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송주연
그래픽=송주연
글로벌 금융 무대에서 활동해온 신현송 전 국제결제은행(BIS) 통화경제국장이 한국은행의 지휘봉을 잡았다. 영국 옥스퍼드대와 미국 프린스턴대 강단을 거쳐 세계 금융의 브레인 역할을 해온 그의 귀환이다. 하지만 신 총재를 맞이한 한국 경제의 현실은 냉혹하기만 하다. 트럼프발 관세와 중동발 지정학 리스크로 인한 물가 상승 압력, 고환율과 가계부채 문제가 동시에 이어지면서 통화정책의 방정식은 그 어느 때보다 복잡해졌다. 전장에 뛰어든 신 총재의 발자취와 그가 풀어야 할 당면 과제를 짚어본다.
◆신현송은 누구
1959년 대구에서 태어난 신 총재는 어린 시절 영국으로 건너가 옥스퍼드대에서 정치경제학과 철학을 전공한 뒤 경제학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옥스퍼드대와 런던정경대(LSE)를 거쳐 미국 프린스턴대에서 경제학 교수로 재직하며 학문 활동을 이어갔다.

그는 학계에 머무르지 않고 국제 금융·정책 분야에도 폭넓게 참여했다. 미국 뉴욕 연방준비은행 금융자문위원과 국제통화기금(IMF) 상주학자를 지냈으며 2010년 이명박 정부 시절에는 청와대 국제경제보좌관으로 활동했다.

이후 2014년 BIS 고위직인 경제자문역 겸 조사국장에 임명됐다. 당시 미국·유럽 외 국가 출신 학자가 해당 직위에 오른 것은 이례적인 사례로 평가됐다.

신 총재는 거시건전성 분야 석학으로 알려졌다. 2000년대 중반 잭슨홀 중앙은행 총재 회의와 IMF 연례 회의 등에서 과도한 서브프라임 모기지 대출이 세계 금융 위기를 촉발할 수 있다고 예견해 주목을 받았다. 거시경제 변수와 금융시장의 연계성을 정확하게 짚어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론과 정책 적용 능력을 함께 갖춘 인물로 꼽히는 이유다.

국제 금융 불확실성이 커지는 가운데 주요 중앙은행과 국제기구 인사들과의 협업 경험을 바탕으로 구축한 글로벌 네트워크는 그의 강점이다.

신 총재는 2007년 미국 뉴욕연방준비은행 자문위원으로 활동할 당시 티머시 가이트너 전 미 재무장관과 인연을 맺은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가이트너 전 재무장관은 뉴욕연방준비은행 총재를 맡고 있었다. 또 토비아스 아드리안 IMF 통화·자본시장국 국장과는 뉴욕연방준비은행 시절 함께 연구를 수행하고 논문을 공동 집필한 경험이 있다.

신 총재는 12년간 BIS에서 활동하는 과정에서도 글로벌 중앙은행 네트워크와 접점을 넓혀왔다. BIS는 스위스 바젤에 본부를 둔 국제기구로 전 세계 중앙은행들의 협력을 도모하고 글로벌 금융 안정을 지원하는 ‘중앙은행들의 중앙은행’이다. 각국 중앙은행 총재들은 정례적으로 BIS 회의에 참석해 통화정책과 금융 시스템 이슈를 논의한다.

한국은행은 한국의 중앙은행이다. 화폐 발행과 기준금리 결정, 통화정책 수립 등의 역할을 맡고 있다. 금융기관을 상대로 예금과 대출을 통해 시중 유동성을 조절하는 기능도 수행한다. 한국은행 총재는 이 같은 중앙은행 운영 전반을 총괄하는 최고 책임자다.

신 총재는 후보자로 지명된 이후 통화정책 기조와 관련해 ‘매파’ 성향으로 분류돼 왔다. 매파는 물가 안정에 초점을 두고 금리 인상을 선호하는 성향을, 비둘기파는 경기 부양을 위해 금리 인하에 적극적인 입장을 의미한다. 신 총재는 물가 상승 압력에 대응한 금리 인상 필요성을 강조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경제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대응해 왔다는 평가도 함께 나온다.

실제 그는 인사청문회 사무실로 첫 출근하며 “매파냐, 비둘기파냐를 이분법적으로 나누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중요한 것은 경제 전체 흐름을 읽고 시스템 차원에서 금융과 실물경제의 상호작용을 충분히 파악한 뒤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대응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총체적 난국

1950년 제정된 한국은행법에 따르면 한국은행의 역할은 물가 안정과 금융 안정이다. 중동발 지정학 리스크와 고환율 여파가 겹치면서 한국은행의 통화정책 운용도 한층 까다로워지고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5월 경제동향 보고서에서 원유 수송 차질에 따른 생산비 증가가 소비자물가 상승세를 확대하고 있으며 기대인플레이션도 높아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중동 지역 불안이 장기화할 경우 경기 둔화 가능성도 커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생산 원가 상승은 기업 수익성 악화로 이어지고 가격 전가가 본격화하면 소비 위축과 투자·고용 둔화로 연결될 가능성이 크다.

특히 한국은행이 주목하는 지점은 기대인플레이션이다. 물가가 계속 오를 것이라는 인식이 확산하면 임금 인상 요구와 납품단가 조정, 서비스 요금 인상으로 이어지며 실제 물가를 다시 밀어 올리는 악순환이 발생할 수 있다. 이른바 ‘자기실현적 인플레이션’이다. KDI는 석유류 가격 상승이 아직 외식비·집세 등 전반적인 서비스 물가로 본격 확산되지는 않았지만 기대인플레이션이 높아진 만큼 향후 임금과 서비스 가격에 반영될 가능성을 주목해야 한다고 봤다.

실제 지표도 물가 압력을 보여준다. 중동 전쟁 여파가 본격 반영된 지난 3월 생산자물가지수는 전월 대비 1.6% 상승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직후인 2022년 4월(1.6%) 이후 가장 높은 상승률이다. 원자재 가격 상승과 물류 부담 확대, 환율 불안이 동시에 작용하면서 수입물가와 생산자물가가 소비자물가를 밀어 올리는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 4월 소비자물가 상승률(2.6%) 역시 전월(2.2%)보다 확대했다.

가계부채 역시 부담이다. 한국의 지난해 3분기 말 가계부채는 2342조6728억원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4분기 말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89.4%로 세계 최상위권이다.

원·달러 환율은 다시 1500원선을 위협하는 상황이다. 원화 약세가 장기화하면 수입물가 상승과 외화 조달 비용 확대가 불가피하다. 환율 방어와 물가 안정, 가계부채 관리가 동시에 한국은행의 과제가 된 셈이다.

신 총재의 첫 금융통화위원회는 오는 5월 28일 열린다. 미국 중앙은행이 지난 4월 기준 금리를 연 3.50~3.75%로 동결한 가운데 한국은행 역시 쉽사리 방향을 정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한국은행은 7회 연속 기준금리를 동결해 현재 연 2.50%다. 한·미 정책금리 격차는 상단 기준 1.25%포인트다. 한·미 금리 차와 외국인 자금 흐름, 환율 변동성, 가계부채 부담 등을 고려하면 섣부른 금리 조정은 부담이 크다.

시장에서는 이번 금통위에서 즉각적인 금리 인상보다는 향후 인상 가능성을 열어두는 수준의 메시지가 나올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다만 신 총재는 인사청문회에서 물가와 성장 가운데 우선순위를 묻는 질문에 “지금은 물가에 무게를 둘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그는 “특히 한국처럼 유가에 민감한 경제에서는 유가 충격이 상당히 큰 만큼 물가에 무게를 두겠다”고 했다.
그래픽=송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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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림 기자 t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