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안에 ‘버틀러 창고’에 ‘건강 센서’까지
문을 열고 들어서자 일반 아파트 모델하우스와는 확연히 다른 공기가 느껴졌다. 공간 전체는 과시적인 화려함 대신 절제된 고급스러움으로 채워져 있었다. 짙은 톤의 마감재와 은은한 조명, 여유롭게 배치된 동선은 고급 호텔 라운지를 연상시켰다. 중앙에는 한국 현대 도예를 대표하는 권대섭 작가의 달항아리가 놓여 공간의 정제된 분위기를 더했다.
방문객들의 분위기도 눈길을 끌었다. 이날 갤러리에서는 깔끔하게 차려입은 노년 부부와 중년 방문객들을 볼 수 있었다. 현장 관계자는 “하루 평균 50팀 정도 예약을 받는데 대부분 마감된다”며 “6070세대는 물론 부모 거주를 알아보는 50대 자녀들과 준공 시점에 만 60세가 되는 50대들이 미리 본인 입주를 고려해 방문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설명했다. 소요한남의 입주 가능 연령은 만 60세 이상이다.
갤러리에는 가장 세대 수가 많은 전용 99A 타입을 기준으로 모형을 조성했다. 세대 내부는 아파트보다는 프라이빗한 호텔식 주거 공간에 가까웠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면 공용 복도 대신 세대별 독립 공간이 바로 나타나는 구조다. 세탁물 수거함과 택배, 배달 음식을 비대면으로 받을 수 있는 ‘버틀러 캐비닛’이 자리했다. 외부에서는 담당 버틀러(집사)가, 내부에서는 입주민만 열 수 있도록 잠금 구조를 분리해 편의성과 보안성을 높였다. 단지 내 공지사항과 안내를 확인할 수 있는 디스플레이도 함께 배치했다.
현장 관계자는 “주간에는 버틀러 1명이 6~7가구를 전담하고 컨시어지(생활지원) 서비스는 24시간 제공한다”고 말했다.
이어 “세대별로 엘리베이터 2대를 설치해 한 대는 버틀러와 외부 서비스 이용을 위한 전용 동선으로, 다른 한 대는 입주민 전용으로 운영한다”며 “엘리베이터는 카드 태그 방식으로만 층 선택이 가능하도록 설계했으며 비접촉 시스템도 적용했다”고 덧붙였다.
채광과 통풍 효율을 고려해 전 세대 모두 남향의 판상형 설계로 구성했다. 거실에 들어서자 5.5m에 달하는 광폭 거실과 2.7m의 높은 천장고가 공간감을 키웠다. 전동 커튼 시스템과 눈부심을 줄이는 간접 조명, 개인의 컨디션에 따라 밝기를 미세하게 조절할 수 있는 디밍 조명 등을 적용해 거주 편의성을 높였다.
주방은 최근 주거 트렌드를 반영한 대면형으로 구성했다. 인덕션과 환기 장치를 일체형으로 설계해 천장 환풍기를 없애고 개방감을 확보했다. 곳곳에는 시니어 거주를 고려한 안전 설계를 적용했다. 현관부터 욕실까지 단차를 최소화했고 세대 내 문은 모두 슬라이딩 도어로 구성했다. 안전바와 SOS 응급벨도 곳곳에 배치했다. 거실에는 낙상 감지 센서가 들어갔다. 마스터룸(방) 두 곳에는 웨어러블 기기 없이도 심박과 호흡을 감지하는 통합 센서를 설치했고 현관 벤치와 복도 하단 센서식 스텝 라이트도 적용했다.
관계자는 “응급벨은 총 8개 정도 된다”며 “상주 의료인이 야간에도 모니터링하고 입주민이 원하면 지정 보호자에게도 정보를 공유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후 브리핑룸에서는 커뮤니티 시설과 운영 서비스에 대한 설명이 이어졌다. 소요한남의 세대당 커뮤니티 면적은 약 15평(50㎡)에 달한다. 서울 강서구의 VL르웨스트(약 3.7평)나 서울 광진구에 위치한 더클래식500(약 8.5평)과 비교하면 2~4배 이상 넓은 독보적인 규모다. 층별 구성도 짜임새 있다.
지상 1층의 단지 중심에는 중정형 구조의 ‘티하우스’가 들어설 예정이다. 도심 한복판이지만 외부와 분리된 작은 숲 같은 분위기를 구현하겠다는 설명이다. 호텔 출신 셰프가 상주하며 매일 2~3가지 식단을 준비하고 원하면 세대 내 식사 서비스도 제공한다. 일반 시니어 주거시설과 달리 의무식 제도가 없는 점이 특징이다. 의무식은 입주민이 실제 식사를 하지 않더라도 일정 횟수 이상의 식사 비용을 매달 고정적으로 내야 하는 방식이다. 대신 가격대는 높은 편이다. 식사 비용은 한 끼 기준 2만~3만원대로 책정했다. 통상 다른 시니어 레지던스 식사가 1만원대 수준인 점을 고려하면 두 배 가까이 비싼 셈이다. 분양 관계자는 “호텔 수준 식재료와 운영 인력, 최근 물가 등을 반영한 가격”이라고 부연했다.
지하 2층에는 프라이빗 미팅룸, 멤버십 라운지, 영화관, 세미나실, 취미실, 게스트룸 등을 만든다.
주 2회 기본으로 제공하는 하우스키핑(청소) 서비스는 세심하다. 일반적인 먼지 털기식 청소에 그치지 않는다. 침구 정리와 욕실 용품 보충은 기본이다. 시니어 주거 공간답게 바닥 러그가 말려 있지는 않은지, 유리컵이 불안한 위치에 놓이진 않았는지, 멀티탭 선이 꼬여 발에 걸릴 위험은 없는지 등 낙상과 부상 위험 요소까지 샅샅이 찾아내 교정한다.
소요한남은 나인원한남 바로 옆에 들어선다. 올해 1월 공사를 시작했으며 2029년 상반기 준공 예정이다. 지하 5층~지상 7층, 연면적 약 3만9000㎡, 총 111가구 규모로 조성한다. 보증금과 월 이용료를 내고 거주하는 임대형 구조다. 보증금은 전용면적에 따라 달라진다. 99㎡는 48억5900만~54억5800만원, 108㎡는 52억6600만~60억6700만원이다. 두 개 호실을 연결해 하나의 공간으로 사용하는 99㎡ 인접세대 타입은 가구당 53억2600만~55억4000만원을 내야 한다.
월 임대료를 보증금으로 전환하는 방식을 선택하면 금액은 더 올라간다. 이 경우 99㎡는 54억3500만~60억8800만원, 108㎡는 58억4200만~66억4300만원까지 상승한다. 월 임대료는 264만원이다.
식사비, 청소비, 커뮤니티 이용료, 관리비 등은 별도로 부담해야 한다. 1인 기준 월 780만원, 2인 기준 월 890만원이 추가로 들어 실제 월 지출은 1000만원 안팎 수준이다.
소요한남의 보증금 수준은 기존 하이엔드 시니어 레지던스보다 약 3~7배 높은 편이다. 더클래식500은 보증금 10억원, 월 이용료는 500만원 안팎이다. 서울 송파구 ‘위례 심포니아’는 보증금 최대 8억8000만원에 월 250만원 정도이며 VL르웨스트는 보증금 최대 18억원, 월 임대료는 354만원 수준이다.
이에 대해 소요한남 측은 한남동 일대 고급 주택의 매매·전세 시세를 반영해 책정한 금액이라는 입장이다. 기존 시니어 레지던스들 역시 공급 당시 주변 부동산 시세를 기준으로 보증금을 정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분양 관계자는 이 단지의 주요 고객층으로 초고액 자산가들을 꼽았다. 그는 “세컨드하우스 개념으로 접근하거나 기존 고가주택을 정리해 보유세 부담을 덜면서도 호텔식 서비스를 함께 누리려는 자산가들의 관심이 커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압구정 등 강남권 핵심 재건축 단지의 이주 시점과 맞물려 입주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자산가들이 많다. 더클래식500의 입주민이나 나인원한남 등 한남동 고급 주택 거주자들의 문의도 적지 않다”고 귀띔했다.
소요라이프케어앤매니지먼트에는 더클래식500의 한만기 전 시설장이 대표로 합류해 전문성을 높였다. 설계·인테리어·조경에도 각 분야에서 손꼽히는 업체들이 참여한다. 건축 설계는 해안건축, 인테리어는 종킴스튜디오가 맡았으며 조경은 서안조경과 디자인 스튜디오 loci가 담당한다.
준공 전까지 자금과 자산 관리는 한국토지신탁이 맡는다. 홍지협 브릭스인베스트먼트 대표는 “입주 이후에는 일반 주택과 동일한 방식으로 보증금 100%에 대한 전세권 설정이 가능하도록 설계했다”며 “노인복지법상 시니어 레지던스는 보증금의 50% 범위 내에서만 담보 제공 의무가 있지만 소요한남은 보증금 전액에 대해 전세권 설정이나 보증보험 가입이 가능하도록 해 안정성을 높였다”고 말했다.
청약은 5월 25일부터 26일까지 이틀간 진행한다. 당첨자는 5월 27일 공개하며 5월 28일부터 30일까지 사흘 동안 정당계약을 진행한다. 납부 조건은 계약금 10%, 중도금 50%, 잔금 40%다.
과거의 실버타운이 도시 ‘외곽’에서 ‘돌봄과 요양’을 받는 고립된 공간이었다면 최근 시니어 레지던스는 도심의 고급 주거지 한가운데서 호텔식 서비스와 하이엔드 커뮤니티를 누리는 ‘새로운 주거 문화’로 성격이 바뀌고 있다. 고령층이 전체 인구의 20%를 넘어서는 초고령사회에 진입하면서 시니어 세대가 돌봄 대상이 아니라 핵심 소비층으로 부상했기 때문이다. 고령친화산업 시장 규모는 2022년 84조6000억원에서 2030년 168조원 규모로 성장할 전망이다(한국보건산업진흥원, 삼일PwC경영연구원). 연평균 성장률이 9.0%에 달하는 거대한 미래 먹거리인 셈이다.
도쿄 미나토구 니시아자부(한남동과 유사한 도쿄 내 부촌)에서 미쓰이부동산이 개발한 시니어 레지던스가 대표적이다. 제국호텔 수준의 고품격 서비스에 게이오대 병원의 전문 메디컬 케어를 결합한 형태다.
런던의 최고급 부촌 첼시에 위치한 ‘오리엔스 첼시(Auriens Chelsea)’ 역시 만 65세 이상 자산가들을 위한 독보적인 고품격 레지던스다. 내부에 아름다운 중정과 정원은 물론 레스토랑, 최고급 피트니스, 수영장, 전문 의료시설을 모두 갖췄다. 특히 세인트레지스 등 최상급 글로벌 호텔 출신이자 전 세계 호텔 서비스의 최고 권위인 ‘골든 키(Golden Keys)’ 회원들로 구성된 임직원들이 24시간 밀착 컨시어지 서비스와 다채로운 문화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가격은 거주 방식에 따라 분양형은 47억원(1베드룸)에서 최고 77억원(2베드룸) 선이며 임대형을 선택할 경우 월세가 3200만원에서 4300만원 수준이다.
국내 건설업계 역시 이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분주하다. 다만 한국의 하이엔드 시니어 시장은 아직 걸음마 단계로 성공 사례가 없다. 고급 주거지 내에서 주거·의료·호텔 서비스에 커뮤니티와 라이프케어를 결합한 복합 운영 모델이 아직 안정적으로 자리 잡지 못했다. 수익 구조와 지속 가능성, 확장성이 충분히 검증되지 않은 상태다. 소요한남이 향후 국내 고급 시니어 주거 시장의 기준점이 될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리는 이유다. 소요한남은 개발 이후 분양에서 종료되는 일반적인 부동산 사업 구조와 달리 운영 단계까지 사업자가 참여하는 ‘장기 운영형 디벨로퍼’ 모델을 지향한다. 이는 개발과 운영을 분리해왔던 기존 국내 개발사업 구조와 차별화되는 지점이다.
소요한남의 비즈니스 모델은 ‘운영 기반 현금흐름’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기본 관리비 외에도 식음 서비스와 헬스케어, 컨시어지 등에서 발생하는 부가 서비스가 핵심 수익원이다. 여기에 금융 서비스 및 자산관리 기능까지 결합할 경우 수익 구조는 더 확장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소요한남은 브릭스와 포스코이앤씨가 공동 운영할 것으로 보인다. 양사는 소요라이프케어앤매니지먼트(운영사)를 통해 시니어 사업 파트너십을 구축했다. 현재는 브릭스가 100%의 지분을 갖고 있지만 향후 포스코이앤씨가 30%를 출자할 계획이다. 포스코이앤씨는 내부적으로 시니어 사업 조직을 신설하고 전문 인력을 확충하고 있다.
소요한남의 수익 모델이 안정적으로 안착할 경우 브릭스는 수도권 주요 입지를 중심으로 시니어 주거 개발을 단계적으로 확대해 나간다는 구상이다.
김태림 기자 ta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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