 형태로 출시되는 자체 예측시장 플랫폼 로세라(Rothera)다. 2분기 출시 예정인 이 플랫폼이 가동되면 로빈후드는 그동안 칼시에 의존해온 구조를 벗어나 상품 구성과 가격 결정권까지 직접 행사할 수 있게 된다.

미국 베이비부머 세대가 주로 사용하는 브로커리지 찰스슈왑은 원래 예측시장에 대해 부정적이었다. CEO 릭 월스터는 예측시장이 투자와 도박의 경계를 흐리게 만든다고 발언한 바 있다. 그러나 최근 실적 발표에서는 분위기가 달라졌다. 다만 흥미로운 점은 찰스슈왑이 여타 플랫폼들과 달리 스포츠·코인 등 도박성 거래와 금융 관련 거래를 명확히 분리하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는 것이다.

로빈후드보다 기관 고객 비중이 높은 인터랙티브 브로커도 예측시장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자체 플랫폼 ForecastEx를 운영 중이지만 칼시·폴리마켓에 비하면 점유율은 미미한 수준이다. 인터랙티브 브로커 역시 찰스슈왑과 마찬가지로 스포츠·코인보다는 헤지 목적의 카테고리에 주력하고 있다.

인터랙티브 브로커의 고객 베이스가 헤지펀드·프롭트레이더·RIA 등 기관 비중이 높다는 점을 고려하면 향후 ForecastEx의 성과는 예측시장의 기관화 진척도를 가늠하는 바로미터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1분기 실적 발표에서 인터랙티브 브로커 경영진은 다음과 같이 발언했다.

“ForecastEx는 몇 달 전에 예측시장에는 절대 들어가지 않겠다고 단언했던 사람들로부터 점점 더 많은 문의를 받고 있습니다. 이제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호기심을 갖고 회원 가입을 고려하고 있습니다. 네, 저는 이것이 제가 이전에 말씀드렸듯이 엄청난 것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며 예측 거래가 많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물론 예측시장이 가는 길이 평탄한 것만은 아니다. 내부자 거래, 도박 분쟁 등 논란과 규제 리스크가 끊이지 않는다. 그러나 이런 잡음에도 불구하고 미국 최대 거래소 NYSE의 모회사가 16억달러를 폴리마켓에 베팅하고, 2700만 계좌를 가진 로빈후드가 자체 플랫폼을 만들고, 보수적이던 찰스슈왑마저 입장을 바꾸는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예측시장이 단순한 도박이 아니라 차세대 금융 인프라이자 파생상품으로 기능할 수 있다는 가능성 때문이다.

한중섭 ‘어바웃 머니’, ‘비트코인 제국주의’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