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0월 27일 장중 4000선을 처음 넘어선 코스피는 3개월 만인 올해 1월 5000선을, 다시 한 달 만인 2월 25일 6000선을 차례로 격파했다.
지난 5월 6일에는 6000 돌파 이후 단 47거래일 만에 7000피를 넘어섰다. 7000피를 돌파한 지 6거래일 만인 15일에는 8000피를 돌파했지만, 곧장 6% 급락 후 7500선으로 떨어졌다. 투자자 사이에서는 공포심리가 번졌지만, 21일에는 코스피가 하루 만에 8.42% 급등하며 다시 살아났다.
코스피가 롤러코스터를 탈 때마다 투자자들은 환호와 공포를 오갔다. 올해 들어 외국인은 국내 증시에서 대규모 순매도를 이어가고 있지만, 개인 투자자와 ETF 자금이 이를 받아내며 지수를 방어했다.
그 때마다 “과열이 아니냐”는 우려가 나왔지만, 최근 주요 증권사는 공통적으로 한국 증시의 성격이 바뀌고 있다고 진단한다.
한국이 인공지능(AI) 인프라 투자와 글로벌 공급망 재편의 수혜를 동시에 받는 ‘AI 제조업 시장’이자 ‘안보자산 공급국’으로 재평가받고 있다는 것이다.반도체 온기, 소부장·전력기기로 확산된다
랠리의 출발점은 반도체다. 올 들어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는 각각 186%, 127% 급등했다. 같은 기간 코스피는 82% 뛰었지만 코스닥은 24% 오르는 데 그쳤다. 반도체와 AI 관련주로 자금이 극단적으로 몰린 셈이다.
글로벌 투자은행(IB)과 국내 증권사는 삼전닉스가 향후 더 오른다는 데 베팅했다. 노무라증권은 최근 SK하이닉스의 주가 전망치를 400만원까지 대폭 상향 조정했다. 신한투자증권은 SK하이닉스의 목표가를 380만원으로 2배나 올렸고, 한국투자증권도 SK하이닉스의 목표주가를 종전 205만원에서 380만원으로 조정했다.
파업 리스크가 해소된 삼성전자는 57만원까지 상승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김형태 신한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삼성전자 목표가를 55만원으로 제시하며 "노사 관련 우려 해소 국면 진입에 따라 밸류에이션(평가가치) 정상화를 반영한다"며 "메모리 가격 추가 상승, 장기 계약에 따른 안정적 실적 가시성 확보, 주주환원 강화 등도 기대된다"고 했다.
삼성증권은 향후 장세를 세 가지 시나리오로 나눴다. 첫째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독주가 이어지는 시나리오로 확률은 30%였다. 둘째는 AI 성장 스토리는 유지되지만 반도체 소부장, 전력기기, 피지컬 AI, 대체 에너지, IT 하드웨어 등으로 온기가 확산되는 시나리오다.삼성증권은 이 가능성이 60%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셋째는 빅테크와 반도체 실적 발표가 마무리된 뒤 물가와 지정학 리스크가 부각되며 단기 숨 고르기에 들어가는 시나리오로 확률은 10%로 제시했다.
시가총액 기준으로도 한국 증시의 위상이 바뀔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유안타증권은 기본 시나리오에서 코스피가 연말 1만 포인트로 오를 경우 코스피 시가총액이 7900조원으로 늘어날 것으로 추정했다. 이 경우 한국 증시는 코스피 단독 또는 코스닥 합산 기준 글로벌 톱5 시장으로 도약할 수 있다. ‘파란 눈 개미’ 온다증시를 떠받칠 자금 여건도 우호적이다. 하나증권은 주요 12개국 달러 환산 M2 합산액을 121조달러로 추산하며 글로벌 유동성이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국내 증시 고객예탁금도 137조원으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런 상황에서 반도체 ETF까지 확대된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두 배로 베팅하거나, 주가 하락에 투자할 수 있는 ETF 18종이 오는 27일 증시에 상장된다. 상장 규모만 4조원을 웃돌아 반도체 대장주로 자금이 더 몰릴 것으로 보인다.
해외 개인투자자들의 한국 증시 진입장벽도 낮아졌다. 그동안 미국 등 해외 개인투자자들이 한국 주식에 투자할 수 있는 경로는 극히 제한적이었다. 삼성전자처럼 한국 증시에만 상장된 주식은 로빈후드 등 현지 증권 앱에서는 거래할 수 없어 투자를 원한다면 한국 금융회사에 직접 계좌를 개설해야 했다.
2023년 외국인 사전등록제 폐지로 절차는 간소화됐지만 환전과 결제 체계, 세금 구조의 차이로 인해 여전히 쉽지 않은 일이었다. 사실상 현지에 상장된 한국 ETF가 유일한 대안이었다.
이에 정부는 외국인 통합 계좌 도입 방안을 내놨다. 외국인 투자자가 국내 증권사에 일일이 계좌를 개설하지 않아도 글로벌 핀테크 플랫폼이나 해외 증권사를 통해 한국 주식을 실시간으로 매매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국내 증권사들은 제도 도입에 맞춰 외국 증권사 등과 제휴해 통합 계좌 서비스를 출시하고 있다.
시장에서는 해외 주식 자산 비중이 높은 미국 가계의 자금이 국내로 유입되면 증시 활성화의 또 다른 축이 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
권순호 대신증권 애널리스트는 “외국인통합 계좌에 따른 접근성 확대 효과는 정확한 추정이 어렵지만 주요 브로커리지 예탁 자산의 20%에 대해 접근성이 열리고 미국 가계의 해외 주식 비중(7.5%) 중 2%가 국내로 유입된다고 가정하면 중기적으로 약 30조원 규모의 신규 자금 유입 여지가 있다”고 분석했다. “여름같이 뜨거운 장세” 변수는 금리
최근 세 차례 연속 기준금리를 동결한 미국 중앙은행(Fed)이 올해 다시 올릴 수 있다는 관측이 월가와 금리선물 시장에서 고개를 들고 있다. 올해는 스페이스X나 오픈AI 같은 거물급 IPO 물량이 쏟아져 나오면서 돈이 필요한 수요처가 늘어나는데 미국이 금리를 올리면 돈의 공급은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
CNBC는 12일 시카고상품거래소(CME)의 Fed워치를 인용해 시장이 연내 금리인하 가능성을 극히 낮게 보고 있다고 전했다. 보도에 따르면 올해 12월까지 Fed가 기준금리를 현재보다 0.25%포인트 이상 내릴 확률은 3.2%에 그쳤다.
반면 금리가 0.25%포인트 이상 오를 확률은 올해 12월 기준 34.6%, 2027년 12월 기준 62.6%까지 반영됐다. 로이터도 앞서 금리파생 시장에서 연내 인하 가능성은 거의 사라지고 인상 가능성까지 일부 가격에 반영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정치적 변수도 복잡하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전부터 정부 부채 부담 완화와 경기부양을 이유로 Fed에 금리인하를 요구해왔다. 그러나 유가 충격으로 물가가 다시 뛰면서 차기 Fed 의장으로 지명된 케빈 워시가 곧바로 금리인하에 나서기는 어려워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로이터는 워시가 Fed 의장에 오를 경우 첫 결정이 금리인하가 아니라 인상이 될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대신증권은 일본의 투자 전문가 우라가미 구니오가 만든 ‘주식시장 사계절’ 이론을 통해 현재 우리 시장의 위치를 설명한다. 시장을 금리와 실적에 따라 봄(금융장세), 여름(실적장세), 가을(역금융장세), 겨울(역실적장세)로 나누는 것이다.
이경민 대신증권 애널리스트는 지금이 기업 실적이 주가를 끌어올리는 ‘여름 실적장세’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여름이 지나면 가을이 오듯 물가를 잡기 위해 금리를 올리기 시작하면 주가가 주춤하는 ‘역금융장세’가 올 수 있음을 경고했다. 이 애널리스트는 “2027년쯤 기업의 이익 성장 속도가 느려지면 주가가 고점을 찍었다는 신호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김영은 기자 kye0218@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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